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의 홈스쿨 - 탈진
사막에서의 홈스쿨 - 탈진
  • 엄경희
  • 승인 2017.11.2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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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 맘 엄경희의 사우디 통신
수하가 그린 그림
수하가 그린 그림 ⓒ이수하

모두가 당연히 가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고 부모로서 가정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홈스쿨 결정 자체도 무거운 것이었다. 그래도 자연과 독서로 나름 우리에게 맞는 홈스쿨을 세워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자연에서 마구 뛰놀며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또 만족시키는 모습을 보며, 또 소박하지만 책이 그득한 동네 도서관에서 마냥 읽고 싶은 책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보며 이만하면 되겠다 생각했었다.

초기 홈스쿨의 키워드는 영국 교육가로 홈스쿨 운동의 창지사중 한 사람인 샬롯 메이슨(Charlotte Maria Shaw Mason (1842~1923)에게 배운 “Nature Walk”“Living Book”(살아있는 책)이었다. 그러다 우리는 사우디에 왔다. 우리 집 홈스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자연과 도서관이 하나도 없는, 정말 말 그대로 전무한 사막에 온 것이다. 한국보다야 어마어마하게 크다 할 수 있는 우리 집이 유일한 도서관이요 자연이었다.

다시 길을 찾아야 했다. 사막에서의 홈스쿨 키워드는 “Simple Life”로 바꿔야 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단조롭고 지루한 사막의 일상은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무서우리만치 집중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이라고 나는 의미를 부여해야했다. 어쨌든 사막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었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유럽 여행과 더불어 사막에서의 홈스쿨도 어떻게 유지가 되었다. 할 거라곤 책 읽기와 공부밖에 없는 아이들은 유일한 외부 세계의 접촉이라 할 수 있는 유럽 여행의 경험을 삶과 독서에 버무리며 나름의 성장을 하고 있었다. 평온하게 공부에 집중하며 크는 아이들을 보는 게 반대로 사막을 사는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나름 기특하고 대견하게 사막에서 말라죽지 않고 생존하고 있었는데 우리 집 홈스쿨의 첫 주자이기에 늘 길을 열어가곤 했던 성하가 1년 넘게 피부 트러블로 심하게 고생을 하는 위기가 찾아왔다. 가려움으로 밤잠을 못 자고 살이 빠지는 등 체력도 급격히 떨어지고 피부 케어를 하느라 시간을 많이 써야하기에 공부와 일상 삶을 어마어마하게 흔들어 놓았다. 그래도 1년을 너무 잘 싸웠다.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하며 그래도 낫고 있다 희망할 수 있었고 어린 나이에 찾아온 역경을 성하는 자신에게 유익이 되도록 의미 부여하고 인내하며 치유될 때까지 긴 싸움을 이어가는 소중한 성장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씩씩하게 견뎌온 터였다.

그러다 한 달 전 쯤, 이제 거의 다 나아가나 보다 조심스레 낙관할 수 있을 만큼 피부가 많이 좋아졌다 싶었는데 쿠웨이트에 다녀오고 나서 다시 심하게 안 좋아지더니 지금까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고생을 하고 있다. 다시 몸무게가 빠졌고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삶의 패턴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중요한 기둥이 흔들리니 우리 집 홈스쿨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엄마인 나는 더 이상 막을 힘도 떠받칠 힘도 없다. 아토피로 고생해도 감사하고 꿋꿋하고 오히려 유익으로 만들어야지 나름 대견하게 1년을 넘게 달려온 성하와 나에게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소름끼치게 비웃으며 결정적 한방을 날린 기분이다.

성하는 모르겠지만 나는 와르르 무너졌다. 홈스쿨만으로도 버거운데, 여기는 사막, 사막에서의 홈스쿨이 말라죽지 않게 버티고 있는데, 윤하에 이어 성하의 아토피, 나름 꿋꿋하게 싸워왔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듯한, 치유를 기약할 수 없는, 낫지 않는 불치병, 그로 인해 흔들리는 홈스쿨, 게다가 나는 아이가 다섯, 남편 역시 바깥 일이 전쟁터를 불사하기에 홈스쿨을 전적으로 도와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와르르르르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한동안 잠잠했던, 한국으로 도망가고픈 마음이 그동안 사라진 게 아니라 속에 쌓여 있었는지 과거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세게 내 속으로부터 폭발을 했다. 남편은 한국으로 출장을 갔다. 우리가 사우디에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아주 오래 있게 될 수도 있는 결정을 마무리 하러 갔다. 나는 내 원망과 불안, 두려움에 기인한 갈망을 기도할 용기가 없다. 나는 용기가 없는 겁쟁이라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 주소서. 제 인간적 판단이나 소망을 하나님의 뜻이라 착각하지 말게 하시고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며 그리고 순종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밖에 없다.

나는 하나님이 아시는 큰 그림의 귀퉁이도 알지 못하기에, 지금’ ‘여기가 장차 나중에 어떤 의미와 존재로 자라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있으라 하는 곳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다. 주어진 싸움을 싸우는 것만으로 벅차기에 싸움을 선택할 용기가 나는 없다. 엘리야가 탈진했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재우고 먹이셨다지? 일단 자자. 그리고 먹자. 혼자 방학이나 하자. 결혼 전부터 늘 삶이 광야를 지나는 듯 힘겹고 믿음이 필요할 때마다 즐겨 부르던 찬양을 이제 진짜 광야이자 사막에서 불러본다.

God will make a way where there seems to be no way.
길이 없어 보이는 곳에 하나님은 길을 만드실 것이다.

He works in ways we cannot see.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방법으로 일을 하신다.

He will make a way for me.
하나님은 나를 위한 길을 만드실 것이다.

He will be my guide
나의 안내자가 되실 것이다.

.........

By the roadway in the wilderness He lead me.
광야에 난 길로 나를 인도하시고

Rivers in the desert will I see.
사막에서 강을 보게 될 것이다.

Heaven and earth will fade but His Word will still remain.
하늘과 땅은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He will do something new today.
하나님은 오늘 새로운 무언가를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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