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영성의 고전으로 꼽히는 두 권의 책
기독교 영성의 고전으로 꼽히는 두 권의 책
  • 정한욱
  • 승인 2019.02.2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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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트의 규칙서 (누르시아의 베네딕트, KIATS 펴냄), 영신수련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이냐시오 영성 연구소 펴냄)

교회사 공부를 진행하면서 기독교 영성의 고전으로 꼽히는 두 권의 소책자를 함께 펴들었습니다. 서방교회 수도원 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누르시아의 베네딕트(Sanctus Benedictus de Nursia, 480~543) 의 『규칙서』와, 예수회의 창시자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cio de Loyola, 1491~1556)가 지은 『영신수련』입니다. 전자는 공동수도자들의 생활을 위한 규칙 모음이며 후자는 4주 동안에 행하도록 되어 있는 피정(경건훈련) 지침서로, 둘 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독서용 책이라기보다는 규정집 혹은 매뉴얼에 가깝습니다.

베네딕트 지음 | 권혁일, 김재현 옮김 | KIATS(키아츠) | 2011년
베네딕트 지음 | 권혁일, 김재현 옮김 | KIATS(키아츠) | 2011년

3세기경부터 시작된 수도원 운동의 다양한 규칙과 가르침을 통합해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로 정리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이후 서방 수도원 운동의 틀을 결정하고 수도사들의 생활 양식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책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수도사들에게 오늘날까지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덕목들인 ① 상급자에 대한 자발적이고 즉각적인 순명(順命)과 ② 성무일도(0fficium Divinum)에 따른 규칙적인 기도와 예배의 삶, 그리고 ③ 정기적인 육체 노동과 같이 엄격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정주(定住)를 강조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신이 처음 가입한 수도원에 종신토록 머무르도록 요구합니다.

그러나 베네딕트는 당대의 사막 수도자들과 달리 극단적 금욕이나 고행이 아닌 “지나치지 않은 질서와 규범을 통한 지혜로운 수도생활”을 추구했으며, 교회사가 후스토 곤잘레스는 “사막의 위대한 영웅들과 같은 성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흠과 실수가 많은 보통 사람들을 위해 기록된 것”이 『규칙서』의 성공 비결이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칙서』의 이상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단조로운 매일의 의무들로 채워져 있는 삶이 아니라 기도와 노동, 공동체의 예배(0fficium Divinum)와 개인의 영성생활(Lectio divina)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균형 잡힌 일상생활의 반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리듬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신 수련』은 마르틴 루터와 동시대를 살았고 비슷한 신앙적 갈등을 겪었지만 루터와 달리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절대 순종하며 제도 내 개혁을 추구하는 길을 선택했던 예수회의 창시자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지은 피정(영성 훈련) 지침서입니다. 로욜라에 따르면 영신 수련(영어로는 Spiritual Exercise)이란 “양심 성찰과 다양한 묵상 및 기도, 그리고 거룩한 독서와 같은 정신 활동의 방식들을 통해 ..... 온갖 무질서한 애착을 없애도록 마음을 준비하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찾고 발견하려는 모든 방법”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로욜라가 소개하는 영신수련의 방식은 30일에 걸쳐 제 1주간은 죄를 성찰하고, 제 2주간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제 3주간은 예수님의 수난을, 제 4주간은 부활과 승천을 관상하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행하는 수련이나 관상은 ① 은혜를 구하는 ‘준비기도’ ② 묵상 내용의 배경이 되는 시간과 장소를 상상을 통해 구성하며 자신의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바라는 ‘길잡이’ ③ 그날 시행할 묵상의 내용과 방식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요점’ ④ 지금까지 묵상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담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방식은 “수련자가 복음서의 시간과 장소로 돌아가 오감을 통해 복음서의 사건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극단적 고행이나 금욕이 아닌 자발적인 순종과 절제입니다..

복음주의 개신교, 그중에서도 ‘정통 개혁주의’의 강력한 자장 안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아직도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손오공마냥 그 언저리 어딘가에서 서성이는 제게 ‘수도의 규칙’이나 ‘관상이나 기도를 통한 영적 훈련’과 같은 가톨릭 영성의 전통은 매우 낯설고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극단적 고행이나 금욕이 아닌 자발적인 순종과 절제입니다. 기도와 노동, 공적 예배와 개인적 경건의 치우침 없는 균형이야말로 참된 영성으로 가는 길입니다. 바로 『규율집』의 가르침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해 2000년 전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모든 과정에 함께 동참하며 그 의미를 묵상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영적 훈련’입니다. 이것이 『영신 수련』의 정신입니다. 이런 가르침과 정신에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 두 권의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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