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 난민촌에서 마주한 뜻밖의 환대
베들레헴 난민촌에서 마주한 뜻밖의 환대
  • 김동문
  • 승인 2018.07.01 20: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주제자교회 이스라엘 여행팀
전주제자교회가 보내온 사진과 학용품을 선물받은 하싼과 파티마 가정
전주제자교회가 보내온 사진과 학용품을 선물받은 하싼과 파티마 가정

환대는 무엇일까? 여행의 기쁨과 의미는 어떤 것일까? 적지 않은 개인과 단체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이른바 성지순례를 다녀온다. 많은 경우 유적지 방문이라는 일과가 끝나면 호텔을 중심으로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면 또 하루의 일정을 진행한다. 이 여정에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큰 관심거리도 아니고, 주민과 만남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사진 속 배경일 뿐, 이웃으로 다가오는 존재는 아닌 듯하다.

지난 1월 중순, 전주제자교회(박용태 목사) 이스라엘 여행팀은, 베들레헴을 방문하고 있었다. 하루의 일정을 마친 여행자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인솔자였던 A 목사의 안내를 받아 베들레헴에 자리한, 1950년에 형성된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아자(Azza) 난민촌을 방문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존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이 59곳에 이른다. 그중 가장 작은 규모의 난민촌으로, 주민의 수는 1,400여 명 정도이다.

이 발걸음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방문이 아니었다. 그런데 난민촌을 거니는 과정에, 이 낯선 여행자들을 초라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없는 살림에 다과를 제공한 난민 가정이 있었다. 1월 중순 바람이 부는 저녁, 바람이라도 피하고 가라며 기꺼이 누추하기 그지없는 가정을 제공했다. 변변한 살림살이는 물론, 아이들의 장난감 하나 없었다. 

베들레헴의 아자 난민촌에서 하싼과 파티마 가정과 교제하고 있는 여행자들
베들레헴의 아자 난민촌에서 하싼과 파티마 가정과 교제하고 있는 여행자들

하싼과 파티마(가명) 부부는 난민의 자녀로 태어나 난민으로 살고, 6명의 난민 자녀를 둔 이들이었다. 이 가정에서 난민 가정의 현재의 삶과 아이들의 꿈에 대해 듣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함에 대답도 하며 교제하였다. 디자이어가 되고 싶다는 딸의 고백도 들었다. 팔레스타인 난민은 태어날 때 난민으로 태어난다. 난민이라는 신분이 세습되는 것이다. 난민 중에서도 가자지구 출신 난민은 가자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신분증에 담겨 있다. 난민 가운데서도 또다른 차별이 존재한다. 다른 지역 출신 난민들이 요르단 국적을 얻을 수 있었지만, 가자 주민은 예외였다. 

전주제자교회 여행팀은 귀국 후 영어로 쓴 손 글씨 편지와 함께 학용품 등을 담은 선물을 이 난민 가정의 자녀들을 위해 보내고자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난민 가정이 여행팀에게 전해준 주소가 난관이었다. ‘아자 난민촌 하싼과 파티마가 전부였다. 하싼 가정은 이 주소로 보내도 자신들에게 편지가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가정과 연락을 취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화번호도, 주소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인편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현지의 지인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다. 베들레헴의 난민촌에 익숙한 한국인이나 기꺼이 번거로운 수고를 해줄 여행자 단체를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주제자교회가 보내온 손 편지를 읽고 있는 가족들
전주제자교회가 보내온 손 편지를 읽고 있는 가족들

그러던 중에, 지난 6월 하순, 베들레헴을 찾은 여행자를 통해, 난민 가정에 물품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하싼과 파티마 가정은 뜻밖의 선물에 당황하며 즐거워했다. 그들의 얼굴과 여행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쳐다보며, 마냥 기뻐했다. 이 난민 가정에는 사진 한 장 걸려있지 않았다. 액자에 담긴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한국에서 자신들을 기억하고 선물을 보내준 뜻밖에 마주한 손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전주제자교회 여행자들이나 난민 하싼과 파티마 가정 모두는 뜻밖의 만남에서 서로에 대한 환대를 경험했다.

배제와 혐오가 가득하고, 경제 논리가 가득한 현실에, 전주제자교회가 경험하고 실천한 작은 환대는 인상적이다. 환대는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그 비움에는 자신 안에 있는 막연한 두려움이나 혐오도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존재를 또 다른 이웃으로, 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수고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제주 예멘 난민을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는 지금, 환대를 다시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