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예루살렘을 외치는 현대판 십자군들
백 투 예루살렘을 외치는 현대판 십자군들
  • 권영진
  • 승인 2017.12.2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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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진 목사의 정언향 칼럼
에루살렘 근교에서 갈증에 시달리는 십자군들(1836-50), Palazzo Reale, Turin, 이탈리아
예루살렘 근교에서 갈증에 시달리는 십자군들(1836-50), Palazzo Reale, Turin, 이탈리아

 

1095, 159대 교황 우르바누스 2세(재위: 1088년 3월 12일~1099년 7월 29일)가 교황의 실추된 권위와 여러 계층의 세력다툼으로 뒤죽박죽된 유럽의 혼란을 일거에 해결하기 위한 묘수로 고안한 십자군 전쟁에서 프랑스, 독일 지역의 왕족들이나 제후들의 정식 기사단이나 정규군이 채 모집되기도 전에 먼저 결성된 무리는 사명감에 불타는 프랑스의 유랑 사제 피에르가 모집한 민간십자군이었습니다.

성지 예루살렘을 이교도 무슬림의 손에서 탈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간단한 선동에 당시의 무지한 백성들(특히 가진 것이 없는)"신께서 원하신다!"는 구호를 부르짖으며 신의 속죄와 보상이 보장된다고 하는 성전에 상당수가 참여했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역사가들은 5-10만 정도가 참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정규군이 아니었고 훈련된 군사도 아닌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콘스탄티노플까의 긴 거리를 가면서 병참문제를 진행하는 길에 있는 민가를 약탈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런 행동을 [신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것들은 곧 신의 뜻에 따르는 '정의로운' 것이었고 오히려 자신들을 막거나 방해하는 존재가 '사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온갖 민폐를 일삼으며 콘스탄티노플로 간 민간십자군은 우습게도 도움을 기다리던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세에게는 냉대를 받고(그도 그럴 것이 전투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집단이었기 때문) 별다른 지원도 없이 바로 소아시아 지역으로 가라는 요청(을 빙자한 추방)을 받습니다.

그 뒤의 결과는 처참합니다. 소아시아 지역으로 진입한 이 오합지졸들은 투르크 군대에 최소한 2만명 이상이 학살당했고 나머지는 노예로 잡히거나 혹은 소아시아 지역으로 뿔뿔히 흩어졌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뒤이어 온 정규 십자군에 합류했습니다. '신의 뜻'이라는 간단한 허울 좋은 명분에 동원당해 주변 국가들에게 온갖 민폐와 악행을 일삼던 이 '신의 군대'의 결말은 학살이었습니다.

이 부끄러운 기독교 역사의 한 면은 오늘날 [백 투 예루살렘]을 부르짖으며 또 다른 '성전'을 촉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재연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강대국의 미국의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교황' 트럼프의 한 마디에 다시 예루살렘을 탈환해야 한다는 선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진심이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것을 '신의 뜻'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한국교회인 것 같습니다. 이는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사대주의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왔던 관성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을 돌이키지 않는다면 끝은 과거 십자군 전쟁과 똑같은 역사의 재현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슬픕니다. 한국교회는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운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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