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이슬람,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루터와 이슬람,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 김동문
  • 승인 2017.11.12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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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Aspelin(1857-1922), www.uppsalaauktion.se
Karl Aspelin(1857-1922), www.uppsalaauktion.se

종교개혁자가 본 이슬람 관련하여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루터와 이슬람에 얽힌 주장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아마도 우리도 개혁자 루터처럼 이렇게 저렇게 살자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자칫 루터를 영웅화시키는 오류에 빠뜨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500년전 그의 고민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2017년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의 현안을 마주하는 분별이 필요한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래와 같이 네 꼭지의 짧은 인용문을 담아봅니다. 각각의 주장에 대한 팩트체크는 저는 여기서 하지 않았습니다.

 

1. 최주훈 목사는 아래의 기사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374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최주훈 목사는 혐오와 배제, 구별과 차별은 종교개혁 정신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루터의 일화를 소개했다.

"1525~1526년 이슬람 군대가 오스트리아 빈까지 진격한 적이 있었다. 기독교 세계는 난리가 났다. 10세기처럼 십자군을 일으켜 이슬람을 쓸어버리자는 논의가 나왔다. 당시 가톨릭은 병력을 늘리려 이단으로 규정한 루터파까지 정치적으로 끌어들였다. 루터는 반대했다. '상대를 알지 못하고 싸우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상대방 이야기를 듣지 않고 혐오나 배제, 구별과 차별로 대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2. 유해석 목사(FIM 국제선교회 대표)는 그의 글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184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 넷째, 루터는 이슬람을 종말론적인 적()으로 인식하였다. 1529년 이슬람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Vienna)를 포위한 소식을 들으면서, 루터는 임박한 종말을 의식하며 이슬람을 종말론적인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터키인에 대항하는 군대 설교>에서 루터는 말세에 예언된 두 폭군을 교황과 이슬람으로 해석하고, 다니엘서 7장의 4번째이자 마지막 짐승을 로마 제국으로, 열 뿔을 제국 내의 나라들로, 그리고 뿔들 사이에 있는 작은 뿔을 이슬람으로 이해하였다. 교황을 위선의 가면을 쓰고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적그리스도, 이슬람을 선하고 정결한 덕목을 지닌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단의 계략을 가진 적그리스도로 이해했다."

 

3. 김성봉 목사( 전 신반포중앙교회 담임)는 아래의 기사http://goo.gl/mhUkB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성봉) 목사는 "루터는 독자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대적들에 대항하여 기도하듯이 터키인들에 대항하여 기도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쳤다. 루터에 의하면,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에 대항해 기도하는 것이다. 루터는 이것을 보다 특별하게 '하나님과 마귀 사이의 우주적인 투쟁'과 동일시하며, 터키인들을 '에스겔서 38~39장에 예언된, 그리스도 왕국의 마지막 폭군인 곡(Gog)과 마곡(Magog)'과 동일시했다. 1년 이내에 그는 이 결론에 보다 더 비중을 두고자 했는데, 이는 그가 다니엘서 7장에서 '오스만 제국이 일어날 것에 대한 예언'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꾸란의 가르침에 대한 루터의 평가는 이슬람의 참된 성격을 분명히 했다. 그리스도의 인품과 사역에 관하여 꾸란이 말하는 거짓들은, 이슬람이 종교적 상태를 파괴한다는 것을 충분히 드러낸다. 또한 오스만의 제국주의적 정책은 분명히 정치적 상태를 파괴한다. 그리고 꾸란이 이혼을 하는 것과 부인을 바꾸는 것을 자유롭도록 한 것은, '터키인들은 참된 결혼을 경멸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4. 옥성득 교수는, 그의 글https://www.facebook.com/sung.oak.9/posts/1940493916210560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루터가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해 꾸란을 번역했다는 말은 오류이다. “1529년 루터는 오트만 투르크와의 전쟁을 주장했지, 관용이나 이해를 주장하지 않았다. 침략군 앞에서 언제 꾸란을 읽고 있을 시간이 있나? 일단 전쟁하고 1542년에 가서야 루터도 겨우 라틴어판 꾸란을 읽는다. 루터는 배제와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루터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현재주의 관점으로 역사를 보면 오류가 발생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루터는 과연 종교 관용론자였나? 루터는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공격했고, 유대교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었으며, 이슬람은 독이 가득한 거짓 종교로 보았다. 루터는 "이슬람을 이해하려고 코란을 번역"한 적은 물론 없다.“

 

종교개혁 500주년’, 올해 최대의 유행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루터와 관련하여 이런 저런 주장을 하면서, 루터의 원전(또는 원전 번역서)을 제대로 살펴보고서 주장을 하는 것일까 궁금합니다. 또한 루터의 입을 통해서만 루터를 짚어보는 것이 과연 균형 잡힌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그 반대편에 선 이들의 시선도 루터, 루터의 종교 개혁, 루터와 이슬람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옥성득 교수는, “루터는 1542년에 가서야 기존에 있던 라틴어판 꾸란을 읽고 이슬람에 대한 팜플렛을 만들기 시작했다. 루터가 독일어판 꾸란을 번역한 게 아니라, 라틴어판 꾸란에 서문을 써 주었다.”고 지적합니다. 오늘날 루터의 시선으로 이슬람을 비판하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루터의 이런 모습은 어떻게 반응하려는지 궁금합니다. 늘 합리적인 의심을 품고, 책이나 글이든 글쓴이의 주장도 한 번 걸려내는 수고가 없이는, 때때로 그릇되거나 가짜 지식의 종이 되는 현실을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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