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사업하는 회사가 아니다
교회는 사업하는 회사가 아니다
  • 옥성득
  • 승인 2017.11.12 21: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옥성득의 새로 쓰는 한국교회사 - ​​​​​​​기업형 교회(corporate church) 비판
Vincent van Gogh, Saint-Rémy(1889)
Vincent van Gogh, Saint-Rémy(1889)

'위대한 세기'19세기에 세계로 확장된 선교 운동의 결과로 태어난 선교지의 교회들은 한국 교회를 포함하여 대부분 기업형 교회(corporate church)로 발전하였다. 비록 '더 위대한 세기'20세기 말에 선교지 교회들이 모국 교회를 수적으로 능가하는, 민족적이고 토착적인 교회로 세계 기독교를 형성했지만, 대다수 교회는 회사 교회 모델을 의심 없이 수용하여 성장을 추구했다. 곧 교회(교파) 선교, 선교회 선교, 독립 선교라는 세 가지 선교의 결과, 시차와 규모에 차이가 있지만, 경영의 효율성(efficiency in management)을 위해서, 다국적 기업이나 회사의 구조와 문화를 그대로 따라갔다.

초국가 기업들은 효율성을 위해 만든 수직적인 의사 결정 구조 속에, 현지의 값싼 재료를 이용해 본국에서 제조한 상품을 식민지에서 되팔아 현지인을 소비자로 만들거나, 현지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저가 생산으로 다른 지역에 수출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했다. 동일하게 선교 운동은, 교파형이든 선교회형이든 믿음 선교의 소수파 복음주의 선교였든, 자본주의 기업형 교회로 귀결되었다. 한국 장로교회는 네비우스정책)으로 인해 자립하는 기업형 개교회주의가 더 빨리 정착되었다. 네비우스 정책은 존 네비우스(John L. Nevius, 1854-1893)가 제안한 새로운 선교방법론(Methods of Mission Work)으로, 자급, 자전, 자치의 3자 정책을 말하는데. 한국 장로교회는 1891년에 채택했다.

해방 이후 영토 분할(comity)이 사라지고 교파간 종교 시장 경쟁이 가능해 진 남한의 교파들은 수직 계층적 교회 정치를 통해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고, 기복신앙으로 증대시킨 헌금을 자본화하여 부동산을 늘리고, 수입 신학과 수입 프로그램이라는 상품으로 교인들을 소비자로 만들어 일시 만족을 주고, 자원 봉사의 이름으로 봉사 노동을 '착취'하는 '경영'을 통하여, (회사)교회를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나갔다. 캠퍼스를 늘리거나 지교회를 만들거나 기관들을 흡수 합병하여 거대 기업형 교회로 성장시켰다. 한국의 경우 한 세대 동안 (1967-97) 경제 급성장과 교회의 압축 성장은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뛰었다. 세계화의 이름으로 해외 진출(선교)에도 적극 뛰어들어 한국적 기업교회를 확산시켰다.

 

패러다임의 문제

규모가 아니라 어떤 패러다임의 교회인가가 문제이다.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이익 극대화의 이름으로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고 무한 경쟁으로 교회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가는 한편 교인 대다수는 수동적인 소비자로만 머물게 하여 원스탑쇼핑으로 거짓 만족을 즐기도록 하는 압축 '성장'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가족 공동체, 마을 공동체, 협동조합 공동체와 같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공생하고, 이익을 균분하면서, 건전한 환경과 생태계를 유지하는 민주적 코이노니아와 민중적 디아코니아가 함께 가는 교회 모델을 추구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대형교회가 가진 기업 문화로 인한 비성경적인 목회와 세습은 명성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분당우리교회의 애매한 태도는 사랑의교회라는 대형교회 패러다임의 중독에서 빠져나오고 싶지만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온누리교회는 19933,000명의 메가처치로 진입하자 바로 기가처지를 지향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 결과 10년 만에 10배로 압축성장했다. 초국가 기업처럼 해외 비전교회들도 확장했다.

기업형 교회(corporate church)CEO 담임목사와 임원인 장로들이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경영하는 비즈니스이다. 기업은 숫자로 표시되는 가시적 성장, 확장을 추진해야 한다. 세계화, 대마불사, 양질의 프로그램 상품, 극장식 예배당, 고학력의 선전자인 목회자 등등이 필요하다.

그 한 축이었던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 남서울교회 홍정길 목사도 은퇴하면서 기업형 교회가 생산한 '제자들'의 삶과 그 교회가 세상과 다르지 않아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 후속 조치가 없거나 약했거나, 더 악화되었다. 정주채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향상교회 은퇴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12619일 오후, 바른교회아카데미가 주관한 목사, 누구이며 무엇하는 사람인가라는 주제로 연 제1회 굿 처치(GOOD CHURCH) 포럼에서 한 발표 중 편집자 주)

"잠실중앙교회가 성장하여 공간이 부족해 질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하던 중에 교인이 1,500명에 이르면 분립을 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결국 그 원칙에 따라 분립을 위해 교회당 부지를 물색하다가 용인에 터를 사게 되었고 부목사를 파송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자신이 결단을 내려 개척을 하게 된 것이 향상교회였다. 그리하여 잠실중앙교회도 분립개척을 하는 교회로 향상교회도 분립개척을 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형교회보다는 작은 교회가 더 충실하며 대형교회 하나보다는 작은 교회 10개가 더 알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규모도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다. 동의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500명이든, 1,500명이든 어떤 목회철학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소형, 중형, 대형 상관없이 모두 기업형 개교회로 운영되는 한국교회. 그러니 누가 누가를 비판할 것인가? 자립도 못하는 소형 구멍가게 같은 교회가 80%에 가깝다. 그런 교회를 양산하는 한국 교단들과 신학교들의 패러다임을 왜 비판하지 못하는가? 독립, 자립하지 못하는 기업이 기업인가? 그런 목회자를 양산하는 신학교가 신학교인가? 소형교회나 신학교에는 부패가 없으며 비리가 없는가? 일반 신도는 말할 것도 없고, 신학생과 부목사에게 대형교회 자리는 선망의 대상이 아닌가. 한 패러다임의 배 안에 타고 있기에 다른 무리를 향해 비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회가 기업이라면 세습은 칭찬받아야 한다. 가업을 이어 받아 그 힘든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종업원을 먹여 살려야 하고, 양질의 상품으로 세상에 기여하면서 이익을 창출해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삼환 목사는 그 큰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대기업이라도 냉혹하고 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교회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대안적 교회론은 무엇인가? 그게 없다면 명성교회 세습을 비판할 수 없다. 아들이 이어받거나 부목사가 이어받거나 교회의 성격과 패러다임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교회 교인들은 그것을 알기에 차라리 아들 목사가 더 나아보이는 것이다.

 

교회 개혁의 방향: 가나안 성도가 아니라 제자를 만들어야

기업형교회을 검색어로 구글 검색을 하니 내가 모르는 마이크 브린(Mike Breen, 지난 25년간 미셔널교회 운동을 전개해온 영국의- 편집자 주) 의 글https://www.vergenetwork.org/2012/01/02/why-corporate-church-wont-work-mike-breen/이 있다.

Mike Breen
Mike Breen

그가 그린 이 도표에 나는 세습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그려보았다. 기업교회의 피곤한 사람 돌리기(moving people, not making people)와 기업교회의 비리와 세습 등에 실망한 자들이 가나안 성도가 되어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그들이 '세속 성자'로 살기에는 '가나안'의 유혹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세속화와 비종교화의 파도 속에 다 잠기고 만다. 사망의 자리이다. 그 중에 다행히 '전멸'을 면하고 간혹 오른쪽으로 옮겨 가정적 교회로 오는 자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왼쪽 아래에서 사라질 것이다.

기업 교회가 아닌 "제자를 만드는 운동으로서의 선교적 교회"가 대안이다. 다르게 말하면, 교회 개혁은 운동이어야 하고, 그 핵심 동력은 제자 만들기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처럼 끝에는 십자가를 지는 겸비와 섬김의 과정이다. 가정교회로 가면 속닥한 교회, 관계 중심의 소그룹은 되겠지만, 사회 영향력은 적다. 그래도 건강하고 '친환경'적이다.

대형 기업교회 세우는 fortune-builder보다 차라리 가족적 교회를 세우는 family-builder가 되고, 가능하면 movement-builder가 되라고 그는 권면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