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질병일까? 치료할 수 있을까?
"악은 질병일까? 치료할 수 있을까?
  • 김영웅
  • 승인 2018.05.2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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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 책(과일)상, M. 스캇 펙,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 비전과리더십, 2007년
M. 스캇 펙,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 비전과리더십, 2007년
M. 스캇 펙,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 비전과리더십, 2007년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이질감이 먼저 느껴지는 건 아마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신학적으로 아주 오래된 문제인 '악의 존재와 근원'에 대해서 질문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명쾌한 답이 없지만, 그래도 이 질문은 꽤 익숙하기라도 하고, 의미 있는 사유거리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악을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본다는 관점이 낯설게만 느껴진 것은, 그만큼 우리가 ''을 인간이 다루거나 조절할 수 없는 어떤 상위 개념으로 여기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겠다. 악은 과학적인 접근이기보단, 아무래도 우리에겐 형이상학적인 접근으로 다가서야 하는 개념에 가까운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글에서 자주 인용되어 궁금증을 자아냈던 스캇 펙의 책을 이제서야 한 권 읽었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거짓의 사람들'. 내용도 역시 그랬다. 읽고 나니 많은 사람들이 왜 스캇 펙을 자주 인용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에게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깊고 예리한 통찰이 있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을 넘어 책 속으로 빨려 들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책을 천천히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저자가 직접 경험했던 몇몇 상담 사례들을 기반으로 이끌어낸 기독교적인 해석과 주장, 그리고 그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성경에서, 거짓의 아비는 사탄이다. 보이지 않는 악의 실체다. 비록 성경을 모르더라도, 신문과 뉴스를 통해, 악한 사람들은 거짓을 즐겨 하며 거짓에 능통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이 책에서 '거짓의 사람들'이란 곧 '악한 사람들'을 말한다.

그럼, 악한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 거짓말쟁이만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진 않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거짓말쟁이들은 그 대상이 타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악한 사람들의 타겟은 타인이기보다 자기자신이다. 거짓의 사람들은 남을 속이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속인다. 속이는 이유는 숨길 것이 있기 때문이고, 숨기는 이유는 숨길만한 것이, 어쩌면 숨겨야만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발각되면 자신의 입지가 난처해지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들은 숨김으로써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거짓은 진실보다 빠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때로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걸며, 그리 숨기는 것일까? 바로 자신의 악한 의지다. 악한 의지는 ''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거나 파괴하는 행위까지도 서슴없이 일삼을 수 있다. 생명을 파괴하고 죽이는 것은 악의 본질인 것이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evil ()의 철자를 거꾸로 할 때 live (살다)가 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스캇 펙은 다음과 같이 악을 정의한다. '악이란 자신의 병적인 자아의 정체를 방어하고 보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파괴하는데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또 같은 맥락에서 그는, '악이란 나르시시즘이 위협을 받을 때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깊은 통찰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에서 정의하는 죄를 자기중심적인 교만함으로 해석할 때, 나르시시즘은 죄의 결과이자 악의 VIP 보호 대상이다. 또한 악은 인간을 매개로 할 때만 살인과 같은 파괴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에, 악은 인간을 죄에 빠뜨린 뒤 숙주로 삼아 파괴의 무대 위로 올리고 자신은 무대 뒤에 숨어버린다. 그러므로 악한 사람들이란 자기중심적인 의지의 표출로 인해 곤란해진() 입장을 복구하기(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거짓을 무기 삼아 죄를 숨기고 악을 기쁘게 하는 존재인 것이다. 죄와 악, 그리고 자기애, 나는 이 세가지를 악의 삼위일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느 하나도 나머지 둘을 제외하고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악을 정신분석학적 경험을 기반으로 정의하고, 악이 어떻게 사람을 통하여 실력을 행사하는지 고찰해 보며,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면에서 이 책은 탁월하다.

그러나 저자가 제안하고 바라는 대로 악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합당할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그는 악한 사람들을 나르시시즘적 성격 장애의 특수한 변이로 분류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말한다. 악함을 나르시시즘과 연결시키고, 그런 사람들을 강박증이나 공포증 같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과는 달리, 조금 더 특별하고 심각한 환자로 다뤄야 한다는 의미라면, 그의 제안이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을 질병으로 덥석 규정해 버린다면, 그 진단을 받은 환자의 경우, 자신을 어떻게 여기게 될까? 앞서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을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해하거나 다룰 수 없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나 개념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이름을 달리 해서 악을 질병으로 규정한다 해도, 자기가 악한 사람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면, 십중팔구 그들은 그 진단 자체를 부인하거나, 그 진단을 내린 의사를 신뢰하지 않고, 그를 망상가나 종교가로 치부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질병으로써 악을 규정하는 것은 치료 대상자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치료자 입장에만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이런 경우 원치 않게도 인권이라는 문제가 대두되어, 혐오와 배제, 차별이 횡행하게 될 것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악한 사람을 진단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문제 또한 모호할 것이라 생각한다. 과연 악함과 악하지 않음의 경계는 어디일까? 과연 그것을 수치화하거나 객관화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진단하는 의사마다 같은 진단이 가능하기나 할까? 많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무래도 스캇 펙의 악을 질병으로 규정하자는 주장은, 악이란 것을 정신적 문제 중에서도 증세가 심각하여 어쩌면 과학적인 영역을 넘어설지도 모르는 문제라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치료하려면 차라리 종교적인 시도라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귀신 들림까지도 질병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귀신을 사람 몸에서 쫓아내는 '축사자 (엑소시스트)'를 악을 치료하는 치료자라고 말한다. 사실 난 이 부분에서 의문을 넘어 왠지 모를 거부감까지 느꼈다. 2천년 전의 사건을 다룬 성경을 포함하여, 오늘날의 영화나 소설,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몇몇 괴기스러운 사례들과 같은 비과학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까지도 과학적인 의학이라는 박스 안으로 집어넣어 하나의 질병으로 분류를 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그의 주장이 개인적으로는 무척 불편했던 것이다. 기독교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이 책 전반에 걸쳐 보이지만, 축사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과학이나 의학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색채보다는, 다분히 그가 경험한 단 두 차례의 축사 경험으로부터 결론을 도출하여 일반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으며, 그 경험에 저자 자신의 기독교적인 신앙과 믿음, 사상을 정신분석학적인 자신의 직업적 전문성과 함께 한데 버무려 끼워 맞추려는 의지가 보였다. 귀신 들림을 얘기하는 이 대목에서만큼은 그의 억지스러운 면과 치우친 면이 꽤 많이 부각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이자 과학자인 나에게도 이렇게 비춰졌다면, 비기독교인과 과학적인 사고에 길들여지지 않은 독자들에게 이 부분이 과연 어떻게 비춰질지, 나로선 상상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또한 축사에 대한 부분이 이 책의 주옥 같은 나머지 부분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책 전체나 저자에 대한 신뢰도까지도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같아 솔직히 난 우려가 되었다.

과학자나 신앙인으로서도 여전히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부분을 겸손히 신비로 놓아두는 자세가 그에게 필요하지 않았나 싶고, 이를 생각하면 그저 아쉽기만 하다. 니체와 헤겔, 그리고 데리다가 깊고 풍부하게 이해하고 살려낸 ''의 개념에 착안하여 생각해 볼 때, 그는 모든 것을 법칙화하여 술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던 칸트와도 닮은 것 같고,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했던 과학주의적인 구조주의 사상가들과도 비슷한 면이 많은 것처럼 여겨진다. 풍부한 경험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사명감과 책임감까지 덧붙여 그가 주장하고 바랐던, 악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일의 문제점은, 악을 질병으로 규정하면 마치 치료가 가능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에 있다. 그는 악의 치명적인 독성을 간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치료하고 싶은 마음이 충만하여, 악과 악한 사람들이 가진 훨씬 커다란, 아직 드러나지 않아 모르는 부분인 ''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과학과 의학으로 악을 다스리려고 시도했던 한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악한 사람도 악 자체가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간과했던 한 사람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캇 펙은 오래토록 사람들에게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똑같이 배우거나 경험하진 않지만,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심리에 대하여 그는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가 신비한 타자의 영역을 존중하여, 드러난 것보다 드러나지 않아 모르는 부분이 언제나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을 감안하고, 좀 더 신중하고 준비된 자세로 악의 치료를 고찰하고 도모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글쓴이 김영웅 박사는, 하나님나라에 뿌리를 두고, 문학/철학/신학 분야에서 읽고/쓰고/묵상하고/나누고/배우는 것을 좋아하며, 분자생물학/마우스유전학을 기반으로 혈액암을 연구하는 가난한 선비/과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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