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적으로 흥이 없는 내게 슬슬 올라오는 흥!
체질적으로 흥이 없는 내게 슬슬 올라오는 흥!
  • 황교진
  • 승인 2017.12.1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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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진의 생애 첫 외국여행, 도쿄 2박3일의 둘째 날
황교진
다이칸야마에 있는 츠타야 서점 1호, 2층 카페 ⓒ황교진

 

도쿄 첫 날은 사실 좀 무리한 일정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첫 비행기를 타야 해서 평소 생활리듬을 넘어서는 하루였는데다 설렘과 두통이 번갈아가며 왔다. 가이드해 주시는 형님은 열정적이었다. 마치 이번에 동생이 살아온 고생에 보답이라도 해주려 작정하시고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공항 VIP 라운지에서부터 일본 현지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해 주셨다. 출판사에서 같이 일할 때는 조용한 선비 스타일이었는데 도쿄에 오니 거의 작은 람보가 되셨다.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한 여행 첫날, 10시가 넘도록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시부야와 신주쿠 거리를 거닐다가 숙소에 들어왔다.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간단한 담소를 나누다가 그대로 곯아떨어졌는데...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아침, 창밖은 화창하고 공기 맑은 가을이었다. 대한민국의 가을하늘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도쿄의 12월 하늘은 또 다른 운치가 있다. 다행히 기상과 동시에 몸이 회복돼 있었다. 오늘 하루 기대가 된다. 조식 뷔페를 예약해 두어 식사하러 내려갔는데 한국인 단체 손님들이 우리와 같은 줄에 서 있었다. 식당은 좁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역시 공간 활용도 높은 뷔페였다. 조용히 혼자 식사하는 일본인들이 있는 식탁에서 낫또( 納豆, なっとう)도 먹어보며 특유의 향에 조금 익숙해졌다.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다. 돼지고기를 못 먹는 나라에서 온 듯한 외국인이 연신 음식 재료를 물어보며 접시에 담았다. 나는 일어를 못하기 때문에 조용히 먹으며 낮은 소리로 신기한 것들을 여쭤보는데 다양성에 대한 태도가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기준에서 저게 뭐야? 뭐 저래!’가 아니라 그들의 기준에서 저건 왜일까? 어떤 장점이 있을까?’로 말이다. 직접 보고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면 다양성의 관점이 달라진다. 넓게 배우게 되고 생각하게 된다.

첫 목적지는 츠타야서점(蔦屋書店)이 있는 다이칸야마(代官山)이다. 이곳은 한국의 청담동 분위기이다. 파란 하늘에 추수기의 화창한 햇살이 거리를 더 돋보이게 했다. 럭셔리해 보이는 주택과 상점들 사이에 고급 의류점이 보이고 대형견을 키우는 부유층이 여유 있게 거리를 산책하고 있다. 서점이라고 하기에는 럭셔리해 보이는 두 동의 건물이 다리로 연결된 곳이 츠타야서점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수많은 잡지들이 반긴다. 일본은 잡지의 나라라고 할 만큼 세분화된 잡지들이 서로 경쟁하며 공존하는데 그만큼 구독하는 오타쿠(オタク) 층이 두텁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동차 서적과 잡지 코너는 웬만한 카페 공간만큼이나 넓어서 각 나라별 차들에 대한 자료가 진열돼 있다. 모든 책들이 세밀하고 몇 뎁스 더 파고들어간 니치한 주제로 꽂혀 있다. 서점 밖이 쉽게 보이는 유리창 면에는 손님들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편의공간에 특유의 조명이 설치돼 있다.

2층에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바라는 컨셉의 레스토랑과 간단한 주류를 판매하는 휴식공간이 있는데 아쉽게도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다. 우리 앞 테이블은 아빠가 서양인인 일본 가족이 브런치를 먹고 있었고,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차를 들며 대화를 나누는 테이블이 몇 있었다. 형님 말로는 보통은 좌석이 꽉 찬다고 한다. 아포가토 종류의 차를 한잔 하고 음반, 용품 쪽도 둘러보았다. CD뿐만 아니라 LP판을 파는 곳도 건재해 있다. 문화 예술을 사랑하고 과거를 잘 보전하는 그들의 습성을 잘 보여준다. 책밥을 먹은 지 10여 년이라 츠타야서점에 있으니 마음이 푸근해지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안식이 느껴진다. 책과 선물을 좀 샀는데 관광객은 여권을 보여주면 택스 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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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의 라멘 맛집, 유자라멘 ⓒ황교진

 

다음 목적지인 시부야(渋谷, しぶや)까지 택시를 탔다. 시간 활용을 잘해서 여러 곳을 둘러보려면 가까운 곳은 택시로 이동하는 기동성이 필요하다. 일본 택시요금제는 1.052 Km는 기본료 410, 그 이상은 일정 거리 당 80엔씩 올라간다. 승객이 타는 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 우측 운행이 익숙한 내게는 운전석이 우측에 있는 것과 신호 받아 우회전하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가끔 넋 놓고 있다가 역주행하는 듯한 택시를 보고 깜짝 놀라곤 한다시부야에서 라멘(ラーメン)을 먹었다. 우리가 입장하자 테이블이 만원이 되고 밖에는 줄을 서는 맛집이었다. 나는 고들고들한 면에 유자향이 나는 라멘을 먹고 형님은 된장 라멘을 드셨다. 조금은 차가운 바람도 부는 날씨라 국물이 진한 라멘 맛이 더 일품이었다. 역시 여행은 맛집이 만족도를 채워준다.

점심 마치고 하라주쿠역(原宿駅, はらじゅくえき)의 메이지신궁(明治神宮, めいじじんぐう) 으로 갔다. 숲으로 둘러싸인 곳, 일본인들이 정초에 방문하여 소원을 빈다는 곳에 걸어 들어가는 그 길은 삼림욕을 하기에는 딱 좋은 곳이다. 수백 년은 살아온 나무들의 형체도 웅장하며 아름다웠고 꽤 걸어야 할 길인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메이지신궁도 다른 사찰이나 사당과 마찬가지로 손과 입을 씻고 줄을 서서 돈을 내고 소원을 비는 곳이 있다. 멀리 안쪽에서는 그들의 의식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숙연해 보이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인간이 무엇을 의지하고 무엇을 바라며 살아야 하는지 이 경제대국의 나라, 장수의 나라에서 묵상해 봤다. 외국인들도 많이 관람하고 있었다. 동양을 이해하는 관문다웠다메이지신궁을 나와 다케시타거리((竹下通)를 걸었다.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젊음의 거리였다. 캐릭터와 각종 옷, 화장품, 젊은 층이 좋아하는 먹거리들로... 가게들은 너무나 협소했는데 상품들은 꽉 차 있고 손님은 비집고 들어가 물건을 고르는 곳. 내게 그 가게 주인으로 살라면 못 살 것 같다. 한국 사람도 많이 찾는 그곳의 차도에는 워너원 멤버들 사진으로 도배된 버스와 노래도 지나간다. 한류의 힘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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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교엔에 있는 연못 정원 ⓒ황교진

 

택시를 타고 신주쿠 교엔(新宿御苑)으로 행했다. 23일 여행 통틀어 가장 편안하고 차분했던 곳이다. 넓은 공간에 일본 특유의 정취가 담긴 나무와 정원들을 보며 걷다가 프랑스 정원도 접한다. 제주도의 여미지 식물원의 크기를 확대하고 컨셉은 간소화한 느낌이다. 멀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비슷한 NTT(일본전신전화공사)도 보이지만 정원의 나무들의 형체는 신비함을 가득 안고 있다. 12월에 앉아보는 넓은 잔디밭도 느낌이 좋았다. 수선화의 향기도 맡을 수 있고 장미도 피어 있다. 은행나무 잎들이 떨어져 있는 길을 걸으면서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었다. 가슴 졸이며 살아온 지난 20년 이후 내게 주어진 여가와 쉼을 마음껏 누리다 가리라.

도쿄역으로 왔다. 일본인들에게 기차는 여러 모로 깊은 의미가 있다. 패전국에서 경제대국으로 향하는 기틀을 마련해 준 철도와 기차, 그 상징적인 곳이 여럿인데 도쿄역은 서울역의 요소가 보이면서 웅장하고 기품이 있었다. 에키벤(駅弁)이라는 역에서 파는 도시락 가게가 성황이라 인상적이었는데 파는 사람의 자부심, 사는 사람의 기대감이 넘쳐났다. 얼마나 도시락 종류가 많은지 입이 딱 벌어졌다. 8천 원 정도 하는 도식락이 평균가였는데 따뜻한 국물과 밥을 선호하는 우리 취향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식은 밥이어도 기차여행을 하며 도시락을 사먹는 그들의 문화는 시장을 이뤄 가는데 우리의 기차 먹거리는 편의점 속에 묻혀 있으니 말이다.

도쿄역 밤거리의 광장에서는 여러 마천루들이 경쟁하듯 빛나고 있다. 그중에 옛 중앙우체국인 키테(KITTE)에 들어가 보았다. 지금은 쇼핑몰이 되었지만 4층 서점을 거쳐 6층의 옥상정원 뷰도 볼만 하다. 키테 중정에 대형 트리가 전시돼 있다. 조명을 달리하며 빛나는 그 트리와 관련된 행사가 있는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6층 정원에서 주변을 보면 일본 지하철이 고속철과 함께 종류별로 정차하고 떠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슬슬 시장기가 돌아 저녁을 먹으러 료고쿠(両国)로 이동했다. 실내에 스모 경기장의 모형이 있고 에도 시대의 전통 음식점들이 둘러 있다. 실제 사이즈인 스모 경기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큰 몸집의 선수 두 명이 자세 잡고 있으면 경기장이 꽉 찰 듯하다. 그곳의 식당들은 가업을 이어받아 오래된 곳들이다. 메뉴를 둘러보다가 튀김덮밥을 먹기로 하고 체력을 보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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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역 광장 주변 빌딩 숲 ⓒ황교진

 

일단 숙소로 돌아왔다.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곳이라 나는 아내와 전화 통화도 하고 페이스북과 카카오톡도 확인하며 쉬었다. 형님은 꼭 봐야 할 야경 거리가 있다면 잠깐만 쉬다가 나가자고 하셨는데 고단하게 코를 골며 주무시기에 깨우지 않았다. 내가 일본에 한번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면 혼자서 좋은 시간 보내실 텐데 수고해 주신 고마움에 죄송하고 감사했다. 9시쯤 되니 형님이 벌떡 일어나셨다. 오늘은 그만 쉬어야 하지 않을까, 말씀드렸는데 꼭 이 시간에 가야 한다고 재촉하셔서 일어났다.

한국에서와 달리 에너지가 넘치는 형님이 나를 데려간 곳은 숙소에서 도보로 가까운 곳이었다. 걸으면서 무슨 특별한 산책로라도 있나 싶었는데 그곳이 바로 긴자 거리다. 긴자 8번가부터 1번가까지 우리가 묵은 숙소 옆 블록에 늘어서 있었다. 어디선가 말로만 들어 본 긴자의 격자 거리는 낮에 다녀 본 일본의 전통 관광지와는 차원이 다른 현대적 거리였다. 가로등과 빌딩의 화려한 입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화려함이 극치를 이루었다. 불가리의 화려한 뱀은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각종 명품들이 다 서 있었고 유니클로((ユニクロ)나 자라와 같은 저가형 패션 브랜드 빌딩들도 보였다. 그 화려한 명품 브랜드 빌딩 사이에 교문관(since 1885), 기무라야(木村屋) 빵집(since 1869)도 있고, 재즈를 연주하는 버스킹 밴드도 만났다.

형님은 내일 낮에 다시 와서 교문관의 기독교 서점과 차 없는 긴자(銀座, ぎんざ) 거리를 경험할 테지만, 낮에는 볼 수 없는 야경을 꼭 봐야 한다며 나를 데려오셨다. 23일 일정에 긴자 밤거리를 걸은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단지 화려하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 다양성에 대한 이해, 소유욕은 없지만 그런 소유에 대한 열망이 가지는 지점들에 대한 생각 거리를 던져 주었다. 83년 된 긴자라이온에서 삿포로 맥주 두 잔을 마시니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린다. 11시 되면 마감하는 긴자라이온 입구에는 10시 반 이후 들어오는 외국 관광객이 이렇게 일찍 문 닫느냐는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선다. 목욕탕 타일의 바닥 마감재와 설립 때부터 붙어 있는 벽화와 유럽의 고풍스런 천장 장식이 개성 있는 분위기를 안겨주는 홀에는 나이 많은 손님과 부유해 보이는 손님, 오늘 결혼하고 친구들과 피로연으로 온 듯한 젊은 손님들로 시끌벅적했다. 거리의 무표정과 달리 흥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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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라이온의 홀 ⓒ황교진

체질적으로 흥이 없는 내게 슬슬 올라오는 흥이라니! 숙소에 돌아와서 새벽 1시 이후까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생애 첫 외국여행의 마지막 밤이 아쉬웠다. 다음 날은 주일이다. 동경 온누리교회 한국어 예배 시간에 맞춰 갈 것이다. 한국과 달리 십자가 하나 보이지 않는 도쿄를 거닐다가 한국 분들을 만나 예배한다는 그 설렘도 사뭇 컸다. 쉽게 잠들지 못했다.

 

글쓴이 황교진은, 출판편집인이자 <어머니는 소풍 중>의 저자이며 강연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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