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신학, 그리고 교회
역사와 신학, 그리고 교회
  • 권영진
  • 승인 2018.01.03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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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진 목사의 정언향 칼럼
종교개혁가들
종교개혁가들(스위스, 제나바)

교부시대, 중세시대, 종교개혁시대, 근대시대, 현대시대.

교회사 전체에서 이 다섯 시대의 그룹은 각기 성경을 이해하고 교회를 서술하는 뚜렷한 패러다임, 즉 신학적 색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각 시대가 시작되게 된 세계사적 사건들과 그 궤를 같이 합니다. 예를 들면 가톨릭의 성립이, 교황과 왕들과의 대립이, 십자군 전쟁이, 문예부흥과 계몽주의 발달이, 시민혁명이, 산업혁명이, 1,2차 세계 대전이, 모더니즘의 몰락이 각 시대의 신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 역사를 알고 있으면 신학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함께 이해하게 됩니다. 이렇듯 신학과 역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는 신학은 진공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명한 신학용어인 [삶의 정황(Sitz im Leben)]으로 잘 표현됩니다.

그래서 신학은 과거의 사건들을 암송하고 기계적으로 그때의 신학적 사조를 외우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교조주의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과거를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맹종주의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각 시대의 신학들이(그 시대의 사람들이) 시대의 격랑 속에서 무엇을 잃지 않으려고 또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들이 버리려고 했던 것과 반대로 지키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게 되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오늘의 우리들에게 도전과제가 됩니다.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 찬탄도, 무조건적 배척도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자 몸부림쳤던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신학무용론자나 신학만능론자나 교회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는 전 차이점을 느끼지 못합니다.

신학(사상과 학설)은 완전무결한 것도 아니고, 변하지 않는 진리도 아닙니다. 그러나 신학을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노력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거대한 충격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저 과거의 것들을 별 생각없이 되뇌이고 반복하며 그게 전부인 것처럼 안일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영혼에 말입니다. 그래서 신학은 꼭 필요합니다.

신학을 연구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귀결로 우리는 성경으로 회귀하게 됩니다. 각 시대의 사람들이 그토록 알기를 열망했던 성경의 진리를 찾고자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우리의 말도 바뀝니다. [***(혹은 * 주의는) 성경을 이렇게 말하고 있어]에서 [성경은 ***을 이렇게 말하고 있어]로 말입니다. 거기까지 가야 비로소 신학은 성경의 좋은 가이드가 됩니다. 과거의 신학의 대가들은 항상 그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부끄럽지 않게 현실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맨날 '누가 뭐라고 그랬어' 에서 머물지 않고 성경은 이 시대의 사건 속에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정리해서 후대에게 남겨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신학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교회 모두의 몫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공동체)는 곧 신학이며, 성도는 곧 신학자입니다.

 

글쓴이 권영진 목사는, 정언향(正言香: 바른 말씀의 향기) 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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