기사 (25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한국교회, 영성신학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영성이 차고 넘친다. 그러나 영성신학이 없다. 마치 교회마다 성경은 많이 읽어도 성서신학이 없는 것과 같다. 성경읽기에 성서신학이 뭐가 중요한가 싶지만, 성서신학이 취약한 한국교회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창조과학의 만연이다. 한국 신학교에 성서신학자들이 부지기수임에도 그러하다면, 영성신학자가 거의 전무한 국내현실에서 교회마다 영성이 방향을 잃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장로교 통합의 경우, 최초의 영성신학자 유해룡 교수가 장신대 영성신학분과를 담당한 지난 20년간 많은 후학들을 배출했다. 그럼에도 영성신학은 통합 측 의견 | 이택환 | 2017-12-07 22:09 기도에 대해 ‘작정하고 쓴 책’이지, ‘기도론’ 책이 아니다. “처음 3일 동안은 하루 온종일 머리가 아팠다. ... 저녁에 나는 이것을 고쳐달라고 기도하였다. 목요일 아침에 내 두통은 사라졌다.”(존 웨슬리의 기도. 1746.7.6.)기도 참으로 어려운 주제입니다. 기도에 관한 수십 권의 책을 읽고, 날마다 기도의 자리에 있어도 ‘기도’는 결단코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오래전 리처드 포스터의 를 읽고 다양한 기도의 형태를 발견하고 기도의 풍성함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소나무 뿌리를 뽑는 것이 진정한 기도라고 배워온 저로서 리처드 포스터의 기도는 기이할 만큼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얼마간 책세상 | 정현욱 | 2017-12-02 12:54 한국교회 방언은 언제 시작되었나? 1907년 전후 대부흥 운동에서는 방언이 없었다. 일부 사가들이 게일의 Korea in Transition (1909), p. 216을 인용하여 방언이 있었다고 주장하나, 본문의 문학적 표현을 오독한 결과이다. 본문을 보자. 평양 부흥 소식이 전해지자 만주에서 기독교인들이 평양에 왔다. 중국인 상인들로부터 변화된 한국인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전해들은 후, 길선주 목사와 다른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함께 기도했다. They prayed, the Chinese in their unintelligible monosyllables, an 칼럼 | 옥성득 | 2017-12-01 13:43 지렁이의 기도 - 정말로 무속인가? * 김요한 목사님의 포스팅과, 를 ‘무속’으로 염려하는 포스팅을 둘 다 읽어보았습니다. 그 ‘염려’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이해되었고,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염려’되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그 ‘염려’란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원리’로 확대하거나, 특수한 경험을 ‘일반적으로도 가능한 경험’으로 확대할 것에 대한 ‘염려’였습니다. 그러나 그 ‘염려’는 잠시였습니다. ‘진정한 염려’는 다른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도님들로 하여금 이 < 지렁이의 기도>를 읽게 하되, 어떻게 하면, 내가 염려하는 책세상 | 윤상원 | 2017-11-30 02:22 너, 누구냐? 오래도록 영화와 담 쌓고 살다가, 대학과 신학대학원 다닐 때에 나름 영화광이요 마니아라고 자부했지만, 석박사 공부하려, 생활에 쪼들리랴, 사역하랴, 영화 볼 틈도, 돈도 없어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아내랑 모처럼 본 영화가 박찬욱 감독의 다. 헉. 열렬 팬들의 찬사를 듣고 보았는데, 잔인한 폭력성만 기억 남는다. 한국 영화가 너무 폭력적이 된 게 아녀? 뭐 그랬다. 그래도 인상적인 한 대목은 주인공이 그 이상야릇한 감옥 같은 여관에서 나와서 뭔가를 먹으면서, 그리고 거울을 보면서 묻는다. ‘너, 누구냐?’ 소름 돋던 그 성경읽기 | 김기현 | 2017-11-21 06:11 처음처음이전이전12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