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니언은 오래된 지구’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기념비
'그랜드캐니언은 오래된 지구’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기념비
  • 정한욱
  • 승인 2018.04.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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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빙자한 종교 비즈니스를 넘어서는 책
캐럴 힐 , 그렉 데이비슨 , 팀 헬블 , 웨인 래니 , 조엘 더프, 새물결플러스, 2018년

『그랜드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를 다 읽었습니다. 지구의 가장 멋진 경이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랜드캐니언이 일부 창조과학자(혹은 홍수 지질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오래된 지구’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기념비라는 사실을 탄탄한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잘 설명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진과 친절한 삽화로 가득한 매력적인 책입니다.

고생물학자와 지질학자들인 저자들은 이 책의 1부에서 그랜드 캐니언의 형성과 구조에 대한 홍수 지질학의 견해와 현대 지질학의 정설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2, 3, 4부에서는 그랜드 캐니언의 퇴적과 화석증거, 그리고 침식의 전 과정에 대한 현대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설명을 자세히 살펴가며 홍수 지질학의 문제에 대해 지적합니다. 마지막 5부에서는 지금까지 설명한 그랜드캐니언의 형성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요약하고 그것을 홍수 지질학의 교리와 비교하면서 홍수지질학이 ‘과학’의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어설프고 허접한 유사 과학이자 사이비 신학인 ‘홍수 지질학’에 대한 효과적인 비평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원리와 방법론, 그리고 놀라운 성취를 잘 보여 주는 과학교양서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추천사를 쓴 전성민 교수의 말대로 독자들은 이 책에서 “과학을 빙자한 종교 비즈니스가 아닌 진짜 과학자들의 성실한 연구와 정직한 설명”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창조과학의 핵심적 주장 중 하나인 홍수 지질학(flood geology)을 신봉하는 학자들은 성경의 특정 구절들에 대한 극단적인 문자적 해석에 따라 지구의 나이는 6,000년이고 그랜드캐니언 퇴적지층의 거의 대부분은 4,500년 전 발생한 단 1년간의 세계적인 노아의 대홍수 때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격변론자(catatrophist)로 알려진 이러한 홍수 지질학자들의 설명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법칙이 창조주간과 에덴동산에서의 타락 이전, 노아 홍수의 다양한 시점마다 모두 달랐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일련의 희한한 과학적 매커니즘이나 전혀 있었을 법 하지 않은 연속적인 기적이 실재로 존재했어야 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소수의 데이터만 선택적으로 인용할 뿐, 지구가 오래되었다는 압도적이고 강력한 여러 증거들을 애써 무시합니다. 이렇게 홍수 지질학은 대답을 가지고 시작하여 미리 결정된 모델에 부합하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서만 자연을 연구합니다.

이에 대해 이 책의 저자들은 현대 지질학과 성경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인식은 본질적으로 20세기 초에 등장한 일부 극단적인 문자주의자들의 믿음에서 출현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암석과 화석을 만들고 있는 기본적인 지질학적 과정이 지구의 역사 대부분에 걸쳐 활발하게 작용해 왔으며, 오늘날 유효한 물리법칙 및 화학법칙이 과거에도 유효했기에 현대의 관찰을 통해 과거의 사건과 환경을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동일과정론 uniformitarianism). 지금과 다른 특수한 환경과 법칙을 가정할 필요가 전혀 없이 현재의 과학적 지식만으로도 그랜드 케니언의 모든 생성과정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으며, 그랜드 캐니언에 있는 어떤 퇴적 구조물도 지구 역사상 단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은 전 세계적인 홍수와 같은 이례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홍수 지질학의 설명은 얼핏 강력해 보이는 지점에서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언제나 전 세계적인 홍수와 모순되는 결정적인 관찰이나 데이터가 논의에서 빠져 있으며, 참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은 해당 모델에 들어맞는 자료 뿐 아니라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고려해야 한다고 일갈합니다.

젊은 지구론 혹은 홍수 지질학을 주장하는 분들은 ‘세계관’의 차이로 인해 같은 자료에서 다른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즉 젊은 지구론자건 현대 지질학자건 모두가 훌륭한 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지만, 각 사람이 ‘성경적’이거나 ‘인본주의적’인 안경을 쓰고 자료에 접근하기 때문에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그랜드캐니언 형성에 대한 이론을 평가하기 위한 토대가 과학적 증거라고 한다면, 홍수 지질학은 과학이라고 불리기에 너무나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세계관’ 혹은 ‘전제주의’라는 근본주의의 만능 방패로 과학적 검증의 잣대를 피해 가기에는 그 이론이 가지는 과학적 증거의 빈약함과 데이터의 왜곡이 너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막론하고 대다수의 상식을 갖춘 과학도들이 동의하듯이, 이러한 ‘창조과학’ 혹은 ‘홍수지질학’에 가장 걸맞는 칭호는 “유사 과학(pseudoscience)”일 것입니다.

저자들에 따르면 진정한 과학은 “자연이 이해 가능하고 오늘날 지구상에서 작동하는 과정들을 사용해서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알려줄 수 있으며, 근본적인 물리학과 화학 법칙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으리라고 규정하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수행됩니다. 그리고 동일과정론으로 알려진 이러한 견해는 본질적으로 비신앙적이거나 세속적이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과학은 “논리적이고 일관성이 있으며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자연을 인도하고 지탱하기 때문에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기독교 철학의 역사적 영향 안에서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그분은 언제든지 스스로 만든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가 그랜드 캐니언을 포함한 현재 우주의 모습을 무리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잘 확립된 정설을 무시한 채 자신의 '신앙적' 신념에 따라 굳이 현대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일련의 기적적 사건을 전제해야만 겨우 성립되는 허술한 이론으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겠다고 강변한다면, 어떤 동료 과학자도 그런 주장을 ‘과학’의 범주에 끼워주려 하지는 않겠지요. 만약 ‘창조과학’ 혹은 ‘홍수 지질학’이 동일과정론이라는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작업가설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일련의 희한한 기적과 격변으로 현상을 설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계속하거나, 자신들의 빈약한 이론을 수호하기 위해 자꾸 ‘세계관’이나 ‘전제’ 같은 용어들을 입에 올리는 고약한 습관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에세 덧씌워진 “유사과학”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에서 벗어나기란 점점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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