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유월절, 양이 아닌 자신을 죽인 날
첫 유월절, 양이 아닌 자신을 죽인 날
  • 김동문
  • 승인 2018.03.29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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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유월절 그 현장 이야기

고대 이집트에서 신들에 대한 경배는 전혀 배타적이지 않았다. 한 개인이나 집단이 여러 신을 섬길 수도 있었다. 오직 자기만을 숭배하라고 배타적 신앙을 요구하는 신은 없었다. 물론, 신들의; 제사장들이 더 많은 숭배자를 끌어들이고자 애를 쓰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야웨 하나님은 달랐다. 다른 신들보다 월등한 지위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만을 받들 것을 요구하였다. 이상스러운 존재로 다가왔다. 받아들일 수 없는 신의 성품이었다. 그 결단을 한 이들에 대해서는, 인종과 사회적 지위를 넘어서서 자신이 구원할 것이라고 했다. 모세와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백성들을 선동했다. 양을 잡으라는 선동이었다.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을 불러서 말했다. 전달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그런데 이 요구사항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양을 잡는다'는 것은 그러나 단순하지 않은, 엄청난 폭력적 메시지였다. 이 유월절 의식은 단지 의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던 이집트 종교의 핵심을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유월절은 단지 야곱의 혈통을 가진 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야곱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유월절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출애굽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히브리 사람이 아니라 하여도 유월절에 동참하였으면 그는 새로운 이스라엘이었다. 유월절 제물로 드려진 양과 염소는 모두 당시 이집트의 수호신인 태양신 아몬의 이미지를 담은 살아있는 상징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신성화되었던 것은 숫양과 숫염소였다. 숫양은 창조신 크눔의 상징으로 자리하였다. 아울러 저승 세계의 최고신 오시리스의 영혼을 담고 있는 것으로 숭배되기도 하였다. 이집트의 적 목자 집단의 주신 세스(Seth) 신의 상징으로, 각 지역에서 다양한 신의 형상으로 숫양이 숭배되었고, 그 최절정기는 숫양이 아몬 라 신의 형상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이집트인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양신 아몬 라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가 실재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철저한 논리 속에서 그러했다. 이 태양신 라는 하나의 상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숫양의 형상이었다. 굽은 뿔을 가진 동물의 형상으로 숫염소의 형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구약에서는 양과 염소를 나타내는 단어가 동일한 경우가 많다.

유월절 제물로 드려진 양과 염소는 이집트의 수호신인 태양신 아몬의 이미지를 담은 상징물이었다. 이집트 최고의 거룩한 도시 카르낙 신전의 입구에도 태양신 아몬 레를 상징하는 숫염소가 도열해 있다. 이 양은 살아 있는 태양신의 또 다른 매개물이다. 그 상징성이 워낙 강하다. 숫양만 보아도 태양신이 떠올랐다. 도시는 물론, 크고 작은 마을마다 이 태양신의 신전이 있고, 사제 계급만 해도 10여만 명이 존재한다. 그야말로 태양신의 위력은 엄청나다.

야웨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준비시키시면서 수많은 동물 중에 1년 된 숫양이나 숫염소로 희생을 드리라고 했다. , , 나귀, 낙타, 돼지, 닭 새, 비둘기, 그리고 이 외에도 온갖 동물들이 많았는데, 하필이면 1년 된 숫양이나 숫염소라니. 그것도 구워서 먹으라고 한다. 이것은 이집트인들에게 엄청난 신성모독 행위에 동참하라는 요구였다. 태양신 라, 그 신을 잡아먹으라는 명령이었다.

이것은 엄청난 문제였다. 이집트에 살던 이집트 본토인들이나 다양한 이방인들은 물론, 반이집트 성향의 야곱의 후손도 고민은 있었다. 그들에게 이집트 종교는 토착 종교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400여 년 이상 이집트에 살면서 이미 정신적으로는 완전한 이집트인이 되어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갈등이 적지 않았다. 살아 있는 태양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인하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가 아닌가?

그러나 더 큰 갈등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양을 몰래 잡아서 집안에서만 슬쩍 먹어 해결하라고 하셨으면 고민이 되긴 했겠지만 어떻게든 해 볼 만했을 것이다. 그런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동네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문 입구에다 바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공개적으로 이집트의 신성한 교리를 깨뜨리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사안이었다. 그렇다. 그나마 해질 때에 양을 잡으라 하셨고, 밤중에 그 피를 문 밖에 바르라고 하셨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의 긴긴 밤이 문제였다. 전전긍긍하던 이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느낌들이 와 닿았을까? 이 밤에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날이 밝으면 동네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이집트인들로부터 당하게 될 보복과 피의 살인이 두렵지 않았을까? 신을 모독하고 이집트의 모든 것을 부정했다는 혐의를 벗지 못할 것이었기에. 이들이 이 밤이 새고 날이 밝기를 기다림은 다른 날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잔뜩 오그라든 마음을 깨우는 소리가 날이 밝아 오면서 들려 왔다. 그것은 곳곳에서 들려오는 곡성이었다. 닭의 울음소리를 대신하여 들려 왔을 소리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준무장한 상태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들었을 이 고통의 소리는 이들에게 구원의 소리였다.

그러나 그 아침은 죽음, 그것도 여러번 죽는 과정을 통해 마주한 아침이었다. 스스로 갖고 있던 태양신 아몬 라의 저주, 아몬 라 신의 대리인 파라오의 저주, 법에 의한 처벌, 주민들에 의한 죽음 등은 현실이었다. 그 완전한 죽음을 통과한 이들에게 유월절 아침이 새 아침으로 다가온 것이다. 오늘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한 수많은 신화, 성역, 금기, 통제가 있다. 그 모든 것의 권위를 의심하는 것, 그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하물며 그 수천년전 이집트 땅에서 그것을 선택한 이들은, 사선을 넘은 이들이었다. 유월절 그 밤에 죽은 것은 바로 출애굽에 참여한 이들의 목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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