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과 호전성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나라
친절과 호전성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나라
  • 황교진
  • 승인 2017.12.1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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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외국여행, 도쿄 2박 3일의 마지막 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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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진

 

첫 외국여행 도쿄 2박 3일의 마지막 날은 주일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의 꼭 한 주 전이고 기억에 생생하다. 기독교 인구가 0.2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일본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고, 국제적인 문제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도 둘러보았다. 거리에서 십자가를 편의점 이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두 번밖에 교회 십자가를 보지 못한 도쿄에서의 예배는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귀국 후 1주일이 지났지만 도쿄에서의 생경하고 세밀한 정취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제 교회 친구가 가족여행으로 도쿄에 가서 페북에 올려준 사진만 봐도 두근거릴 만큼 다시 여행할 날이 오길 바란다.

넓은 방은 아니었지만 편안하게 2박한 숙소를 체크아웃하는 시간마저 섭섭했다. 오후에 긴자 거리의 기독교서점을 둘러보기 위해 짐을 맡겨두고 가벼운 몸으로 숙소 앞 모스카페로 향했다. 일본 음식만 먹다가 햄버거가 당겨서 형님께 햄버거로 조식을 들자고 했는데 마침 아침 일찍 문을 연 모스버거가 숙소 건너편에 있었다. 2박 3일 중 유일하게 글로벌한 메뉴였는데 특이하게도 햄버거에 뿌려 먹는 '에스프레소 소스'를 곁들여 주었다. 우리는 커피를 포함한 세트메뉴인 줄 알았다. 맛이 꽤 좋았다. 형님은 치킨카레를 시켰는데 한 술 떠보니 내 입맛에 꼭 맞았다. 일식이 아닌 음식도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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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도쿄온누리교회의 9시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려 했는데 동선이 너무 빡빡하여 일정을 조정하여 2시 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첫 목적지로 츠키지 시장을 둘러보았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전통수산시장이다. 수산물을 판매하는 어시장에서 꼬치 음식을 비롯한 다양한 해물 요리와 따뜻한 국물을 서서 먹는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500엔을 주고 참치 꼬치구이를 사 먹어보았다. 참치를 회로 먹다가 구워서 먹는 꼬치 맛은 좀 특이했는데, 담백하고 살짝 고소했다. 계란말이 꼬치 상점에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무를 갈아서 올려주는 그 계란말이 꼬치는 줄이 길어 포기했다. 한국 김치를 파는 가게에 광천 김들이 올려 있어 반가움에 탄성을 질렀다. 주인이 대구에서 오신 분이다. 한국말로 잠시 인사 나누니 애국심이 불끈 타오른다. 츠키지 시장의 그 한국인 가게가 대박나길 기원한다. 도쿄 시에서 2018년에 츠키지 시장을 이전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경매를 위주로 하는 도매 시장 외에 관광객이 많이 모여드는 이 일대는 그대로 남겨둔다고 한다.

츠키지 어시장 바로 건너편에 혼간지라는 사찰이 있다. 건축양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인도의 사원 요소의 느낌이 많이 들어 있었다. 중요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이 사찰의 널따란 앞뜰에는 유치원 아이들이 야외수업을 받고 있었다. 주일에도 수업을 하는 대안학교인지 모르겠다. 우리 둘째가 생각나는 그 아이들 곁을 지나 본당에 들어가니 마침 예불 중이었다. 대화를 나누기에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내부를 눈으로만 조심조심 관찰했다. 일본의 사찰, 전통 가옥 등에는 특유의 빛바랜 검은색이 많이 쓰인다. 어딜 가도 보이는 그 색이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그들의 다채로움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였다. 화장실로 이어진 복도를 찾아 걸어가는데 뜻밖에도 엑스재팬의 기타리스트 히데를 추모하는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사랑합니다” 한국팬의 글귀도 보인다. 히데의 죽음을 슬퍼하는 공간을 이 사찰이 내어주고 있다는 게 이색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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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간지를 나와 에도성터로 향했다. 마침 황실 정원의 깊숙한 뜰을 개방하는 마지막 날이라 인파가 몰려들었다. 우리는 굳이 사람들 많은 그곳을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해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공원으로 향하면서 일본인들의 천황 숭배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했다. 일요일 아침 천황의 가까운 공간을 경험하려고 빠른 걸음으로 향하는 그들의 정서에 기독교의 하나님이 들어갈 공간을 만든다는 건 기적에 가까워 보였다. 에도성터는 둘째 날 본 신주쿠교엔만큼 아름답고 기품 있는 나무들이 맞아주었고 오랜 성터의 돌벽에서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위용이 뿜어져 나왔다. 도중에 천황과 황실 이미지를 담은 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천황과 가족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고, 카운터에는 사진과 달력 등을 판매하는데, 우리 정서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천황에 대한 그들의 각별한 마음이 느껴졌다. 성터의 일부인 드넓은 잔디밭을 지나 혼마루라고 하는 조금 높은 성터에 줄지어 올라가 넓은 정원을 내려다보는데 역시 맑은 가을(!) 하늘과 따뜻한 햇볕이 시야에 펼쳐진 정원을 빛내 주었다.

국화와 칼
국화와 칼

에도성터에서 나와 무도관을 거쳐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곳을 여행 일정에서 배제할 수 있으나 오히려 반드시 가보아야 한다는 형님의 말에 동의가 됐다. 우리에게는 전쟁범이나 그들에게는 영웅들을 기리는 그곳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진 않았다. 이글을 쓰며 <국화와 칼>을 읽고 있는데, 평화를 사랑하며 칼과 무사를 존중하는 그들 특유의 아이러니를 야스쿠니 신사에서 생각하게 된다. 장병들 유품 3천여 점을 전시한 전시관에서 자살 특공대가 몰았을 전투기와 자신들이 아시아의 큰형님처럼 군림할 목적으로 개발하고 사용한 증기기관차와 전투 무기들을 보며 여러 나라를 괴롭힌 그들의 역사 앞에서 현재 후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싶었다. 일본 육해공군의 전투식량도 판매되고 있었다. 평화(친절)와 전쟁(호전성)이 이렇게 기묘하게 공존하는 그 부조화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창덕궁 정원처럼 꾸며진 안쪽 산책로의 연못 주변을 걷는데 화려한 잉어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히가시나카노 역으로 지하철을 탔다. 드디어 많은 신들의 나라에서 예배를 드린다. <새벽형 크리스천>을 쓰신 문봉주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도쿄온누리교회를 출력한 약도로 찾아갔다. 역에서 많이 떨어져 있지 않아 찾기 쉬웠다. 2시 한국어 예배까지 시간이 남아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을 찾았다. 아담한 단독주택들이 대부분인 동네여서인지 식당이 보이지 않아 편의점이라도 만나길 바랐는데 마침 세븐일레븐이 눈에 띄었다. 삼각김밥을 먹어보기로 했다. 탄산수도 사서 먹을 곳을 찾았는데, 특이하게도 일본 편의점은 취식하는 공간이 없다. 마침 편의점 인근의 하천이 흐르는 깔끔한 산책로에 앉아서 먹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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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2박3일 도쿄 여행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형님과 예배 시간을 기다리며 삼각김밥을 먹던 바로 그 벤치에서의 시간과 풍경이다. 매운 맛을 골랐는데 맵지 않은 삼각김밥을 입에 넣으며 까마귀 소리만 울리는 조용한 주일 오후, 개 한 마리를 끌고 나온 일본인 부부 외에는 정적이 감도는 그 조용함과 평화로움에 푸른 하늘과 따뜻한 공기가 우리를 담백하게 감싸고 있었다.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화려한 역사가 담기지도 않은 히가시나카노 역 부근 주택가의 아기자기한 공간에서 한국인들과의 예배를 기다리는 그 시간의 그 조용한 공기가 삼각김밥과 탄산수와 함께 내 영혼을 평화롭게 채워주었다.

도쿄온누리교회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아직 일정이 남았지만 언제 이런 예배 전의 고요함과 기대감을 느껴보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천변을 따라 벚나무가 심어진 주택가의 고즈넉한 산책로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글쓴이 황교진은, 출판편집인이자 <어머니는 소풍 중>의 저자이며 강연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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