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십일조로 인해,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김영준] 십일조로 인해,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 김영준
  • 승인 2018.06.0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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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목사의 설교_ 신 14:22~15:11
JOHN AUGUST SWANSON, 'LOAVES AND FISHES'

땅에서 사는 것은 두려움과 염려의 연속입니다. 두려움과 염려는 가난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가난하지 않아도, 장차 닥칠 수 있는 가난 때문에 두려워하고 염려합니다. 가난은 직접 현실이거나 간접 학습되어 온 몸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습니다. 빈자는 가난한 현실에 염려하며 살고, 부자는 닥칠 수 있는 가난을 두려워하며 삽니다.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가난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하고, 가난할 가능성이 있어서 가난합니다.

땅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내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15:4~5)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복을 받고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성()이라 하겠습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중용(中庸) 23장의 부분을 소개합니다. “()하면 모양이 잡히고(), 모양이 잡히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고(), 변하면 교화된다()” 중용을 이용해서 신명기를 풀어본다면,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말씀이() 이루어져(), ()하면 교화()가 일어납니다. 복은 내 안에, 그리고 세상에 일어난 교화입니다. 교화란 심리적으로 물질적으로 가난을 초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여 말씀이 이루어지고,() 말씀이 이루어져 열매까지 맺는 것()을 성실(誠實)이라 하겠습니다. 성실은 참 아름다운 말입니다. 두려움과 염려 속에 살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져, 맺힌 열매를 함께 나누는 곳이 예배드리는 제단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져 열매 맺는 성실한 땅에서는 분명 가난한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두려움과 염려를 없애는 방식은 이 땅에서 가난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가난을 두고, 나만 두렵지 않고 나만 염려하지 않을 순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이 땅에서 가난을 제거하고자 하십니다. 제사를 통해 가난을 불태워버리십니다. 제단에 쓰는 젯밥을 나누며 가난을 태워버리십니다.

제사보다 젯밥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제물을 잡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의 핵심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젯밥을 함께 먹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14:26)

십일조라는 젯밥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복을 받고 두려움과 염려의 원인되는 가난을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십일조 헌금은 동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적 자금이었습니다.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14:29) 3년 째 드리는 십일조는 생산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레위인과 이주민, 그리고 생산 능력이 없는 고아와 과부, 장애인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보통 십일조는 성소, 택하신 곳에서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을 위해 사용하지만, 3년 째 십일조는 성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14:23,29)

오늘 상황에 맞게 단순화한다면, 함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위해 십일조 헌금을 쓰되, 그중 삼분의 일은 생산 수단이나 생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지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적용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나 마을에 있는 경제적 약자를 위해 교회 예산의 30% 이상을 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다.

십일조 헌금을 기반으로 그 행하는 공적(public)사회적(social) 역할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사교모임이 아니라, ‘인민의 아편이 아니라, ‘하나님나라가 됩니다. 작지만 국가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국가의 역할을 초월하는 모임이 됩니다. 교회의 초월성은 현실과 괴리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도 해결할 수 없는 가난한 자가 끊이지 않는 현실을 초극하는 데에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지만, 교회가 십일조를 하나님의 뜻대로 집행하면 가난한 자가 없는 하나님나라가 열립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15:11) 이것이 교회가 갖는 초월 신앙입니다.

세금을 환급받기 위해, 해마다 1월과 5월에 기부금영수증을 발행합니다. 교회를 통해 모인 헌금이 공적 자금의 성격을 갖지 않는다면, 예배 중에 드린 헌금이 세금 환급의 이유가 될 수 없겠지요. 교회가 발행한 기부금영수증을 보고 정부가 세금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이유는 예배 중에 드린 헌금을 공적자금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교회가 공적사회적으로 지출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면, 돈을 쓸 때 사람들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지출했을 것이라고 정부가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노동자로서, 혹은 자영업자로서 땀 흘려 일하는 손과 발에 복 있습니다. 그 발이 예배의 자리를 찾고 그 손이 십일조를 드림으로, 이 땅과 각 사람의 가난을 태워버리는 제사를 드립니다. 온누리 사람들이 젯밥을 배부르게 나누는 예배자 되면, 우리 마음 속, 우리 마을 속 가난이 태워져 없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정성()을 다해 일한 십일조, 성실(誠實)하게 나누겠습니다. 성실은 정성()을 다해 일하고 모은 십일조의 열매()를 함께 먹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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