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5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팩트체크] '토착 왜구'의 기원은? ‘토착왜구’ 논쟁이 벌어집니다. 토착왜구 표현의 유래는 어디일까요? 토착왜구의 뜻을 담은 표현은 토왜입니다. '토왜'의 기원은 언제 누구였을까요? 이를 두고 방송과 온라인에서 설왕설래하고 있습니다."일단 확인되는 게 일제강점기 이태현 선생이 쓴 정암사고라는 책에서 비슷한 말이 발견됩니다. 일종의 개인 산문집인데요, 왜놈들을 꾸짖는다는 부분을 보면, 비슷한 말이 발견됩니다. '토왜'란 말이 나오는데요. 흙토자를 쓰고 있죠? 역시 친일부역자로 해석이 되고, 이른바 토착왜구란 말과 가장 가까운 뜻으로 보입니다 뉴스 속으로 | 김동문 | 2019-03-21 08:51 [반론] 1905년 8월 이승만을 일진회 대변자로 보도한 일부 미국 신문은 오보 1905년 8월 4일 극히 일부 미국 신문이 이승만과 윤병구를 일진회 대변자로 보도한 것은 오보였다. (아래 표 첫 칸에서 보듯이 Washington Times나 Morning Post가 오보를 내보내고 두 지방 신문도 그 보도를 받아 게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뉴욕 롱아일랜드 현장에서 가까운 브루클린에서 발행된 Brooklyn Daily Eagle은 황제나 정부나 정파를 대변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제출하려고 했다고 바르게 보도했다. 그 다음 날 8월 5일자 신문들은 여러 유력지(표에서 진하게 표시)를 포함 이슈광장 | 옥성득 | 2019-03-08 21:57 [반론] 이승만을 일진회 회원, 친일 외교의 주역으로 몬 역사 왜곡을 했나? (기사 수정 2019.03.04 01:24 서울 시각) 옥성득 교수의 반론 글을 읽었다. 급하게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이견을 다시 제시해본다. 옥 교수의 글에 담긴 내용에 대한 이견을 담은 것이다. 한겨레신문 기사나 김동문의 글을 오독한 것처럼 보이는 대목을 지적해본다.1. “이후 유사한 기사가 SNS를 통해 퍼지고 페이스북이나 온라인 신문 등에 계속 올라오고 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쓴 기자는 당시 신문 가운데 한 기사만 읽고 이승만이 친일파인 ‘일진회’ 대변인을 자처했으며, 대한제국을 부정하고 반러, 친일 노선을 드러냈다고 주장 이슈광장 | 김동문 | 2019-03-04 23:52 [반론] 1905년 여름 이승만은 고종 밀사도 아니고 일진회 대표도 아니었다. 8,000명 하와이 한인 대표로 윤병구 목사와 이승만은 태프트 국방장관의 추천서를 가지고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미국이 힘써 줄 것을 청원하는 문서를 개인 자격으로 전달했다. 당시 워싱턴 디시에 한국 공사관(김윤정 서리공사)이 있었기 때문에 루즈벨트는 두 사람의 문서를 개인 문서로 간주하고 공사관을 거쳐 공식적으로 올리라고 말했다. 이는 핑계에 불과했다. 이미 태프트 장관이 일본 외무상 가츠라와 밀약을 맺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2011년 한겨레에서 이승만 외교를 친일로 몰았고, 2012년 정 이슈광장 | 옥성득 | 2019-03-04 14:48 [팩트체크] 이승만은 고종황제의 밀사였다? “민(경배) 박사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이승만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년 1월 26일 ~ 1949년 8월 5일)와 동행해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는 역사 자료가 있다고 한다.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 사건이 있은 후에 을사늑약의 무효성을 알리기 위해 헐버트가 고종 황제로부터 친서를 받아 1905년 미국 대통령에게 밀서를 전달하고자 했을 때, 이승만이 헐버트와 동행했다는 내용이다. 그 전에는 헐버트만 다루어 졌는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이승만이 동행한 것으로 이슈광장 | 김동문 | 2019-03-01 22:18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