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 참된 믿음을 찾습니다
[장일] 참된 믿음을 찾습니다
  • 장일
  • 승인 2019.07.0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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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 목사의 야고보서 강해 09 - 야고보서 2:14~26

서 론

야고보서 강해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행동하는 양심’ 여러분은 이 단어를 들으면 누가 먼저 떠오르십니까? 아마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오를 것입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그의 마지막 연설이 남긴 명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행동하는 양심을 있게 한 다른 한 분이 떠오릅니다. 바로 故 이희호 여사입니다. 고인은 지난달 10일 향년 97세의 나이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알다시피 이희호 여사는 단순한 내조자를 넘어 1세대 여성운동가, 민주화운동가 그리고 DJ의 정치적 동지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어낸 삶을 살았습니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장충단공원 유세에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장충단공원 유세에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김대중평화센터)

이 여사는 의사 아버지를 둔 기독교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이화여고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귀국 후에는 YWCA 총무를 맡아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의 길에 들어섭니다. 그러던 중 1962년 만 40세의 나이로 DJ와 운명적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당시 주변에서는 모두 결혼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DJ가 두 아이를 둔 정치낭인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녀의 결혼생활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결혼 열흘 만에 DJ가 반혁명 혐의로 체포됩니다. 이어지는 미국 망명과 납치사건, 가택연금과 투옥, 내란음모사건과 수감 등 군사정권 내내 온갖 감시와 탄압에 시달렸습니다. 그래도 ‘고진감래’라고 했던가요? 네 번의 도전 끝에 15대 대통령에 당선이 됩니다.

끝으로 이희호 여사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종당시 병실에는 시편 23편이 울려 퍼졌다고 합니다. 장례예배 또한 그녀가 장로로 섬겼던 교회에서 치러졌습니다. 교계에서도 “민주주의의 친구가 되고, 힘없는 이들과 연대하며, 갈라진 땅에 평화를 심은 고인의 삶을 기억하겠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여러분 참된 믿음이 무엇일까요? 야고보는 참된 믿음을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이란 ‘행동하는 믿음 곧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한국교회는 여전히 1000만의 교세를 자랑하지만 이 행함이 있는 믿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재 기독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가 뭔지 아세요? 왕의재정2가 1위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관심은 행함이 있는 믿음보다 잘 되는 믿음 솔직히 말해 부자 되는 믿음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이 현실이 오늘 우리가 말씀을 무겁게 받아야 할 이유입니다. 행동하는 믿음이 멸종해가는 시대에 “아니요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이렇게 외치며 증명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참된 믿음

참된 믿음을 찾습니다 첫 번째는, ‘참된 믿음’입니다.

14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16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7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는 본문을 시작하며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한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질문의 핵심이 뭐죠? 한마디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이어서 구제를 예로 들어 행함 없는 믿음을 설명합니다. 공동체 안에 끼니를 굶고 있는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지금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뭘까요? 사우나 티켓이요? 호텔 숙박권이요? 따뜻한 밥 한 끼입니다. 당장 손잡고 가서 백반 한 끼, 국밥 한 그릇을 먹이는 게 우선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움이 아닌 말로만 때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고 얼마나 힘들어요? 얼른 따뜻한 곳에 가서 식사부터 좀 하세요.” 아니 누가 그걸 모릅니까? 얼마나 힘들면 밥 한 끼 사먹을 돈이 없겠습니까?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에는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도움이 빠져있습니다. 그저 말만 무성할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을 약한 믿음이나 미성숙한 믿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죽은 것입니다.” 너무 단호하게 들리시나요? 아니에요. 생각해보세요. 살아있는 믿음, 활동하는 믿음이 아니기에 당연히 죽은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믿음은 구원에 이르지도 못함을 분명히 강조합니다.

지난주 대구 향기로운은혜교회에 위로금을 보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목사님 사택에 화재가 나서 두 딸과 사모님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둘째 하경양이 화재 13일 만에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현재 넷째 하빈양과 사모님이 화상치료와 수술을 받고 있습니다. 위로금을 보내며 성도님들께 참 감사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 교회는 여전히 미자립교회에 해당됩니다. 최소한의 예산으로 교회 살림을 꾸려가는 중입니다. “목사님 교회 밖으로 물질을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내실을 다져야 할 때가 아닐까요?” 이런 의문이 충분히 들 수도 있지만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 열 명이 되지 않는 개척교회가 큰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당면한 슬픔도 슬픔이지만 수억 원의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게 더 급한 현실입니다. 이때 우리가 전한 위로금이 비록 작을지라도 긍휼을 행하는 믿음에는 작음이 없음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의 관심은 어떤 이론이나 신학적인 설명에 있지 않습니다. 진짜 관심은 긍휼을 베푸는 실천적 믿음에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참된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뒤따릅니다. 믿노라 하지만 긍휼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우리 공동체의 영성이 입만 살아 있는 죽은 믿음이 아닌 손과 발이 살아 있는 참된 믿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 거짓 믿음

참된 믿음을 찾습니다 두 번째는, ‘거짓 믿음’입니다. 

18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행함이 있다. 행함이 없는 너의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그리하면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너에게 보이겠다." 19 그대는 하나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귀신들도 그렇게 믿고 떱니다. 20 ,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여러분 어떻게 하면 우리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의외로 교회 안에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오해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18절에 야고보는 어떤 사람의 주장을 인용합니다. "너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행함이 있다. 행함이 없는 너의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그리하면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너에게 보이겠다." 그러나 이 주장은 매우 극단적인 주장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행함이 있다.” 아니요. 믿음과 행함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믿음이 있는데 어떻게 행함이 없을 수 있습니까? 반대로 행함만 있고 믿음이 없는 경우가 있을까요?

이어서 야고보는 거짓 믿음의 예를 설명합니다. 마가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의 정체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바로 귀신 들린 사람입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이처럼 귀신들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믿음은 결코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아무런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야고보가 지금 뭘 말하려는지 아시겠어요? 제 아무리 고상한 신앙고백을 드리더라도 결국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귀신들의 믿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OCN 드라마 "구해줘"

얼마 전 케이블TV OCN 방송에서 ‘구해줘’라는 드라마가 방영했습니다. 드라마의 배경은 월추리라는 작은 시골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현재 개발지구로 지정되어 보상금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마을에 한 외지인이 내려옵니다. 그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편안함과 배려심을 갖췄습니다. 또한 서울 유명대학의 교수이자 교회의 장로이기도 합니다. 그는 아무 조건 없이 마을 보상금 문제에 발 벗고 나서줍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얻어 마을에 작은 교회를 개척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장로가 교회를 세운 목적이 마을 복음화를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일까요?

놀랍게도 이 장로는 전과 12범의 사기꾼입니다. 교수나 장로의 직함도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가 시골 마을을 찾은 이유는 오직 보상금 때문입니다. 드라마를 보며 제가 섬뜩했던 부분은 최장로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입니다. 배우 천호진씨가 연기를 했는데 정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장로님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을을 벗어나면 눈빛부터 달라지는 사기꾼 그 자체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현란한 말이 아닌 행함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죠?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 수 있듯이, 우리의 믿음도 행함으로 증명될 것입니다. 기독교 가문에서 자랐거나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그 자체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고백한 신앙고백이 참으로 드러나는 자리는 교회가 아닌 세상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가정과 일터 그리고 내가 관계 맺는 모든 곳에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도가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 가치를 따르는 순종이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세상은 우리가 외치는 은혜로운 구호가 아닌 드러나는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3. 믿음의 사람들

참된 믿음을 찾습니다 마지막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2 그대가 보는 대로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작용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23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라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또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렀습니다. 24 여러분이 아는 대로, 사람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25 창녀 라합도 정탐꾼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내보내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6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믿음의 인물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누구입니까? 아브라함과 라합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입니다. 야고보는 그가 독자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 의롭게 되었다 곧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 말은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부족하니 행함이 추가로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의 행함과 함께 역사한 것입니다. 공동번역은 “그의 믿음은 행동과 일치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이처럼 야고보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지 결코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24절의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믿음도 참된 믿음이 아닌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라합은 어떻습니까? 그녀 또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여리고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목숨을 걸고 그들을 인도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녀와 가족들은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에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서론에 언급한 이희호 여사 이야기를 좀 더 나누겠습니다. 그녀가 쓴 책 중에 ‘내일을 위한 기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DJ가 내란음모혐의로 투옥중일 때 보낸 편지들을 엮은 책입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쓴 편지가 무려 300여 통에 이릅니다. 그 중에 한 대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저는 남 보는 데서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써서 참고 눈물을 삼켜버리고 보이지를 않습니다. 더구나 당신이 더 아파하실까봐 당신에게는 눈물을 보이지 않기로 한 것인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나 봅니다. 저는 요즘 교회에 나가 찬송을 부르면 눈물이 나와 견딜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결코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고난 받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보이는 것 같고 예수님이 홀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는 모습이 눈 앞에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외롭고, 고독한 주의 형제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짧은 편지이지만 여러 의미들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남편에 대한 존경, 하나님에 대한 경외, 약자들에 대한 기도. 당시 DJ는 사형선고를 받고 언제 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하나님께 대한 기도를 편지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행위 또한 믿음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포자기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26절은 본문의 결론입니다. 야고보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쐐기를 박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면 어떻게 됩니까? 죽습니다. 믿음과 행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지금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이루어가고 있고 주의 날에 완성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날에 믿음의 사람들로 인정받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현재적 믿음 즉 ‘오늘 나의 믿음은 어떠한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행함과 함께 역사하는 참된 믿음으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결 론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강해 아홉 번째 시간으로 ‘참된 믿음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야고보가 말한 믿음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반대로 거짓 믿음은 행함이 없는 말뿐인 믿음입니다. 교회가 위기라고 합니다. 네 위기 맞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본질은 교회나 교인의 감소에 있지 않습니다. 진짜 위기는 믿음에 있습니다. 참된 믿음 곧 행함이 있는 믿음이 멸종해가는 것이 위기의 본질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이웃과 더불어, 자신과 더불어, 세상과 더불어 믿음으로 살아가며 행함으로 증명하는 그런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처럼 참된 믿음을 드러내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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