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에 매여 보여주시는 것을 보지 못한다
보이는 것에 매여 보여주시는 것을 보지 못한다
  • 권일한
  • 승인 2017.11.2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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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한의 말씀 묵상 - 마가복음 9정 25-29절
프랑스 화가 James Tissot(1836-1902)의 작품
프랑스 화가 James Tissot(1836-1902)의 작품

마가복음 9정 25-29절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보이는 현상을 뛰어넘어 다른 걸 본다. 죽은 아이에게서 생명을 보고, 몸은 살아있으나 생명력이 죽어버린 모습도 보신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 새로운 세계관을 주셨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려는 경향으로 돌아간다. 잘못된 판단으로 보기에 좋은 걸 찾아간다. 말 잘하는 목사, 멋져 보이는 건물, 서로 친한 것처럼 보이는 행사, 세련된 프로그램……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서지 않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걸 해주는 곳을 찾아다닌다. 재빨리 결과를 보장하는 것, 화려하게 보이는 것에 빠져든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사람을 따른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사제 손에 넘겨주고 목사에게 손을 내민다. 살았으나 죽은 자처럼 살아간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셨다. 정착민의 안정을 버리고 낯선 곳을 돌아다니는 유목민으로, 도시문명을 누리던 생활을 떠나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곳으로, 가족과 친척의 보호에서 벗어나 알지 못하는 적과 싸워야 하는 곳으로 가라 하셨다. 아브라함은 세계관을 바꾸는 일에 동의했다. 살아있으나 죽은 자였던 아브라함은 죽는 자리 같으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곳으로 옮겨갔다.

사람들이 죽었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아이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다수가 내리는 판단이 중요하지 않다. 다수의 판단은 올바르지 않을 때가 많다. 영상매체가 주입하는 가치관을 따르는 다수는 눈에 보이는 것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인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 돈을 말하고 자녀가 어떤 대학교에 갔는지 떠든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 하나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똑같은 위력을 발휘한다면 거긴 교회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 뜻은 자기 욕심을 투사한 편견이다.

예수님은 능력으로 사람을 휘어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 특히 당대 주류 종교인(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싫어하는 가르침을 전했다. 예수님은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았고 보이는 현상에 만족하지 않았다. 바울도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라고 고백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사람들은 죽은 뒤에 가는 보이지 않는 천국을 생각한다.

나는 도시보다 시골이 좋다. 목사를 의지하기보다 말씀 자체를 의지한다. 교장이라는 자리보다 나와 함께 지낸 아이들이 간직하는 추억을, 장로라는 자리보다 말씀을 나누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여전히 보이는 것에 매여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은 어둡게만 보이고 소망이 없어 보인다. 내 몸부림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이기적인 모습은 언제나 변하려는지,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드셨는지…… 질문만 잔뜩 갖고 있다. 귀신에게 짓눌려 죽은 것처럼 보이는 아이에게서 생명을 보고, 강도당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서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기도가 어렵다. 하나님 생각을 자주 하지만 자세를 잡고 기도하려 하면 하나님께 질문만 해댄다. 답답하다.

 

글쓴이 권일한 선생은, 1994년부터 지금까지 강원도 시골 아이들과 책 읽고 글 쓰며 행복하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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