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하늘을 올려다보니 십자가가 보였다
도쿄 하늘을 올려다보니 십자가가 보였다
  • 황교진
  • 승인 2017.12.29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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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외국여행, 도쿄 2박 3일의 마지막 날(2)
황교진
ⓒ황교진

도쿄에서 한국인들과 예배한다는 건 한국에서 다른 교회에 나가 보는 것과 사뭇 느낌이 다르다. 이틀 동안 일본인들이 숭배하는 온갖 대상을 살펴보다가 처음으로 동포들과 만나 예배하는 시간은 어떤 느낌일까? 잘 살고 장수하고 매너 좋은 사람들의 나라에서 하나님께 어떤 기도가 나올까?

히가시나카노(東中野)에 있는 도쿄온누리교회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건물이었다. 예배 때 목사님 말씀으로는 이웃에서 항의가 들어오는 좁은 곳에 있다가 이 건물로 들어온 것이 큰 축복이라고 말씀하셨다. 2007년 시작된 하용조 목사님의 '러브소나타' 본거지이기도 하다. 그립고도 다정한 한국어 안내를 받아 2층의 예배실에 자리를 잡았다. 온누리교회의 의자와 같은 예배 의자에는 젊은 한국 분들이 많았고 스크린에 일어를 섞어서 안내하는 것으로 봐서는 일본인 분들도 계신 듯하다.

작은 강단에 남녀 찬양단이 꽉 차게 올라갔다. 젊은 남자 분이 찬양을 인도하셨다. 온누리교회 특유의 생기가 넘치는 찬양으로 시작하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 김명식 형의 오직 예수를 비롯해 가사 하나하나가 영혼에 파고든다. 그 포근하고 간절한 멜로디는 고향을 만나 안식하며 어머니를 하늘에 보내고 일어난 감정의 소용돌이들을 차분하게 돌아보고 안정시켜 주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감사한 마음과 일본 땅에서 느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영혼들에 대한 애절함이 겹쳐졌다. 문봉주 목사님(전 뉴질랜드대사, 68)은 외교공무원 출신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친근한 어조로 설교해 가셨다.

ⓒ황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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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잘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 한인들 가게로 손님들을 몰아주시고 축복해 주시길 바라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해주시길 기도하죠? 꼭 그렇지는 않아요. 잘 믿는데 더 큰 고난이 몰려옵니다. 하나님은 그 고난 속에서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본을 보세요. 일찍이 복음이 들어왔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0.2퍼센트도 안 돼요. 그런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경제대국이고 가장 장수하는 나라에요. 믿음이 부자와 장수로 만들어 주지 않아요.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시는 거예요.”

내가 어머니 간호로 받은 은혜를 나누는 간증에서 전하는 메시지와 일치한다. 불로부터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불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이 설교를 일본에서 들으니 완전히 새롭게 들린다. 교회 안의 부유해지고 싶고 장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교회 밖 일본은 그 모델이 되지 않으면서 마음속에선 잘먹고사니즘의 이데올로기가 둥지를 틀고 자리 잡고 있다. 샤머니즘이 가득한 나라에서 예배하며 울린 영혼의 종소리는 돌아가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를 심겨 주었다. 신앙이든 학문이든 공부할수록 더욱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에 집중해야 할 사명에 대해.

유락조(有楽町)역으로 이동했다. '마쓰모도 기요시'(マツモトキヨシ)라는 약국 체인점에 들렀다. 주식회사 마쓰모토기요시(Matsumoto Kiyoshi Co.,Ltd)에서 운영하는 매장 수가 엄청나게 많은 체인점이다. 처음 일본을 경험하는 내게는 조금 갸우뚱했지만, 일본의 약국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약국과는 달랐다. 각종 약들은 물론 다양한 생필품들이 빼곡히 차 있는 약국에는 현지 손님과 관광객이 섞여 북적였다. 형님은 지인들에게 부탁 받은 수면안대와 동전 모양의 파스를 여러 개 사셨는데, 요통에 자주 시달리는 내게 동전 파스를 써보라며 건네셨다. 이 글을 쓰며 검색해 보니 그 파스는 블로거들 사이에 이미 효과가 입증돼 일본 여행에서 사올 필수 품목이었다. 덕분에 파스 선물도 받고, 긴자 거리로 이동했다. 유락조역 부근 약국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십자가가 보였다. 도쿄 거리에 드물게 있는 교회를 보니 가슴이 훈훈해진다.

어젯밤에 본 화려한 긴자 거리는 차 없는 거리로 바뀌어 있었고, 5시가 안 되었는데 이미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귀국 비행기를 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스며들어 왔다. 133년 된 기독교 서점인 교분칸(敎文館)에 방문했다. 옛 종로서적처럼 층별로 책과 기독교 용품이 진열돼 있고, 천주교 서적과 용품도 판매하고 있었다. 성탄 시즌에 맞게 선물들도 전시돼 있고 방문객들도 많았다. 한국 신앙서적은 만날 수 없었지만, 영미 원서 코너는 따로 있었다. 형님은 지난여름 106세로 타계한 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에 관한 책을 사셨다. 우리나라에도 몇 권의 번역서가 소개되어 있다. 어린이 책 코너가 있는 윗 층도 찬찬히 둘러보았다. 기독교 인구는 적으나 교분칸은 화려한 긴자(銀座)거리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건재하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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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거리에 있는 기무라야(木村屋) 빵집에 들렀다. 일본의 근대화에 맞물려 있는 이 빵집도 역사가 149년이나 된다. 주로 단팥빵 종류가 많고, 빵을 사려는 손님들로 늘 북적댄다고 한다.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은 없으니 모두 포장 손님이다. 나는 신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음식이 팥이라고 생각하는 터라, 이 유서 깊은 빵집의 단팥빵에 기대가 컸다. 여러 종류를 주문하고 계산을 마쳤는데, 현관 쪽에 가장 인기 있는 빵이라고 놓여 있는 빵이 궁금해 하나 집어서 다시 계산하러 갔다. 형님이 혼자 계산해 보라고 하시며 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하여 간단하게 제스쳐와 영어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구멍이 있는 동전 5원과 50원이 헷갈려서 216엔쯤 되는 그 빵 값으로 지불한 동전이 모자라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나의 유능한 통역사인 형님이 오셔서 해결해 주셨다. 아이고! 긴자 거리를 걸으며 우리가 산 빵을 반씩 쪼개어 먹어 보았다. 역시 기대한 만큼 맛있었다. 숙소에 들러 캐리어를 찾고 공항으로 가는 모노레일을 탔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에 들렀다. 도쿄에서 품절이라 사지 못한 닌텐도 스위치를 혹시 면세점에서 살 수 있을까 안내데스크에 문의해 보았다. 안내원은 한국어로 인기 많아요하며 일어로 현재 어디에서든 닌텐도를 구하기 어렵다고 안타까운 말로 설명해 주셨다. 게임 좋아하는 영승이에게 아빠는 충분히 노력했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숙제를 남기고, 형님이 이건 꼭 사야 한다며 바나나 빵과 카스텔라(カステラ)를 아이들 선물로 사주셨다.

ANA항공(全日本空輸, ANA, All Nippon Airways)의 비즈니스라운지로 갔다. 항공사 마일리지가 많이 쌓여 있는 형님은 전 세계 웬만한 공항의 라운지를 다 이용할 수 있다. 기무라야 빵집의 단팥빵으로 배를 채우고 저녁 식사를 신경 쓰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됐다. 공항 라운지들 중에 세계 탑 클래스로 손꼽히는 ANA항공 라운지는 넓고 쾌적하며 식음료도 잘 갖춰져 있다. 따뜻한 우동부터 기막힌 카레까지 형님의 소개로 꼭 먹어보라는 것을 다 먹으니 포만감과 함께 마음도 여유로워진다.

8시 김포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 입국할 때는 동쪽으로 부는 바람 때문에 비행시간이 길어진데다가 (강원도) 원주 상공에서 항로도 약간 바뀌어 도쿄 행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맛난 기내식도 들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23일의 꿈같은 시간을 정리했다. 20년 동안 어머니 간호에 매달리다가 천국에 보내드리고 처음 경험한 해외여행. 아이들과 아내와 떨어져 친한 형님과 단둘이 경험해 본 이국의 문화와 풍경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을 때는 얻을 수 없는 성장과 생각의 폭을 얻었다. 촌놈 ()교진을 위해 수고해 주신 형님께 고마웠다. 직장 생활을 통해 알게 돼 친형제 같은 친분을 얻는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경험했다. 기온이 10도는 더 낮은 김포공항에 도착해 형님 먼저 택시타고 보내드리면서 고마움에 뭉클했다. 안양의 우리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따뜻한 물에 반신욕을 하면서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도쿄였는데 내 집이 맞나 싶을 만큼 어색하고도 친근하고도 행복한 공기.

한국에 온 첫 날, 나는 평촌 교보문고에 가서 일본 관련 책들을 찾아보았다. 일단 문서 자료만으로 집필한 고전 <국화와 칼>을 읽어 보고, 일본인의 책, 최근에 일본에서 살아 본 한국 저자의 책, 그리고 일본 영화들에 대해 이전과 다른 관심과 호기심이 생겼다. 일단 공부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이제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됐다. 열심히 살다가 가족들 데리고 내년에 다시 도쿄에 오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 깊이 배려해 주신 형님과는 싱가포르나 유럽으로 둘만의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오기를 고대한다.

 

글쓴이 황교진은, 출판편집인이자 <어머니는 소풍 중>의 저자이며 강연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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