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 잊혀진 제자도 [3.1운동 100주년 기념예배]
[장일] 잊혀진 제자도 [3.1운동 100주년 기념예배]
  • 장일
  • 승인 2019.03.0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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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 목사의 설교 - 누가 9:57~62

‘달라스 윌라드’(Dallas Albert Willard)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미국의 침례교 소속 목회자이며 철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지만 그가 남긴 저작들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여기서 살아있다는 것은 그의 책들이 오늘날 교회들에게 끊임없는 질문과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잊혀진 제자도! 오늘 설교의 제목이 그가 남긴 대표적인 책입니다. 여러분 제자도가 무엇입니까? 제자도란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자세와 그 내용을 뜻합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이러한 제자도가 잊혀졌거나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 “제자가 되어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참고로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과 제자가 된다는 말은 모두 같은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굳이 수고스럽게 제자가 되지 않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그의 피에만 관심이 있는 이른바 흡혈귀 그리스도인들로 넘쳐난다” 달라스 윌라드 목사님이 진단한 현대 교회의 자화상입니다. 뼈아픈 점은 목회자로서 이 진단을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금요일이 무슨 날이었죠? 삼일절이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1919년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이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예배로 드립니다. 알다시피 3.1운동은 현재 대한민국의 모체인 임시정부를 낳은 운동입니다. 이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기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3.1운동에 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3.1운동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100년 전 개신교는 1.5%에 불과한 소수 종교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 민족사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1000만명을 자랑하지만 ‘개독교’ 사회적 지탄을 받는 오늘날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잊혀진 제자도 즉 우리가 되찾아야 할 제자도를 깊이 깨달으시기를 권면합니다. 동시에 이 제자도의 삶을 다시 믿음으로 결단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십자가의 제자도 : 

잊혀진 제자도 첫 번째는, 십자가의 제자도입니다. 

57 그들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5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앞서 누가는 예수께서 승천하실 날이 가까이오자 예루살렘으로 가시기로 결심하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위에서 주님이 제자도에 관해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누가는 세 종류의 사람을 등장시킴으로 제자도 곧 예수를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사람이 등장합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이 사람이 서기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사람은 예수님께 매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믿음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칭찬은커녕 매우 비관적인 답변을 주십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한 삶이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삶임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예수님이 어디로 가는 길목이라고 말씀드렸습니까?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설마 왕궁에서 헤롯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에 앉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골고다의 십자가를 지기 위함입니까?

우리가 다 아는대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지금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이러니 한 것은 예수의 제자들마저 예수님께 영광의 자리를 기대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광이 아닌 인류 구원을 위한 메시야 사역 곧 십자가를 지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보장된 삶을 뒤로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앞서가신 예수를 뒤따르는 삶입니다. 바로 이것이 십자가의 제자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100년 전 개신교는 소수종교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전체인구의 1.5% 약 20만명에 해당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선조들은 십자가의 제자도를 따르는 일에 결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 십자가의 제자도가 크게 나타난 사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3.1운동입니다. 당시 한국교회는 목사, 장로, 전도사, 교사 등 일반 성도들까지 3.1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제자도를 따르는 일에는 분명한 대가가 따랐습니다. 바로 3.1운동 이후 한국교회가 일제의 표적이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교회는 수많은 핍박과 피해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만 들더라도 평남 강서 사천의 학살 사건, 의주의 교회당 방화 파괴 사건, 천안 병천의 학살 사건, 마지막으로 수원 제암리교회 학살 방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암리교회 학살사건은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당시 일본군은 개신교, 천도교인 약 30명을 예배당 안으로 몰아넣고 집중사격을 퍼부었습니다. 이후 증거를 없애기 위해 교회당에 불을 지르는 만행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러한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것입니다.

100년 전 그리스도인들은 분명 나라와 민족을 걱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떨까요? 1.5%에 불과했던 개신교 인구는 이제 20%에 달하는 967만 명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성장입니다. 그러나 이 성장만을 놓고 마냥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이나 오늘이나 여전히 우리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있습니다. 그러나 이 태극기를 든 동기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3.1절이었던 지난 금요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 집회의 이름은 ‘문재인 탄핵 3.1절 범국민대회’입니다. 놀랍게도 이 집회를 주최한 단체는 보수 기독단체인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었습니다.

아시아기독교방송(20190301) 유튜브 화면 갈무리
아시아기독교방송(20190301)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집회는 3.1운동 정신을 기리기보다는 정부를 비난하는 막말로 가득했습니다. 극우 개신교의 막말대잔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다양한 정치적 견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왜곡된 사실을 기반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국론분열을 일으키는 행태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통해 주신 명령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럼에도 극우 개신교 단체는 연일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일부 대형교회와 반지성주의에 물든 성도들을 앞세워 권력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도대체 이러한 모습들이 십자가의 제자도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머리 둘 곳도 없다고 말씀하셨건만 오늘날 교회는 헤롯의 권력보다 더 큰 것을 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0년 전 그리스도인들은 분명 나라와 민족을 위해 순교까지 각오하며 태극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떠한 영광이나 권력을 얻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압제당한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고난과 죽음이 불보듯 했지만 그렇다고 그 길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십자가의 제자도는 선택이 아닌 정체성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십자가의 제자도를 잃는 것은 부분이 아닌 전부를 잃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십자가 없는 영광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 주님에게서 온 영광이 아닙니다. 교회의 영광은 십자가의 제자도를 회복할 때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이 잊혀진 제자도를 다시 회복하는 일에 앞장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 나라 제자도 :

잊혀진 제자도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 제자도입니다.

59 또 예수께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6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라." 61 또 다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62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다음으로 두 번째 사람이 등장합니다. 앞서 첫 번째 사람은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두 번째 사람은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나를 따르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명령 앞에 이 사람이 보인 반응은 무엇입니까? 바로 아버지의 장례를 먼저 치르도록 허락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사람입니다. 이 사람도 첫 번째 사람과 같이 자신이 먼저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께 요청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람에게 매우 비정한 답변을 주십니다.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라."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그래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가족들과 충분히 인사를 나누고 나를 따라오너라” 평소 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의 성품을 생각한다면 어렵지 않게 기대할 수 있는 답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매우 단호하게 그들의 요청을 거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답변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발견하셨나요?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두 가지 일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먼저는 세상에 속한 일이고 다음은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물론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의 결국은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보다 더 큰 가치인 하나님 나라 제자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 제자도는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내가 주인 삼았던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가치들에 맞서고 그 앞에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 제자도를 따라간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었습니다.

알다시피 3.1운동은 우리의 독립의지를 온 세계에 알리는 민족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이러한 민족주의를 넘어 신앙의 결단을 품고 3.1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위대한 신앙인들은 모두가 위대한 애국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약을 보면 모세와 에스더가 그렇고, 신약을 보면 사도 바울이 그렇습니다.

특별히 출애굽기를 생각해보십시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민족을 하나님께서 왜 탈출시키십니까? 바로 이스라엘 곧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고자 함이었습니다. 파라오의 통치를 받던 이집트 생활은 영적으로 사탄의 통치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제 히브리민족을 사탄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오게 하십니다.

100년 전 우리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 앞에 우리 민족은 국권을 침탈당했습니다. 이후 일본은 교활하고 잔인한 통치를 앞세워 우리 민족을 길들여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민족정기도 점점 꺼져갔습니다. 바로 이때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민족운동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들이 민족운동에 뛰어들었던 계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에 있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일제의 총칼 앞에 굴복하지 않고 “대한민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분명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내세 천국만을 외치는 것을 결코 신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역사적 과제 앞에 무관심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적극 뛰어드는 하나님 나라 제자도를 실천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나라 제자도가 왜 잊혀진 제자도인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오늘날은 100년 전처럼 우리를 억압하는 외세의 통치는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외세의 통치보다 더 무서운 통치 앞에 우리는 놓여있습니다. 바로 돈의 통치, 권력의 통치, 쾌락의 통치입니다. 이 대목에서 참 가슴 아픈 현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세속의 통치 앞에 적지 않게 무릎을 꿇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가 실천해야 할 하나님 나라 제자도는 분명합니다. 바로 이러한 세속의 통치 앞에 믿음으로 항거하는 것입니다. 예배당 뿐 아니라 가정과 일터, 세상과 시대적 과제 앞에서 하나님 나라 제자도를 적극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과 가치를 선택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 나라보다 더 긴박한 과제는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 론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은 3.1운동 100주년 기념예배로 ‘잊혀진 제자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잊혀진 제자도란 먼저는 십자가의 제자도 다음은 하나님 나라 제자도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제자도가 결코 고차원적인 신앙의 모습이 아닌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실천해야 할 제자도라는 것입니다.

100년 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이 제자도를 마땅히 따라야 할 본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우리 민족사에 없어서는 안 될 지대한 영향력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 제자도를 본분이 아닌 선택의 문제로 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현재 한국교회의 위기를 넘어 이미 쇠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잊혀져가는 십자가의 제자도, 하나님 나라 제자도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복이란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 일에 장차 우리 민족과 한국교회의 운명도 달려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주는 잊혀진 제자도 곧 십자가의 제자도와 하나님 나라 제자도를 힘써 묵상하며 기도하시기를 권면합니다. 더불어 우리 팔로우교회가 이 제자도를 회복하는 일에 앞장서는 공동체로 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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