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체제불복과 규율에 대한 도전한 여성?
에스더, 체제불복과 규율에 대한 도전한 여성?
  • 강호숙
  • 승인 2018.05.0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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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숙의 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
하만을 질책하는 에스더(1888), Ernest Normand(1857–1923)

에스더서는 구약의 39권 가운데 룻기서와 더불어 여성이름이 붙여진 성경이다. 에스더서는 세상의 모든 통치자들 뒤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자동적으로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충성스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뤄가시는 것을 보여준다.

에스더서의 "죽으면 죽으리라"의 신앙으로 유대민족은 기적적으로 구원받게 되는 반면, 유대민족을 말살하고자 음모를 꾸몄던 아하수에로왕의 오른팔이었던 아각 사람 하만은 자신이 설치한 나무에 매달리게 되는 짜릿한 역전을 보여준다는 측면이 많이 부각되었다.

왕비 에스더, Andrea del Castagno
왕비 에스더, Andrea del Castagno(1421-1457)

하지만 에스더서를 읽노라면, 철저한 가부장적 권력 하에서 와스디와 에스더는 희생자이거나 미모를 자랑할 만한 장식품 정도로 취급됨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유대민족주의도 한 몫 거든다.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의 인물됨은, 절개와 민족 사랑을 지닌 자라고 볼 수만은 없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심하며 목숨을 걸고 유대민족을 구한 에스더였지만, 하만의 재산과 정치적 실권, 명예와 칭송은 모두 모르드개에게로 돌아갔다. 이것은 작금의 한국교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여성에게는 의무와 희생만 있고, 그 영광은 남성들이 다 취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교회에서 여성에게 주는 권사직분은 '공식화된 여종' 같다.

여성의 입장에서 에스더를 생각해보자. 이방 나라에서 부모 없이 삼촌의 손에 양육되었기에 고민이나 마음의 상처와 외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왕후가 되어서도 왕만 쳐다봐야하는 가운데 바사왕국과 유대민족 사이의 양가적인 위치로 인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 너만 모면하리라 생각하지 말라"는 삼촌 모르드개의 반협박식의 압력도 참 힘들었겠다.

페르시아의 왕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

에스더서는 가부장주의와 유대민족 중심주의 속에서 여성은 자신이 갖고 있는 왕후라는 직위도 나라와 민족 혹은 집단을 위해 일시적으로 소유할 뿐이다. 여성의 신앙적 행위에 대해서 그 당시 가부장 사회에서는 어떠한 칭송이나 기림도 없다. 설교에서는 에스더보다는 모르드개를 믿음의 인물로 자주 언급하고 있어 안타깝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신앙은 체제불복과 규율에 대한 도전이었다. 하여 오늘날 교회는 유대민족을 구한 에스더의 희생과 헌신을 강요만 할 게 아니다. 자발적인 신앙의 헌신과 도전으로 행복해할 수 있는 주체성을 지닌 교회 여성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죽으면 죽으리다"가 여성에게 헌신의 강요나 희생적 기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결단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교회를 위해 희생당하는 여성이 아니라, 자아실현을 꿈꾸는 여성으로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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