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양 되신 예수, 희생양 삼은 어둠의 자식들
희생양 되신 예수, 희생양 삼은 어둠의 자식들
  • 김동문
  • 승인 2018.03.29 0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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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말하는 예수의 마지막 유월절
이탈리아 로마의 San Vitale 예배당 천정벽화(548)

2018년은 어떻게 유월절, 무교절은 아래와 같이 지키고 있다. 유대력에 따르면 유월절 절기는 330일 금요일 일몰시각부터 47일 토요일 일몰시각까지이다. 명절 중간에 331일 토요일 안식일이 들어있다.

 

The angel of death striking a door during the plague of Rome

첫 유월절과 예수의 마지막 유월절

유월절 전에 이집트의 모든 신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재앙이 쏟아졌다. 그것은 거대한 종교 전쟁이었다. 파라오도, 그 체제도 무너졌다. 그 큰 전쟁의 끝에 유월절 재앙이 있었다. 그 유월절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을 맞이하고 나서야, 야곱의 후손들과 중다한 종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것이 첫 번째 해방의 날이었다. 이 해방의 날은 유월의 그 아침이었다.

그런데 예수의 마지막 예루살렘 행적을 따라가면서 드는 몇 가지 궁금함이 풀리지 않는다. 그 중 하나가 유월절 준비일이 금요일 낮 시간이었는가?’ 이다.

THE GOSPEL OF JOHN, Henry Ian Cusick, 2003
THE GOSPEL OF JOHN, Henry Ian Cusick(2003)

무교절 첫날, 유월절 준비일, 유월절

요한복음에는 이와 관련 아래와 같은 구절이 언급된다. 여기서 유월절의 준비일, 유대인의 준비일, 그 안식일 등의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 무슨 요일인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예시 본문에 등장하는 그 안식일이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의 안식일 자체를 지칭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마태26:17)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마태27:6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마가14:1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마가15:42)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누가23:5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요한19:14)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요한19:42)

그 안식일과 안식일

요한이 묘사한 그 안식일은 유월절에 이어지는 첫째날과 일곱째날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요한의 이야기를 듣는 청중들이 다 아는 그 유월절일 수도 있다. 아래 유월절, 무교절 절기를 소개하는 모세오경 본문을 따라가 보자.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열닷샛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이레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너희는 이레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레위기 23:5-8)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여호와를 위하여 지킬 유월절이며, 또 그 달 열다섯째 날부터는 명절이니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그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 일곱째 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민수기 28:16-18, 25)
  첫째 달 그 달 열 나흗날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출애굽기 12:18)
너희에게 첫날에도 성회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가 되리니 너희는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자의 먹을 것만 갖출 것이니라. (출애굽기 12:16)

요한이 언급한 그 안식일은 평소의 안식일이 아닌 무교절의 1, 7일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예수의 마지막 유월절, 그 안식일이 매주 맞이하는 안식일과 겹쳤는지도 모른다.

예수시대의 유대인의 유월절 기념식사인 세데르(Seder) 음식은 무교병, 삶은 달걀, 쓴 나물, 양념장, 포도주와 어린 양의 정강이뼈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전통으로 자리잡은 유월절 풍습에 담겨있는 것이다. 첫번째 유월절은 이런 것은 아니었다. 요한이 주목하는 것은 첫번째 유월절이 아니었다, 에수 시대의 유월절 현장이었다.

예수와 제자들의 식탁에는 이런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요한이 묘사 하지 않았다고 이런 식사를 안 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너무 당연한 것은 언급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의 언급(19)을 따라가면 예수님은 유월절 기념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유월절 기념 식사(세데르)는 유월절 축제일 첫날 저녁에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의 관점을 따라가면, 예수와 그 제자들은 유월절의 준비일 즉 유월절 전날 밤에 저녁 식사를 같이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강조점을 담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어린양과 안식일의 주인이다.

예수, 유월절 어린양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 지역은 이렇다할 도시가 세워진 적이 없다. 그곳은 예루살렘 안팎의 양떼를 방목하던 곳이었다. 때때로 부자들의 식탁에 오를 양떼, 유월절 같은 큰 명절에 사용하는 제수용품으로서의 양과 염소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푸줏간 같은 곳이었다. 양털을 깎고, 양을 잡는 날에는 잔치를 하고 떡도 나누었다. 사람취급 받지도 못했던 개돼지 같은 인생 부자들의 먹잇감 같은 목자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야말로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힘 있는 이들의 먹거리였다,

이곳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6:51)으로 자기선언을 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6:54)라는 예수님의 선언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언어가 이곳에 있다,

첫 번째 그림 언어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 서두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그림 언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요한복음 전체를 흐르는 복선이었다. 마치 유월절 어린양이 유월절 첫날 저녁 식탁에 오르기 위해 그 예비일에 죽임당한 것처럼, 하나님의 어린양도 그리 죽었다.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요한19:31)

이 본문은 요한의 은근한 강조점을 담고 있다이 장면은 유월절 식탁에 오른 한 살된 유월절 어린양의 정강이뼈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 죄를 지고 죽임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예수를 강조하고 있는 요한이 담아낼 수 있는 그림언어이다. 유월절 어린양의 몫을 다한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월절 어린양 즉 유월절은 이집트에서의 해방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이제 어린양 예수의 죽음은 지금 로마의 압제하에, 죽은 종교의 학대 아래서 어떻게 해방되고 구원될 것인지를 독자들이 기대하게 한다,

 

예수, 안식일의 주인

요한이 사용한 두 번째 그림 언어는 안식일(의 주인 예수)이다. 요한의 위와 같은 묘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당한 그해의 유월절은 안식일과 겹쳤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안식일은 그 안식일, 큰 안식일로 묘사하고 있다.

THE GOSPEL OF JOHN, Henry Ian Cusick(2003)

예수는 유월절 첫째 날 즉 큰 안식일에 무덤에 갇힌 것이었다. 무죄한 자를 죽이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자 애를 쓰던 예수 시대의 유대교의 죽음을 드러낸다. 안식일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 사랑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린 자들이 그들의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무고한 이의 목숨과 일상을 짓밟고 있는 껍데기 종교를 요한은 폭로한다.

예수는 때때로 의도적으로 안식일 규정과 맞섰다. 그 날에 38년 된 병자가 회복되고, 날 때부터 눈멀었던 이가 눈을 뜬다. 그리고 그 안식일에 예수는 죽어 장사 되어 무덤에 갇힘으로 사람들을 죽음에서 살려냈음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 세상의 빛

요한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언급한다. 동시에 예수의 빛으로 세상의 어둠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 현장, 예수의 체포, 가야바의 불법 재판, 빌라도 법정 등의 어두운 밤에 일어난 어두운 흑역사, 그 현장에 '()'을 언급한다.

THE GOSPEL OF JOHN, Henry Ian Cusick(2003)

요한은 그 어두운 시대, 어둠의 자식들이 빚어내는 흑역사 현장을 아주 섬세하게 묘사한다. 일종의 폭로이고 고발이다. 그 어둠의 일이 감춰질 것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 시대의 유월절은 최소한 종교 권력자들이 제시하는 유월절은 그냥 하나의 절기였다. 이집트에서 나오던 그 첫번째 유월절의 역동성이나 두번째 유월절로 기억하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옴 같은 감동은 이미 사라졌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부활의 아침은 어떤 아침인가? 우리가 읽는 유월절은 어느 유월절인가? 마치 그 손에 피를 묻히고도 손을 씻고 몸을 정결캐하고 유월절 저녁 식탁을 감사히 받아먹던 이들처럼, 예수처럼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희생양으로 죽어가는 죽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부활절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에게 주목함이 세상의 죄에 대해 눈감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그 빛으로 어둠과 맞서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일상화되고 구조화된 불의와 악과 맞서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에 참여하였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산헤드린 공회, 로마 총독과 동원된 군중, 무관심한 백성들, 그들 속에서 나를, 우리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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