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 말씀 신앙이 되라!
[장일] 말씀 신앙이 되라!
  • 장일
  • 승인 2019.05.20 07:5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일 목사의 야고보서 강해 설교 6 - 야고보서 1:19~27

서 론

야고보서 강해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퀴즈 하나를 내며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어디일까요? 미국? 독일? 영국? 모두 아닙니다. 작년에 유엔 산하 기구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행복지수 1위는 핀란드가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덴마크, 노르웨이 등 주로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덴마크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덴마크 또한 늘 행복지수 상위권에 랭크되는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덴마크를 행복한 나라로 만든 것일까요? 여섯 개의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 이것을 다시 세 단어로 정리하면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덴마크의 행복비밀은 유치원에 숨겨져 있습니다. 덴마크 유치원의 교육철학은 다름 아닌 어린 시절부터 누리는 ‘자유’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유를 어떻게 충분히 느끼게 해줄까요? 일례로 덴마크 유치원에는 교육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저희 아이만 하더라도 가정통신문을 보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빼곡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덴마크 유치원은 오전에 등원하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아이들 스스로 놀이거리를 찾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유치원은 도시가 아닌 숲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숲에서 아이들은 사과를 따기도 하고 그 사과로 주스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음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식탁에 오르는지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입니다. 이때 선생님의 역할은 뭔가를 주입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 잘 뛰어놀고 있는지만 살피면 됩니다. 이처럼 덴마크 사회의 행복 요소는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누리는 자유에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말씀과 행함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시편 1편 말씀 다들 암송하시죠? 1절의 ‘복 있는 사람’이란 사실 ‘행복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 신앙 또한 행복한 신앙으로 성장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말씀은 시험을 만났을 때 그 시험을 이기는 능력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 같은 신앙을 ‘말씀 신앙’이라고 정의합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 이 말씀 신앙의 중요성을 반드시 붙잡기를 권면합니다. 또한 이를 위한 세 가지 명령을 의무가 아닌 복으로 누리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온유함으로 받으라

말씀 신앙이 되라! 첫 번째는, ‘온유함으로 받으라’입니다.

1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20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1 그러므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오늘 야고보는 흩어진 교회에게 애정을 담은 명령으로 본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명령은 두 가지입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명령입니다.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와 노하기는 더디 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만 놓고 보면 왠지 자기계발서에서 나오는 내용처럼 들립니다. 또한 이 명령은 잠언이나 전도서 등 지혜서에 나오는 교훈과도 유사합니다. 이는 우리가 지켜야 할 일반적 지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명령입니다. 그게 뭐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적극 따라야 할 명령이 한 번 더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유함으로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그 말씀에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분 속에 심어주신 말씀 곧 우리 안에 심겨진 말씀’이란 앞서 18절에 나온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의미합니다.

여기 시험에 빠진 한 소년이 있습니다. 이 소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목사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독교 진리에 대해 수많은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년이 고민하며 고통스러워하던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의 문제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가?’ 소년이 느끼고 체험하고 싶었던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는 무려 5년 동안 죄의 짐의 눌려 고통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소년의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눈보라가 치던 주일 아침, 그는 어느 작은 감리교회에 들어갔습니다. 이 날은 눈이 많이 와서 목사님조차 예배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결국 무명의 한 설교자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발음도 매우 부정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날 소년은 무명의 설교자가 전한 말씀을 통해 그토록 갈망하던 구원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그를 옥죄었던 영혼의 쇠사슬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는 이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습니다. 교회에 들어갔던 10시 30분 그리고 교회에서 나온 12시 30분, 이 사이에 그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1850년 5월 3일 그의 나이 16세의 일입니다.

여러분 이 소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영국이 낳은 설교의 황태자 찰스 스펄전 목사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는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말씀 사역 앞에 열린 마음과 수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의 최종적인 권위이며 유일한 안내자임을 겸손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높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말씀 신앙을 왜 찾아보기가 어렵습니까?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감정 신앙, 말씀보다 내 가치판단이 우선인 내가 복음. 바로 이러한 신앙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야고보가 말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이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을 이기는 신앙은 감정 신앙, 내가 복음이 아닌 오직 말씀 위에 선 신앙입니다. 오늘도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받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 행하는 사람이 되라

말씀 신앙이 되라! 두 번째는, ‘행하는 사람이 되라’입니다.

22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23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얼굴을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기만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24 이런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보고 떠나가서 그것이 어떠한지를 곧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25 그러나 완전한 율법 곧 자유를 주는 율법을 잘 살피고 끊임없이 그대로 사는 사람은, 율법을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가 행한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 신앙을 위한 두 번째 명령입니다.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는 태도는 분명 중요합니다. 그러나 말씀 신앙은 그것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야고보는 이전보다 더욱 강한 도전과 경고를 보냅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말씀이 주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흩어진 교회 안에는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슨 착각일까요? 말씀을 듣는 것을 마치 행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착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대형교회에 몰리고 명설교자를 찾아다니는 심리가 뭔지 아세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명품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자신도 급이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말씀을 행하지 않고 그저 듣는 것만으로 수준 높은 신앙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야고보는 그러한 태도를 배격합니다. 이는 마치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고 곧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결국 이러한 모습은 자신을 속이는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교회오빠
영화 '교회오빠'

지난주에 개봉한 한 영화가 있습니다. 제목은 ‘교회오빠’입니다. 현재 이 영화는 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찾는이에게도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영화 교회오빠는 ‘故 이관희 집사’의 마지막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이관희 집사를 보면 마치 욥의 고난이 떠오릅니다. 이관희 집사는 우리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결혼 3년 만에 도무지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예쁜 딸을 얻은 기쁨도 잠시, 그는 대장암 4기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때 그의 나이 서른 일곱입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이 충격으로 이관희 집사의 어머니는 스스로 삶을 마감합니다. 게다가 어머니가 떠난지 5개월 만에 아내 마저 혈액암 4기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야말로 비현실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이 눈앞에 닥친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상황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저도 솔직히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이관희 집사 또한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절망하고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서툴고 부족했기에, 단 하루라도 온전하고 충실된 하루를 살아보고 싶다”. 실제로 그는 생명이 꺼져가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닮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며 끝까지 진통제를 거부하는 장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 신앙의 가치가 이제 보이시나요? 말씀 위에 선 신앙이 아니면 우리는 이러한 고난 앞에서 반드시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오직 말씀 신앙만이 하루라도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믿음을 가능케 합니다. 또한 주님은 이 신앙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하늘의 복을 허락하십니다. 말씀을 행함으로 이 하늘의 복을 누리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참된 경건을 가지라

말씀 신앙이 되라! 마지막은, ‘참된 경건을 가지라’입니다.

26 누가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혀를 다스리지 않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신앙은 헛된 것입니다. 27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명령은 헛되지 않은 경건 곧 참된 경건을 갖는 것입니다. 여러분 경건이 무엇입니까? 한자로 ‘공경할 경에 정성스러울 건’입니다. 하나님을 정성스럽게 공경한다는 뜻입니다. 경건은 하나의 생활입니다. 곧 예배당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을 나타나는 것이죠. 야고보는 참된 경건의 모습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자신의 혀 곧 말을 통제하는 삶. 둘째, 고난을 겪는 고아와 과부 곧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삶. 셋째,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삶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지금 경건을 말하면서 종교적인 행위들을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YTN 뉴스 갈무리
YTN 뉴스( 2019. 5. 14.) 갈무리

우리는 일반적으로 경건을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헌금하며 봉사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이러한 종교적인 행위들도 경건생활의 중요한 표지입니다. 그러나 야고보가 말하는 경건은 결코 예배당 안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참된 경건은 세상 한복판 곧 학교와 도서관, 직장과 사업장, 정치와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지난 석가탄신일에 한 정치인의 태도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합장 거부 논란’입니다. 합장이 뭔지 아시죠? 가슴에 두 손을 모으는 불교식 예법입니다. 행사를 위해 사찰을 찾았지만 혼자서 합장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분은 평소 독실한 신앙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신학공부도 했기에 전도사라는 직분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종교적 신념 때문에 합장을 거부한 것으로 보입니다. 언뜻 보면 매우 경건한 신앙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뿐만 아니라 이분은 현재 보수 기독교계에서 요셉, 다니엘과 같은 인물로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오늘 참된 경건의 모습 중 하나로 고아와 과부 곧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치인은 현재 ‘세월호 수사 방해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공안검사로 활동했던 이력을 보면 사회적 약자보다는 기득권층을 대변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이유로 보수 기독교계가 이 정치인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에 매우 큰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 신앙은 행함으로도 나타나지만 반드시 경건의 열매를 맺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이 경건의 열매가 ‘참된 것이냐? 아니면 헛된 것이냐?’에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5절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경건이란 ‘모양이 아닌 능력 곧 삶으로 나타나는 열매’에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위에 선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도 나타나지만 우리의 일상 곧 가정과 일터, 사회와 모든 관계 안에서 확증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결 론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강해 여섯 번째 시간으로 ‘말씀 신앙이 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오늘 야고보는 말씀 신앙을 세우는 세 가지 명령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라, 참된 경건을 가지라. 우리는 현재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TV, 라디오, 인터넷, 요즘에는 유튜브의 등장으로 전 세계의 설교방송을 들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여전히 위기 가운데 놓여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말씀은 넘쳐나지만,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시험을 만났을 때는 오직 말씀만이 그 시험을 이기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매주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습니다. 또한 매일 말씀을 통독하고 묵상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말씀 신앙으로 세우는 근원은 행함과 경건의 훈련으로 되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예수님께서도 비가 오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사람은 안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팔로우공동체 또한 모래 위가 아닌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말씀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Zion 2019-05-28 10:47:32
종교적 행위만이 경건이 아니라는 건 잘 알겠는데, 황 대표가 합장을 안 한 것이 왜, 경건의 아닌 것의 예화로 등장하는지 모르겠군요, 게다가 간첩들 잡는 공안 검사로 대한민국의 기틀을 지킨 것이 왜 기득권을 대변하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