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 (학 2:15-23)
[장일]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 (학 2:15-23)
  • 장일
  • 승인 2019.02.23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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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학개서 강해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백종원의 골목식당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수요일 저녁에 방영되고 있는데 어떻게들 보셨나요? 굳이 방송이 아니더라도 인터넷이나 기사로 접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골목식당의 기획의도는 간단합니다. 바로 침체되어 있는 골목상권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

골목식당 화면 갈무리
골목식당 화면 갈무리

한 통계를 보니 하루 평균 3000명이 자영업의 문을 열고 2000명이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폐업 업종 1위가 어디일까요? 바로 식당입니다. 공교롭게도 지난주에 한 성도님의 식당개업예배에 다녀왔습니다. 전날 선물로 가져갈 화분을 주문하면서 문구를 뭘로 넣을지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문구를 뭘로 넣었을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업장’ 이런 거룩한 문구도 좋지만 ‘대박행진을 기원합니다 팔로우교회’ 이렇게 정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업장이 우선순위가 되어야겠죠. 그러나 어려운 경기를 감안해서 사업장이 번창하는 일에 더 초점을 맞춰봤습니다.

골목식당에 보면 극적인 반전을 맞이한 식당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 기억나는 식당이 하나 있는데 서울 성내동에 있는 한 분식집입니다. 이 분식집은 방송을 촬영할 당시 이미 가게를 내놨습니다. 그러나 4개월이 지나도 가게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영업은 하고 있으나 사실상 폐업한 식당이나 마찬가지죠. 이렇게 산소호흡기에 연명하던 식당에 기적 같은 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장사의 신 백종원대표가 개입을 한 것입니다. 식당 아주머니의 절박한 사정을 들은 백대표는 “어떡하든 이 집은 살려낸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이후 백종원대표의 솔루션을 받은 이 분식집은 현재 번호표를 받아야 할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분명 아무런 소망도 희망도 없는 폐업 직전의 식당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종원 대표가 개입한 그날부터 대박식당이 된 것입니다.

학개서 강해 오늘이 다섯 번째 마지막 시간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동안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우 분주한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는 포로 귀환의 목적인 성전재건을 망각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전과는 다른 긍정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내리겠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귀가 쫑긋해지는 말씀 아닙니까? 이제 유다 백성들도 골목식당의 분식집처럼 대박행진 즉 꽃길만을 걷게 되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의 근원을 분명하게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이 복 안에 담긴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축복의 선언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 첫 번째는, 축복의 선언입니다.

15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 보아라. 주의 성전을 아직 짓지 않았을 때에, 16 너희 형편이 어떠하였느냐? 스무 섬이 나는 밭에서는 겨우 열 섬밖에 못 거두었고, 쉰 동이가 나는 포도주 틀에서는 겨우 스무 동이밖에 얻지 못하였다. 17 내가 너희를 깜부기병과 녹병으로 쳤다. 너희 손으로 가꾼 모든 농작물을 우박으로 쳤다. 그런데도 너희 가운데서 나에게로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주의 말이다. 18 너희는 부디 오늘, 아홉째 달 이십사일로부터 주의 성전 기초를 놓던 날까지 지나온 날들을, 마음 속으로 곰곰이 돌이켜 보아라. 19 곳간에 씨앗이 아직도 남아 있느냐? 이제까지는,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나 석류나무나 올리브 나무에 열매가 맺지 않았으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내리겠다."

본문은 지난주에 이은 세 번째 예언에 해당됩니다. 학개 선지자는 15절과 18절에서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너희의 지나온 날들을 곰곰이 돌이켜 보아라” 유다 백성들의 지나온 삶 대체 그들의 형편이 어떠했기에 그럴까요? 16절에 보면 스무 섬의 곡식을 기대했지만 실제로 거둔 것은 열 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7절은 바로 하나님께서 기근과 재앙으로 그들의 농작물들을 치셨음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언약의 저주를 의미합니다. 왜 저주가 임했습니까? 어렵지 않죠.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 때문입니다. 이 불순종으로 인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씨를 뿌렸음에도 그들은 궁핍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학개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뒤늦은 반응과 돌이킴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16년 동안 멈춰있었던 성전 재건 공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오늘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성전의 기초 공사가 완성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토록 기다려왔던 선언을 내려주십니다. “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내리겠다” 그동안 저주 아래 놓여있던 유다 백성들의 삶을 이제 축복으로 바꾸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저와 가까운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님은 교회를 개척해서 올해로 15년째 목회를 이어오고 계십니다. 현재 교회는 장년 성도가 500명이 넘어가는 탄탄한 중형교회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교회가 성장했던 것은 아닙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분명한 싸인을 받고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기에 개척만하면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개척 이후의 상황은 이른바 꽃길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그리고 계획했던 대로 목회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년간 목사님은 내적인 씨름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기대와 바람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하셨답니다. “주님 주님께서 맡겨주신 이 적은 양떼들을 평생 바라보며 책임지고 가겠습니다” 이 기도가 있은 후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런 감동을 주셨답니다. “이제 됐다” 당시 목사님은 그 감동이 무슨 뜻인지 몰랐답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하나님께서 매주마다 교회로 영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결론은 하나님께서 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목사님의 중심을 다듬으시고 당신만을 의지하도록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오늘 유다 백성들에게 내려진 축복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재건이 시작된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 아닌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3개월이 지난 시점입니다. 이 시간동안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의 믿음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중간에 잠시 실망과 좌절로 흔들린 적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위로와 소망으로 그들을 다시 세우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합당한 그릇으로 훈련시키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꼭 그 기준에 합격해야만 복을 주시는 옹졸한 분은 아니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도 삶의 결핍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 문제, 질병의 문제, 관계의 문제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솔직하게 한 번 말해볼까요? 우리는 환경에 따라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평가하고 의심합니까?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아들을 내어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신데 도대체 당신의 자녀에게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 11절입니다.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손에 있는 물질과 건강 그리고 형통 이전에 먼저 하나님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축복에 자리에 있어도 감사, 결핍의 자리에 있어도 감사가 아닐까요? 다시 한번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통치 선언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 두 번째는, 하나님의 통치 선언입니다.

20 그 달 이십사일에, 주님께서 다시 학개에게 말씀하셨다. 21 "너는 스룹바벨 유다 총독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내가 하늘과 땅을 뒤흔들겠다. 22 왕국들의 왕좌를 뒤집어엎겠다. 각 민족이 세운 왕국들의 권세를 내가 깨뜨리겠다. 병거들과 거기에 탄 자들을 내가 뒤집어엎겠다. 말들과 말을 탄 자들은, 저희끼리 칼부림하다가 쓰러질 것이다. 23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스알디엘의 아들, 나의 종 스룹바벨아, 그 날이 오면, 내가 너를 높이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너를 이미 뽑아 세웠으니, 내가 너를 내 옥새로 삼겠다.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본문은 학개 선지자를 통한 네 번째 마지막 예언입니다. 이 마지막 예언은 유다의 총독인 스룹바벨 개인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늘과 땅을 뒤흔들겠다. 여러 나라의 왕좌를 뒤엎고 그 권력들을 무너뜨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스룹바벨을 ‘나의 종’이라 칭하시며 ‘그를 높이 세워 옥새로 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스룹바벨에게 주어진 이 예언은 무슨 뜻일까요? 왜 하나님은 이러한 말씀을 주시는 걸까요? 참고로 스룹바벨은 유다의 19대 왕인 여호야긴 왕의 손자입니다. 여호야긴은 예루살렘을 불과 3개월밖에 다스리지 못하고 바벨론으로 잡혀갑니다. 열왕기서 기자는 여호야긴의 통치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다’라고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이 악행에 대한 심판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손에서 옥새 반지를 빼어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게 넘겨줄 것이란 예언입니다. 이 옥새 반지가 넘어간다는 표현은 왕권의 몰락을 상징합니다. 또한 여호야긴의 후손 중에 다시는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을 것이라는 분명한 저주도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하나님께서 다윗 왕가에 내린 저주를 철회하십니다. 스룹바벨을 향해 “내가 너를 인장 반지로 삼겠다”고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사실 스룹바벨은 페르시아가 임명한 총독이기에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통치자는 제국의 왕들이 아닌 바로 당신임을 드러내십니다.

스룹바벨은 저주 받은 가문의 불명예를 누구보다 깊이 인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허수아비 총독이라는 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스룹바벨은 학개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을 가둔 불명예와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다시 힘을 내어 성전 재건 공사에 박차를 가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스룹바벨을 통한 성전 재건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가리킬까요? 그것은 바로 스룹바벨의 족보를 통해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오셔서 직접 성전을 취하실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가져오실 것입니다.

최근 들어 안타까운 교회의 모습이 또 한 차례 언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분당에 있는 한 교회인데 성도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미 검찰에 고소까지 마친 상태였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교회는 2012년 무리한 예배당 건축을 감행했습니다. 당시 교인이 200명도 안 됐는데 무리한 건축으로 결국 교회는 100억원대의 부채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교회의 목사가 100억원대의 채무를 교인들에게 떠안긴 것입니다. 참 믿기 힘들지만 부채상환을 위해 교인들에게 대부업 대출을 알선하고 심지어는 장기를 팔아서라도 헌금을 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제가 놀란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이 교회가 이단, 사이비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교회 목사는 현재 성남시기독교연합회회장, 한기총 공동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한기총을 한국교회 대표기구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 목사는 교회 안에서 강력한 카리스마와 예언 사역 특별히 조상의 저주로 공포심을 조성했습니다. 결국 이 거짓말에 속아 가산을 다 바치고 회복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온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공생애 즉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셨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입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보십시오. 사도 바울도 증언하지 않습니까? 영적인 학대와 협박 이런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은 결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누려야 할 복은 절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고 받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누려야 할 복입니다. 진정 아멘이십니까? 우리 공동체 안에는 이 우선순위가 바뀐 복을 구하는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믿음으로 상속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결 론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은 학개서 강해 마지막 시간으로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한 마지막 예언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선언과 통치 선언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난 5주 동안 우리는 학개서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전의 의미를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발견했습니다. 또한 오늘날 교회는 쉐키나 영광 곧 하나님 임재의 영광이 드러나는 거룩한 공동체임도 깨달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전 된 우리가 가정과 일터, 교회 공동체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안에 기쁘게 그리고 즐겁게 거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 삼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풍성한 복이 팔로우공동체를 가득 채우고 세상으로 증거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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