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위대한 점 하나, ‘아내를 잘 만났다’
루터의 위대한 점 하나, ‘아내를 잘 만났다’
  • 옥성득
  • 승인 2017.11.05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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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카타리나
루터와 카타리나

<경국대전>에 의하면 6품 이상의 관헌은 3대까지 제사를 지내고, 7품 이하는 2대조까지, 일반인은 부모에게만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물려받는 것도 양자를 들이는 대신 형제가 이어갔다.(윤국인 역, 신편 경국대전 (신서원, 2005), 242.)

조선 초기에는 3(三代) 봉사를 했으나, 17세기에 오면서 4대 봉사로 늘어났다. 제사 횟수가 늘면서 윤회 봉사라는 개념에서 제사를 특정인에게 맡기는 봉사조(奉祀條)가 증대되었다.(문숙자, 조선시대 재산상속과 가족 (경인문화사, 2004), 112-113)

17세기까지 딸도 제사를 모셨으나, 점차 아들과 장자가 제사를 지내다가, 18세기 중반부터 장자에게 일원화되었다. 따라서 상속도 서자와 딸을 제외하고, 아들과 장자에게 집중되었다. 인구가 급증하고 노동집약적 소농(小農) 사회가 되면서, 토지를 나누기보다는 장자에게 몰아주고 그에게 책임을 맡기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18세기에 한국과 일본에서는 산업(industrial) 혁명이 아니라 노동집약 (industrious) 혁명이 일어났다. 그래서 아들과 장자 상속으로 바뀌었다.

15-16세기 독일에서는 막내아들이 부친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먼저 태어난 아들은 부친에게 농사법 등을 배워서 자립해 나가고, 남은 어린 막내는 재산(많지 않은 토지)을 받아 생존할 수 있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110~ 1546218)의 부친 한스 루더(Hans Luder)도 막내가 아니었다. 그는 소작농으로 살기보다는 집을 나가 광산에서 열심히 일했고, 신분 상승을 이루었다. 광산의 공동소유주가 될 정도로 부를 축척했고 시의원까지 되었다. 그래서 아들 마르틴은 법학을 공부해서 존경받는 변호사가 되기를 바랬다.

마르틴 루터의 글을 읽고 1523년 수녀원을 도망쳐 나온 12명의 수녀들이 비텐베르그(Wittenberg)에 머물렀다. 사실 수녀원의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 1499129-15521220)는 루터의 토론과 신학을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수녀원을 나오기 위해서 직접 루터에게 편지를 보내어 수녀원에서 빠져 나갈 경우 비텐베르그 시에서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루터는 이들을 차례로 결혼시켰다. 마지막으로 카타리나가 남았다. 24세인 그녀는 10세에 님쉔(Nimbschen) 소재 시토회 마리엔트론(Marienthron) 수녀원에 들어가서 10년을 지내다가 나온 터였다. 카타리나는 시장 겸 시청 서기인 Philip Reichenbach의 집에 살면서 일했다. 그녀는 루터가 중매한 비텐베르크대학 카스파르 글랏츠(Kaspar Glatz) 교수의 구혼을 당당히 거절하였고, 직접 루터에게 제안했다.

"나와 결혼하면 어때요?"

루터는 결혼할 뜻이 없었다. 그러나 이 당찬 카타리나의 모습과 제안을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 루터가 마흔 둘, 카타리나가 스물 여섯, 열 여섯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1525613일 결혼식을 올렸다. 루터는 자신의 결혼의 목적이 늙은 아버지에게 자손를 안겨 주기 위해서, 또한 결혼을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설교를 몸소 실천하면서 본 보이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러나 결혼은 그 이상이었다. 루터에게 카타리나가 없었다면 그의 개혁 운동은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카타리나가 만든 맥주가 없었더라면.... 집 안팎의 대소사를 경영하고 처리해 나간 아내에 대해 루터는 이렇게 고백했다.

"베니스를 장화 한 짝과 바꾸지 않듯이, 나는 캐시를 프랑스와도 바꾸고 싶지 않다." 

두 사람 사이엔 여섯 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가장 큰 슬픔은 루터가 애지중지했던 Magdalene14세에 갑자기 죽었을 때였다. 첫 딸이 태어난 지 얼마 후에 죽었고 그 다음 태어난 아이였다.

1540년 루터 말년에 루터는 졸스도로프(Zolsdorf)에 농장을 사서 카타리나에게 주었다. 루터 가족은 시간만 나면 이곳에 가서 행복한 가족만의 시간을 만끽했다. 루터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카타리나를 보면서, "내 주인 캐시가 자신의 새 왕국에서 뛰논다. 비텐베르그에서는 손님들 접대에 가사에 종사하면서 육체로 살았다면, 졸스도로프에서는 노래하며 춤추는 영으로 산다."고 표현했다.

15462, 루터는 사망할 때 많은 재산을 아내인 카타리나에게 단독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당시로서는 희한한 일이었다. 결국 그대로 집행되지는 않았지만, 루터가 얼마나 아내를 신뢰하고 자녀의 후견인으로 삼았는지 잘 알 수 있다. 전 재산을 아내에게 준 루터,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저러나 한국교회는 여자 목사 안수를 언제 다 시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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