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누군가 나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 김영웅
  • 승인 2018.05.0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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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 책과일상 - 유진 피터슨, 다윗 : 현실에 뿌리 박은 영성, IVP, 2009년
유진 피터슨, 다윗 : 현실에 뿌리 박은 영성, IVP,
유진 피터슨, 다윗 : 현실에 뿌리 박은 영성, IVP, 2009년

정갈하면서도 뼈가 있고,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주는 글을 만난다는 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커다란 행운이다. 그 글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보석 같은 메시지를 들추어내어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 번도 듣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접할 때보다 더 큰 신선함과 놀라움, 그리고 가슴 먹먹해지는 감동을 조용히 전달해주는 글. 난 이런 글을 만날 때면 어느새 경건한 자가 되어 한층 더 낮아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마침내 나를 넘어서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벽을 뛰어넘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영문판, 원서 제목은 'Leap over a wall'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야 처음으로 만난 유진 피터슨의 저서,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은 내게 그런 모습으로 다가왔다.

다윗의 이야기가 주로 적힌 사무엘 상하서를 기본 틀로 하여, 유진 피터슨은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들어 익숙한 이야기에서부터, 비록 잘 알려져 있진 않으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에 이르기까지, 때론 상상력을 발휘하여 총 스무 개의 에피소드를 짤막하게 다시 들려주며, 그것들이 가진 깊은 의미를 캐내어 현재 우리가 숨 쉬고 있는 21세기로 소환해낸다.

2천 년이 훨씬 지난 다윗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걸어오는 말을 통해 저자가 소환해낸 메시지는 좌로나 우로, 혹은 도덕주의나 세속주의로 치우친 영성이 아니다. 제목이 분명하게 말해주듯, 그가 책에서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영성은 우리가 물리적으로 밟고 있는 이 땅, 이 현실에 철저히 뿌리박은 영성이다. 눈물을 자아내고 적당한 반성과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힘은 있으나 구름 속에 있어 손에 잡히지 않는, '영성'이란 탈을 쓴 막연한 '감상'은 결코 세상 속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영성이 될 수 없다.

다윗 이야기에는 우리가 흔히 정의하는 기적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꼽으며, 저자는 다윗 이야기야말로 현실에 기반을 둔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과 사명을 인식하고 올바른 영성을 기르는 데 적절하다고 말한다. 다윗은 제사장도 아니었고, 선지자도 아니었다. 그는 이새의 여덟 아들 중, 위대한 사무엘이 방문했을 때조차 그의 앞에 데려오지 않아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만큼 주목할 것 하나 없는 막내였고, 그저 양치기 소년이었다. 그는 평범했다.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도 아니었고,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독차지하지도 않았다. 그에겐 신비한 힘이 솟는 머리카락도 없었고, 기도할 때마다 어떤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도 없었다. 알고 보면 다윗은 그야말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일개 인간이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은 거룩한 성소나, 제사장들의 구별된 장소나, 기적을 일으키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신비한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는 우리들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 실재하며 거기에 충만하게 임한다영성은 어떤 신비한 힘을 뜻하지 않는다. 영성이란 인간이 신격화되는 모습이 아닌, 가장 인간다워지는 모습에 있다. 그리고 이는 곧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가는 모든 하나님 백성이 지녀야 할 궁극적인 모습일 것이다.

원래의 창조된 인간으로 회복되는 여정, 우리는 이를 성화 과정이라고도 하고, 영성이 훈련되는 과정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나는 이 과정을 감히 일상이라고도 부르고 싶다. 우리는 모두 천로역정의 어딘가에 놓여 있는 것이다. 또한, 영성 훈련이란 우리의 힘을 키워 하나님께 영광 돌릴 어떤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쓰임 받는 깨끗하고 투명한 질그릇이 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거기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우리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만이 언제나 가장 우선시되는 현장이다. 그리고 그 현장은 바로 우리의 일상, 우리의 현실이 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유진 피터슨이 이 책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메시지일 것이다. 바로 그때 우린 현실에 가로막힌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

우린 다윗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영성을 배우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벽을 뛰어넘는 현장은 곧 우리 자신을 뛰어넘는 현장이며, 사탄의 체제에 대항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땅을 일구는 현장일 것이다다윗의 파란만장한 삶은 우리들의 일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나서도 여전히 누군가의 계략으로 곤경에 처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갈 정도로 환란을 겪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늘 침묵만을 지키고 계신 것만 같다. 그 세력은 힘이 있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일 때도 많다. 때론 사탄의 체제 아래 놓여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질서를 지키며 연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도 있다.

정의와 공의의 기준조차 모호해질 때쯤이면 우린 자신의 존재까지도 원망하고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충동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간신히 살아남게 되었지만,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문제들은 안팎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터진다. 승승장구할 때도 경험하지만, 바로 그때 유혹에 휘말려 들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러한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셨고 또 계속해서 이루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조차도, 죄와 악으로 가득 차 제거해야만 할 것 같은 상황조차도 모두 합하여 선을 이루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환란을 이겨내는 묘안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부족함을 메우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해내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신뢰하며 소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부족함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일상이라는 인생 여정을 통하여 결국 우리가 얻는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다. 영성이다.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하나님 나라의 영성은 죄와 악으로 물든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다. 어두운 땅속에 박힌 씨앗 하나가 발아하여 대지를 뚫고 나오는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그 견고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 생명이 충만한 영성은 죄와 악으로 물든 현실이라는 대지를 뚫고 나와 바로 그곳에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만드는 힘이다. 후회와 미련, 원망과 절망으로 가득하고, 철저히 세속적인 것으로 가득해 보이는 우리들의 현실 속에 깊게 뿌리내린 영성이야말로 생명이 있기에, 바로 그 생명은 하나님이기에, 마침내 싹을 틔우고, 그 대지를 뚫고 자라나 열매를 맺고,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다.

다윗을 생각한다. 양치기에서 소년 영웅으로, 궁중 악사로, 도망자로, 작은 공동체의 리더로, 왕으로, 그리고 모든 힘을 내려놓고 무릎 꿇고 앉아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할 줄 알았던 하나님 백성, 다윗. 다윗을 통해 하나님을 본다. 그리고 같은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인 나를 돌아본다. 내 현장을 돌아본다. 영성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 여정과 현재 나의 일상 속에 거하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근력, 그 작은 몸부림. 나를 통해서도 누군가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나의 꺾임조차도 생명의 빛에 의하여 굴절되어 무지개가 되고, 남에게 힘이 되는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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