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내 귀를 뚫어 주셨구나 했는데
아버지께서 내 귀를 뚫어 주셨구나 했는데
  • 유혜연
  • 승인 2017.12.26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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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연의 선교일기 - 선교지에서 현지어로 소통한다는 것은
선교사에게 언어 습득은 단순 소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선교사에게 언어 습득은 단순 소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김동문

ㄷ선교사에게 언어 습득은 단순 소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땅의 문화 역사 정치 경제등을 배우는 가장 기본이며 필수이다. 2004년 A국에 도착함과 동시에 언어 공부에 모든 것을 투자했다. 오전에는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숙제를 하고, 저녁에는 TV를 계속 틀어 놓고,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 부었다.

2 외국어로 영어를 공부한 경험이 있던 우리 부부는 제 3 외국어는 그래도 더 쉽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자만이 있었던 것 같다. 소속 단체에서는 이 땅의 언어는 배우기 어려운 언어에 속하기에 기본 2년의 풀타임 언어 공부를 요구하였다. 언어를 배우는 그 2년 동안에는 다른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러한 규칙을 처음 접했을 때, 살짝 오기가 생겼다. 사역하러 왔는데, 2년 동안이나 공부만 하라니, 보기 좋게 그 규칙을 깨봐야지, 1년 안에 보란 듯이 해봐야지...! 사명감과 오기(?)가 원동력이 되어 언어 공부를 열심히, 열심이 하였다.

고등학교 때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하바드대도 갈수 있었을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7개월, 8개월, 9개월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귀도 어둡고 입도 둔하기만 했다. 이런 속도라면 2년이 지나도 사역은커녕 이 땅에서 살아가기에도 퍽퍽할 것 같았다. 슬슬 조바심이 나고, 실망이 되고, 오기 부린 것이 창피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나의 손은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귀는 거실 TV에서 흘러나오는 이 땅의 언어에 모든 촉각을 세우고 들어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 순간, 나에게도 기적이 찾아왔다. 뉴스 내용이 귀를 통해 뇌로 전달되어 이해가 되고 있던 것이었다. 와우, 들린다, 들린다. 뉴스앵커의 설명이 이해가 된다. 그 순간 내 심장이 빠르게 뛰고 다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이런 것이 기적이구나, 아버지께서 내 귀를 뚫어 주셨구나!

거실로 뛰쳐나가 이 기쁜 소식을 온 천하에 전하려 할 그 순간, ~~ 영어 방송이구나...! 내 귀에 들리는 언어는 이 땅의 언어가 아닌 저녁 시간에 나오는 영어 뉴스 시간이었던 것이다. 나의 다리가 완전히 풀렸다. 그냥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깔 깔 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가 폭포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웃다가 울다가 다시 울다가 웃다를 거듬하며,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본다. 빨리 가려 하지 말고, 성실히 가자! 14년이 지났어도 그 땅의 언어는 나를 겸손케 한다. 배워도, 배워도, 언어에는 자신이 없다. 이제는 그 땅의 언어로 모든 사역이 진행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사역의 열매는 언어의 유창함이나 어눌함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글쓴이 유혜연 선교사는, 현재 LA에 거주하며 Salt & Light Community Church를 남편과 함께 섬기고 있다. 가정 세미나, 상담 사역을 하며, 비거주 선교지 사역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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