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옥 교수가 친동성애 설교를?
김대옥 교수가 친동성애 설교를?
  • 김동문
  • 승인 2018.01.0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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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의 김대옥 교수 재임용 거부를 지지하는 설교 동영상 다시 보기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유튜브 화면 갈무리 ⓒYouTube

 

SNS 상에는 한동대 김대옥 교목의 포항 주님의 교회 설교 중 일부 (2017.12.10.)’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공유되고 있다. 이 동영상 게시자는 GMW 연합으로, 지난 2일 유튜브(YouTube)에 게시한 것이다.

김대옥 교수/목사의 재임용 거부를 지지하는 이들은 김 목사/교수의 설교 중 동성애 관련 언급을 근거로 지적하고 있다. 아래 녹취문에서 동성애라는 단어가 1, 성적 취향이라는 단어가 한 번 언급된다. 이 설교 동영상을 바탕으로 김 목사/교수의 재임용 거부를 지지하는 이들 가운데는 주일설교에서 김대옥 교수는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고, 페미니스트적인 설교도 하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동영상은 지난 1210일 주일에 포항시 북구에 자리한 주님의교회에서 전달된 주일 예배 설교 46분가량의 분량 중 6분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당시 김대옥 교수/목사(한동대학교 법률대학원 교목)누가복음 416-21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김 목사/교수는 지난 7월부터 매달 한 차례씩 해당 교회의 주일 설교를 맡아왔다.

주님의교회 설교동영상 전부

유투브와 sns에서 공유되고 있는 발췌본 동영상 설교 본문을 녹취하여 옮겨본다. 녹취문 문단 앞에 표기된 숫자는 원 동영상 분량 표시이다. 초록색 부분은 유튜브에 공유되고 있는 동영상 편집본에 빠진 내용이다.

 

29:28 (하나님의) 용서라고 하는 것이 그리고 우리 하나님이라는 분이 어떻게 용서하시고 사유하시는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넉넉히 보여주셨단 말이에요.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 투석형에 의해서요, 성경대로 하자면 죽임을 당해야할 여인에게도 나도 정죄치 않는다선언하시면서 그를 보호하시고, 자유케 평안히 가라고 하셨던 그 예수님.

29:49 오늘날 교회는 이상하게도 그 죄용서의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산다는 교회가 이상하게도, 예수님이 보호하시고 자유케 보내주신 그 여인들을 뒷골목에서 돌로 쳐 죽이는 일들을 비일비재 행하고 있어요. 이것은 죄야! 동성애가 죄야! , , 낙태가 죄야! 뭐가 죄야! 왜 그렇게 교회가 죄에 사로잡혀 있는지, 죄론에 사로잡혀 있는지? 예수님이 그토록 죄 없다 하기를 애써 탄핵까지 받아가면서, 신성모독이라는 탄핵까지 받아가면서 까지도 죄 없다, 죄 없다, 죄 없다 하면서 사유하고 계시는데, 그 예수님을 믿는 교회가 여전히 정죄의 초점으로 성도들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면, 교회는 다시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진짜 예수님이 오셔서 교회의 신학을 바꾸고 교회의 메시지를 바꾸고, 교회의 성도들의 삶을 바꿔주셔야만 합니다.

30:47 더더욱 중요한 이야기는 그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성도들의 죄와 관련해서 성도들의 삶을 보십시오. ‘성도들, 당신들 죄인입니다라고 하기 보다는 대부분의 성도들은 오히려 그 죄의 현실의 희생자들입니다. ?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의 성도들이 실제로는 죄인들이기보다는 죄 현실의 희생자들이에요. 오히려 용서가 필요하고, 회복이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하고 그렇지요? ‘더불어 섬이 필요한, 정죄가 아니라, 그러니까 정죄가 아니라, 용납하고, 더불어서 그 죄 현실과 악의 현실에 맞서, 연대해야만 하는 그런 현실이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이지요.

31:32 너무 길어질까 봐. 제가 계속 가보겠습니다. 두 번째는 만약에 예수님이 오심이 (31:41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숱한 질병으로부터의 회복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오심으로 오늘도 우리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의 요소들로부터 고침을 얻어야만 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은 각종 병든 자, 귀신이 들린 자, 중풍병자, 시각 잃은 자, 심지어 죽음에 처했던 자들까지도 예수님을 말미암아 소생을 얻습니다. 예수님 존귀한 형상 닮은 인간은 모름지기 강건하고 장수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각종 암이니 아니면 숱한 성인병이나 아니면 전염병들로 세계는 많은 고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32:22 여러분 예수님 모신 교회는, ‘예수님 오셨다라고 선언하는 교회는 병든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되 단순히 그 기도에 그쳤을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역사하시지 않는 일을 오늘날 많이 보잖아요. 이상한가요? 그런데 잘못하면 오해되는데, 성경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셨다고 라고 하는 매우 기적적인 사건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더 이상 경험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그 말이지요. 말 만해도 병으로 고침 받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적어도 과학의 시대에는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기독교인들마저도 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하고 마음의 기도는 하겠지만, 또는 성도들의 기도를 부탁하겠지만, 당연히 약국을 찾고 병원을 찾아서 거의 회복을 받죠. 즉 오늘날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 주위에 의사들을 두시고, 약사들을 두시고, 상담사들을 주시고, 목사님들을 두시고 우리 가운데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과 인력들을 두셨다 라고 하는 이야기, 여전히 그분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연구실에서 수고하고 있다 라고 하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을 치유하시고자 작정하셨다라고 믿어도 좋은 신호라고 보는 것이지요. 하나님 여전히 치유하고 계신다!

33:42 그렇다면 질병의 현실 속에서 여전히 고통하고 있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교회가 무엇에 앞장서야 될 것인가요? 33:52 공공의료가 어떻게 더 구체적으로 저 구석구석 낙도며 심지어 가난한 지역이며 심지어 가난한 이들조차도 비용의) 34:00 걱정 없이 모두가 의료혜택을 받고 새 생명, 새로운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마음 쓰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예수님 오셨다라고 선언하고 그 오신 이유가 온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선언하는 교회라고 한다면, 어쩌면 이와 같은 공적인 맥락에서의 교회적인 역할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4:22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희년과 같이 경제적인 회복에 있다면 오늘도 적어도 모든 가난한 자들의 비참한 현실에서 구원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성서에 적어도, 성서가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의 복음은 철저하게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입니다. 오늘 본문도 예수님이 기름부어서 오신, 기름부음 받아 오신 이유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케하려함이다라고 말씀합니다.

(34:50 팔복에서도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라고 과감하게 선언하신 분입니다. 심지어 반대급부에 있는 부자에게 화 있다선언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겨우 동전 두 닢을 헌금함에 넣은 과부에게 부자들보다 더 많이 넣었다선언하신 분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호위호식하던 부자를 기억하시죠? 하지만 자기 상 밑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연명해야 했던 거지 나사로를 간과해버렸던 부자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심판의 비유를 기억하시죠? 한 해의 소출이 너무 넉넉해서 그 모든 소출을 다 쌓아두고 살 것을 계획하고, 내 영혼아 이제 편히 쉬자 했던 어리석은 부자에게 예수님이 죽음을 선언하셨던 비유역시 여러분 기억해 보셨을 것입니다. 반대로 어마어마한 부자였지만 자기의 가진 것을 온통 가난한 자들에게 절반을 떼어서 다 나눠주고 토색한 것 4배를 갚겠다고 했던 당대에 매국노로 여겨졌던 세리장에게 예수님은 당연히 구원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도 오늘 이야기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희년이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 속에 구현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36:01 여러분 오늘 우리 세계를 한번 보십시오. 거국적으로도 다국적 기업이나 그런 대기업 같은 거대 자본들이 어떻게 경제현실들을 왜곡시키는지, 이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허락해준 많은 혜택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체제 내에 가난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인지, 심지어 자본, , 경제력 이런 것들이 오히려 계급이 되고 특권이 되고, 권력이 되어 있는 이런 현실 속에서 오히려 소외되고, 반면에 그것이 신이 되어서 심지어 주님의 교회들조차도, 오히려 그 신에 굴종하고 있는 현실들을 우리가 감안해 본다면, 오늘도 교회 안에, ‘은혜의 해를 선포하러 오셨다라고 하는 예수님의 그 오심의 선언이야 말로 우리들을 얼마나 돌아보게 하고, 우리로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36:54 네 번째로 예수님의 오심이 여타의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한다면, 오늘 모든 차별, 폭력이 중단되는 현실을 오게 해야 하는 것이 마침 우리 교회, 우리 개인의 또 사명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영생이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라고 물었던 한 율법사에게 예수님이 들려주셨던 비유가 바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그렇죠? 그 이야기 속에는 물론 비유로 주셨지만, 이야기 속에는 엄혹한 폭력으로 인해서 죽어가는 한 한 행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이웃됨의 행위를 통해서 폭력으로 부터의 구원받는 일인지 잘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사기 당하고, 강간당하고, 폭행당하고, 죽임 당하던 숱한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서 진정한 구원을 경험해야 됩니다. 그 예수님이 선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이웃됨으로 말미암아서 가능해지는 현실일 것입니다.

37:57 당대에도 열등한 인간으로, 심지어는 남자의 재산으로 여겨졌던 그런 여인들에게도 기꺼이 동반자로 여겨주셨던 것들,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렸던 그 여성들로 하여금 오히려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게 하시고 명예롭고 존귀한 여성의 일상으로 회복시켜주셨던 분, 사람으로 간주하지 그런 어린아이들도 높여 주셨던 분, 개 만도 못하다고 멸시받던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들 역시 하나님나라의 주빈으로 초청해 주셨던 분...

38:30 오늘 우리의 현식 속에서도 이념으로 말미암아서 허리 잘린 이 한반도의 폭력적 현실들을 우리가 너무 가슴 아프게 지금도 경험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불의한 공권력에 의해서 희생당한 숱한 사람들의 역사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역사적인 회복과 더불어서 신원 받는 일들이 일어나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 오심으로 심지어 가부장제 사회에 의해서 차별과 억압 속에 놓여 있던 여성들에게 진정한 회복이 잇따라야 할 것입니다. 성적 취향이 다르다고, 인종이 다르다고, 출신이 다르고 경제 능력이 다르다고, 장애가 있다고 등등으로 폭력적 현실 속에 엄혹한 현실을 살아내야 했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회복들이 뒤따라야만 할 것입니다.

(39:14 다섯 번째, 예수님의 오심이 여타의 오염. 왜곡 등 등으로 부터의 회복이라면, 오늘도 심지어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창조세계 역시도 그들의 신음으로부터 해방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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