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는 처음이지? 건축 전공했다며? 어서 와."
"도쿄는 처음이지? 건축 전공했다며? 어서 와."
  • 황교진
  • 승인 2017.12.12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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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외국여행, 도쿄 2박3일의 첫째 날
황교진
ㅜㅜⓒ황교진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도쿄에 다녀왔다. 어머니 소천 후 나에게 주는 상으로 기획했고, 도쿄국제도서전에 맞추어 요모조모 둘러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올해 도쿄국제도서전은 열리지 않았다. 비행기 요금이 싼 날짜로 잡았고 금요일 첫 비행기 타고 출발해 마지막 날 주일성수는 동경온누리교회에서 예배했다. 주일 밤 10시 넘어 귀국해 자정 가까운 시간에 무사히 귀가했다. 비행기 티케팅부터 숙소 예약과 모든 여행 일정은 과거 한 직장에서 근무한 형님이 잡아 주셨다. 인문학적 깊이가 있는 탁월한 가이드까지 이끌어 주신 형님 덕분에 나의 첫 해외여행은 여러모로 풍성했다. 나는 왕복 비행기와 지하철 요금 정도로 꿈같은 도쿄 여행을 경험했다.

2008년에 다니던 직장에서 우수사원에 뽑힌 일이 있다. 수상 선물은 보름간 호주와 뉴질랜드를 다녀오는 연수였다. 당시 나는 어머니 간호에 지장이 있는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않았다. 회사에 사정을 말하고 연수를 포기한 채 계속 근무했다. 대신 연수비용을 12개월 분납으로 월급에 얹어 받았다.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있는 나는 신혼여행을 2박3일 제주도로 다녀왔고, 어머니 간호를 마칠 때까지 외국에 나간다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강원도도 최근 1, 2년 사이에 두어 번 다녀왔다. 이제야 외국에도 나가보는 이런 시간을 갖는 아들을 흐뭇해하실 어머니의 미소가 떠오른다.

12월의 도쿄는 가을이다. 은행나무의 노란 물은 나무에 그대로 걸려 있고 빨간 단풍은 절정에 달해 있다. 그러면서도 같은 시간대임에도 한국과 다른 체감 시차로 오후 4시 반이면 어둠이 내린다. 시원한 바람에 맑은 하늘이 여행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하네다 공항에 내린 첫 날은 비가 좀 내렸지만, 여기저기 둘러보기에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고, 둘째 날부터는 깊고 아름답고 공기 맑은 가을로 돌아가 있었다. 직장생활에서 만나 형제 이상이 된 형님은 고단함도 표현 안 하고 오직 나를 위한 특별 선물 같은 여행 계획을 세워주셨다. 대부분 지하철로 이동했고, 유창한 일본어로 도쿄 구석구석 꼭 가봐야 할 곳을 꼭꼭 집어서 안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외에는 한마디도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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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황교진

일본은 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놀라운 디테일의 나라다. 좁은 공간을 구석구석 활용하고 여행객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어디서든 접할 수 있다. 도쿄는 동양이면서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이 들고 어디서든 친절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무표정했지만,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을 걸면 미소와 배려가 넘친다. 나는 첫 도쿄 행이라 이국적인 분위기에 끌리면서도 음식뿐만 아니라 거리 곳곳에서 코로 들어오는 특유의 간장(?) 냄새가 이색적이었다. 당연히 한국의 일식집과 현지 음식은 달랐다. 호호 불어가며 먹어야 할 팔팔 끓인 뜨거운 국물은 접하지 못했고, 먹기 좋은 온도에 맞추어 내오면서도 자극이 없었다. 심지어 편의점 삼각김밥의 매운 맛은 조금도 맵지 않다. 셋째 날이 되자 한국적인 자극이 그리워지기도 하여 나는 완전한 한국 입맛이란 걸 도쿄에서 처음 느꼈다.

오늘은 첫 날만 회상하여 기록한다. 하네다 공항에서 도쿄로 들어가는 길에 모노레일을 타보았다. 편리하고 부드러운 운송책이었고 실내가 넓지 않았지만 캐리어를 놓기에 좋은 공간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가이드해 주신 형님은 미술관을 좋아하셔서 도쿄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와 재팬" 전시회 관람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며 어지러워 잠들었지만, 고흐 그림전에서는 신비한 색감과 붓 터치로 눈이 호강했다. 나는 그림도 좋았지만 액자에도 관심이 많이 갔다. 고흐 그림의 액자들은 세계적인 작품의 틀다운 포스가 넘쳤다. 

과거 일본 서민들 일상이면서 우리의 1950~1960년대의 느낌도 고스란히 담긴 작은 민속촌 격인 시타마치 박물관 그리고 "안도 다다오 특별전"이 열리는 국립신박물관을 다녀왔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책과 글로 살아온 나를 위해 안도 다다오를 둘러보게 해 주신 배려에 감사했다. 안도의 천재성을 보면 대학 시절 좌절과 인내에 대한 기억과 동시에 위대한 예술가로부터 전해지는 전율과 감동이 일렁인다. 한국 여주에 안도의 설계작인 숲의교회가 있고 이탈리아에도 그의 설계작이 있다. 불국사, 석굴암을 만든 김대성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안도 다다오와 김대성,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의 구도가 될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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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처음 발을 디딘 날, 이런 기막힌 전시회를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이 서프라이즈였다. 일본 도심 안에 있는 다양한 갤러리들은 6:00까지 운영한다. 그러나 금요일 밤은 특별히 저녁 8시까지 운영하는 곳이 많다. 퇴근하고 볼거리 많은 전시회에 쉽게 접근하여 예술로 샤워할 수 있다. 이런 문화는 참 부럽다. 안도의 스케치와 모델이 작품처럼 전시된 갤러리에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번뜩였고, 전시회가 끝나면 철거할 <빛의 교회>의 예배당 실물 공간을 그대로 재현해 둔 곳에서는 입이 딱 벌어졌다. 그는 일본의 히어로일 뿐만 아니라 건축 설계를 하는 모든 이의 레전드다운 포스가 특별전에서 그대로 뿜어져 나왔다. 그의 작품 세계를 보러 온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도쿄타워가 한눈에 보이는 록뽕기 52층에서 본 야경도 신비로웠고, 그곳에서 한국 관광객도 만났다.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가는 가깝지만 미묘한 감정의 나라, 도쿄 거리에서 현대기아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고, 클락숀 소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택시 기사는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다. 이 할아버지 분들이 제복을 입고 택시를 운행하신다. 뭔가 잘 정리된 남의 집에 온 기분이다. 조심히 둘러보고 느껴 본 첫 날 일정 중에 우리의 남대문 시장 격인 아메요코초(アメヤ横丁) 골목에는 터키인처럼 보이는 다국적 상인도 있었다. 음식점 호객 행위를 하는 젊은 외국인이 우리가 한국인인지 어떻게 알았는지 한국말로 호객한다. 

“졸라 맛있어요!”

숙소에서 창문을 열자 내진 설계 지지대가 내게 말을 건넨다. 

"도쿄는 처음이지? 건축 전공했다며? 어서 와."

 

글쓴이 황교진은, 출판편집인이자 <어머니는 소풍 중>의 저자이며 강연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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