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읽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은 책
혼자 읽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은 책
  • 홍순주
  • 승인 2018.04.12 2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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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터니 티슬턴, 두 지평 성경 해석과 철학적 해석학, IVP, 2017년
앤터니 티슬턴, 두 지평 성경 해석과 철학적 해석학, IVP, 2017년
앤터니 티슬턴, 두 지평 성경 해석과 철학적 해석학, IVP, 2017년

한동안 IVF 시니어 간사 공부 모임에서 지난 몇 달간 함께 붙들고 씨름했던 책입니다. <두 지평>은 앤터니 티슬턴의 박사학위 논문을 출간한 책으로써, 해석학 분과에 큰 발자취를 남긴 네 거장인 하이데거, 불트만, 가다머, 비트겐슈타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 자신도 성서학계의 거두이니, 대가가 대가들에 대해 말하는 책인 셈입니다. 게다가 <두 지평>에는 저네 학자 외에도 구름같이 허다한 철학자와 신학자가 등장합니다. 저자가 그 수많은 거장과 주고받는 현란한 티키타카(?)를 따라다니다보면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두 지평의 융합을 말하고 있지만 정작 저자의 지평과 독자의 지평이 전혀 융합되지 않는 모순적인 책'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과 불평을 책을 읽는 내내 수없이 했을 만치 어려운 책입니다. 함께 헤매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분투했던 학습공동체가 없었다면 지금 도달한 정도의 얕은 이해에도 결코 이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책을 공부하면서 좋은 학습공동체의 유익과 저력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럼 제가 이해한 범위 안에서 책의 전체적인 논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저자는 네 학자를 단지 수평적으로 나열하는 식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글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그 목적이란 '불트만 식의 성서해석 극복하기'입니다(이것이 저자가 불트만을 전적으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자는 불트만 신학이 가지는 의미와 기여, 그리고 한계를 꽤 공정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불트만 해석학을 다루기 위해 먼저 불트만에게 큰 영향을 미친 하이데거의 사상에서 시작합니다. 하이데거의 사상은 한두 마디로 요약할 수 없을 만치 난해하고 깊지만, '실존적, 존재론적 깨달음'을 중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이데거와 깊은 교류를 가졌던 불트만의 성서해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서, 불트만식의 실존주의적 성서해석을 낳습니다(이것은 다소 단순화한 표현이고 실제로는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기 전부터 불트만 해석학의 핵심적인 방향성은 이미 꽤 확립되어 있었음을 이 책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트만이 하이데거 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았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의 실존적 '만남-사건'을 일으키는 성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불트만의 해석학은 여러 이점도 가지고 있지만 '역사의식의 결여'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보고 있듯이, 체험과 만남 사건만을 강조하고 역사의식이 결여된 신앙은 필연적으로 신앙의 사사화로 흐르게 됩니다.

불트만이라면 학을 떼며 멀리하는 한국교회 일반의 신앙적 특성이 사실은 불트만의 사상과 꽤 닮아있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아이러니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불트만식 해석학을 극복하기 위한 논리를 가다머와 비트겐슈타인에게서 가져옵니다. 가다머는 우리에게 전통의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 참된 지평 융합은, 인습에 매이지 않는 창조적 성경해석의 힘(현재)과 전통에 대한 진지한 존중(과거)이 변증법적으로 만날 때 일어납니다.

이것을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의 관계를 통해서 풀어가는 부분은 매우 유익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이론을 통해서는, 성경 저자가 선택한 언어게임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 안에서 해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배웁니다. 저자의 언어게임 밖에서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은 오독으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그것이 성서해석에 실제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이는 사례 연구로서 '바울의 이신칭의 의미''바울이 말하는 믿음과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의 의미'를 다루는 부분은 이 책의 백미이자 절정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통찰을 활용하여 바울의 언어게임 안에서 이신칭의가 쓰인 의미와 용법을 분석하여 소위 바울에 대한 옛관점과 새관점을 종합해내는 저자의 설명은 가히 압권입니다. 또한, 신약성서의 난제인 '바울과 야고보의 믿음'에 대해서도 바울과 야고보 각각의 언어게임을 분석하고 그들의 주장이 결코 상호모순이 아님을 보여주는데, 이전에 접했던 그 어떤 설명보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여기를 읽으려고 지난 몇 달간 그 고생을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탄과 흥분을 불러일으킨 부분입니다.

불트만 부류의 실존주의 성서해석의 문제는 텍스트가 '독자에게 주는 의미'만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역사적 맥락''저자의 의도'는 소홀히 여긴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텍스트와 독자가 만나온 경험의 축적으로서의 '전통'(가다머)을 존중하고, 저자의 '언어게임' 안에서 텍스트를 읽기 위해 겸손히 귀 기울이는 것(비트겐슈타인)이 제한된 인식을 가진 우리의 한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지평 융합을 이루는 최선의 길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참 좋은 책입니다. , 혼자 읽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화입마 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 홍순주 간사는 IVF 서서울지방회 대표간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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