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박물관(미국 LA)에서, 역사와 성경을 읽다
게티박물관(미국 LA)에서, 역사와 성경을 읽다
  • 김동문
  • 승인 2018.05.0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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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언어는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의미를 지녔다

고대 이집트를 이해하는 것과 성경을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아니 이집트에 대한 이해가 성경 읽기에 어떤 유익을 주는 것일까? 고대 이집트의 문명, 문화, 세계관, 종교, 일상 표현 양식을 모르고 그리스 로마 문명을 풀이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낯설게 반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56() 오후 LA 지역에 자리한 게티 박물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문명이 공존하거나 공유하던 문명의 흔적 일부를 마주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이 어떻게 유럽인의 얼굴을 갖게 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의외로 그리스 로마 문명의 원형을 이집트에서 엿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 문명 자체를 넉넉하게 엿볼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 무덤에서 출토된 아주 소수의 부장품과 파피루스 등이 그나마 3천년이 넘는 전시물이었다.

나일강을 배 저어가는 고대 이집트인(기원전 1295~1069년 사이)
고대 이집트의 의학 정보가 담긴 파피루스(기원전 1550-1290년)

이 전시는, 이집트 제국이 약해지고 무너져가던 기원전 7세기 이후부터 로마 제국의 초기 시대를 중심으로, 고대 이집트 문명과 그리스 로마 문명이 어떻게 공유했는가에 주목한 기획 전시회였다.

고대 이집트 문화와 문명, 그 안에 담긴 가치관과 세계관은 어떻게 그리스, 로마 문명과 주변 문명에 닿아있었을까? 그리스 로마의 신관은 독립적인 것이었을까? 아니면 이집트로부터 많은 빚을 진 것이었을까이집트를 알고 그리스 로마 문명을 마주하면 고대 이집트의 영향이 상당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여신 또는 여왕의 조각상(기원전 2세기 말에서 1세기 말 사이, 이집트 프톨레미 왕조)

고대 그리스는 석상을 만드는 문화가 없었다. 그러나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풍성한 대리석을 이용한 석상이 6세기 후반에 등장했다. 

이집트의 전형적인 조각상(기원전 7세기 중반), 오른쪽은 6세기 후반의 고대 그리스 조각상(기원전 6세기 후반)

이번 전시는 어떤 면에서 이집트, 그리스, 로마 사이에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했는지를 그 흐름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프톨레미 8세 왕과 왕비가 제물을 드리는 장면을 전형적인 고대 이집트 표현 양식으로 표현했다.(기원전 2세기 중반)

전시물 가운데 성경 읽기에 응용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소개한다. 물론 성경 본문과 동일한 시대의 유물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그림 언어가 무엇을 어떻게 뜻한 것인지를 짚어보는 것이다. 성경의 표현이 추상적이거나 비실재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그림 언어로 소통하였음을 느끼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뱀은, 파라오의 이미지와 닿아있었다. 조선시대에 용이 왕의 고유한 이미지로 역할하던 것과 다르지 않다. 파라오의 왕관에는 뱀(코브라)의 형상에 새겨져 있었다. 신들의 관에도 뱀의 형상이 새겨진 경우가 많았다.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가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모습으로 조각되었다.(기원후 2세기 초)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출애굽기 7:9, 12)

 

왕벌

고대 이집트에서 왕벌은, 하이집트(나일강 하류 삼각주 지역으로 고센 지방을 포함한다.)의 신적 이미지였다. 또한 전쟁의 신의 이미지였다. 으뜸신 오시리스나 호루스, 전쟁의 신 몬투 등이 왕벌(신)을 보내서 적을 미리 제압한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아래의 부조 왼쪽 윗부분에 왕벌과 풀의 이미지가 보인다. 그것은 상이집트 하이집트의 왕을 뜻하는 상형문자이다.

알렉산더 대제의 이름이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표현 양식을 따라 새겨져 있다.(기원전 4세기 후반)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출애굽기 23:2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왕벌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의 남은 자와 너를 피하여 숨은 자를 멸하시리니 (신명기 7:20)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여호수아 24:12)

솔개

기원전 6세기 고대 이집트의 왕실 고위 관리 '와히브리이마케트'의 미이라 석관 덮개.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창세기 15:11)

솔개 또는 매는 이집트 왕권과 호루스 신의 보호를 뜻하는 것이었다. 왕과 신의 가호가 죽은 자와 함께함을 뜻한다. 또한 솔개는 파라오의 통치와 지배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 길은 솔개도 알지 못하고 매의 눈도 보지 못하며 (욥기 28:7)

 

날개 그늘

고대 이집트는 몸의 부활로서의 영생불멸을 기대했다. 그 매개는 다름 아닌 시신의 보존이었다. 몸이 있어야 그 몸으로 영혼이 돌아올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자신의 시신을 미이라를 만들어 보호했다. 그래서 미이라를 덮고 있는 천과 장식, 나무, 돌, 금, 은 등 다양한 재질의 관과 무덤 곳곳에 날개를 펴서 보호하고 있는 이시스 여신의 이미지가 선명했다. 또한 신전 곳곳에, 그리고 신전의 성소 안팎에 날개를 펴고 있는 이시스 여신의 이미지가 가득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룻기 2:12)

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편 57:1)

 

영화와 존귀의 관

고대 이집트 오시리스 신과 황소 형상으로 표현하던 아피스 신이 합체된 세라피스신.

세라피스 신의 머리에 올려져 있는 것은 '영화롭고 존귀한 관'이다. 고대 이집트의 화관의 이미지는 양화, 존귀, 영생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고대 로마로 넘어갔다. 고대 이집트나 로마 문명에 익숙했던 이들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쓰다'는 의미가 신적 존재, 영생을 뜻하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편 8:5)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브리서 2:9)

 

거울

고대 이집트나 고대 그리스 로마의 손거울의 모양이 그다지 차이가 없다. 거울의 용도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 거울로 이목구비를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었을까? 아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린도전서 13:12)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청동 거울을 소유할 수 있었던 이들은 평민은 아니었다. 아마도 한번도 거울을 직접 보지 못한 평범한 백성들이 절대 다수였을 것이다.

손 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이사야 3:23)

그나마 이 청동 거울은 물을 이용하지 않고도 자신의 얼굴 형체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도구였을 뿐이다.

청동거울

 

채색옷

고대 이집트인들은 왕을 비롯하여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평상시에는 웃옷을 입지 않았다. 또한 왕이나 귀족들이 옷을 입는 경우도 세마포로 만든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채색옷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고유한 흔적이 아니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가나안 땅의 귀족들의 삶의 양식이었다. 위에서 소개한 사진 속에서도 웃옷을 입지 않은 상태의 그리스 로마의 황제와 귀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에게 경배를 표하는 크레타인과 시리아(수리아)인이 그려진 벽화 이미지.(기원전 15세기 중엽)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창세기 37:3)

 

술취함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에서 '술취함'은 단순히 술에 취한 것을 뜻한 것이 아니다. '심포지움'이라 부르는 술취함의 파티 현장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그리스와 로마의 귀족들은 술에 취한 채로 시와 노래와 철학을 읆조렸다. 그리고 에로스 신의 능력에 심취하여 성적 유희를 즐기곤 했다. 

나일강에서 '술취함의 축제'인 '심포지움'을 열고 있는 로마 귀족들을 묘사한 모자이크
모자이크로 표현된, 나일강에서 '술취함의 축제'인 '심포지움'을 열고 있는 로마 귀족.

술 취하지 말라.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에베소서 5:18)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베드로전서 4:3)

성경 메시지가 그 시대를 살던 이들에게 전해졌을 때,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느꼈을 그 의미를 짚어가는 것은 성경 읽기에 있어서 중요한 수고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를 담아내고 반영하고 있는 고대 유적과 유물을 마주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런 유물읽기를 할 때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평범한 이들의 일상의 흔적은 유물이나 유적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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