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난주간과 부활주일 그리고 '그들'의 고통
우리의 고난주간과 부활주일 그리고 '그들'의 고통
  • 김동문
  • 승인 2018.03.31 2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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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의 현재를 마주하기

우리의 고난주간 체험과 예배, 그리고 부활 신앙은 누군가의 현재의 고통에 어떤 의미일까? 이스라엘의 점령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그곳에서 들려오는 아픔과 고통의 소리가 있다.

어제 금요일, 가자지구, 이스라엘 군이 쏜 총에 맞은 이가 773명이었다는 영국 '가디언'의 기사도 읽는다. 뒤로 돌아서 가는 이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이스라엘 매체 '하아레츠'의 기사도 본다비무장 상태의 점령지 주민과 무장 상태의 이스라엘 군, 이것은 충돌도 전쟁도 아니다. 그 이상의 것이다.

이 기사를 마주하면서, 스스로를 '선민'이다. '영적 이스라엘'이라 생각하는 어떤 이들이 떠올라 마음이 더 아팠다. 그들에게는 구약 성경 요나서도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에게는 이스마엘의 하나님도 없는 듯하다. 그들에게는 예수가 없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성 금요일, Good Friday, 가상 현실 속의 고난 체험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목숨을 위협받고 죽고 다치는 고통이 일상이다.

명령을 따라 그저 수행하는 군인들의 차가운 충성이 안타깝다. 2천 년전 예수의 고난에 참여한다면서, 그들의 죽음과 자신은 상관없다며 성찬에 참여하는 냉혈한 같은 어떤 기독교인들의 신앙 고백이 곤혹스럽다.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은 지금 고통 당하는 이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Mahmoud Abu Salama

문득 이런 성경 구절이 다가온다. 예수님과 제자 사이에 오고간 대화이다.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셨다제자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누구의 죄로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났습니까? 자기 죄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기 위해서이다(요한 9:1-3)

우리는 최소한 이 비슷하게 라도 물어야 할 것 같다. 팔레스타인인의 지금의 고통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나면서 부터 팔레스타인 무슬림 난민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인가? 라고..

그러나 적지 않은 이들은 아예 묻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답을 한다. 저들의 죄 때문이라고, 저들이 예수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저들이 이스마엘의 후손이기 때문이라고, 저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이라고, 저들이 선민 이스라엘의 적이기 때문이라고, 저들이 블레셋의 후손이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아무런 말도 행동도 기도도 하지 않는다. 지금 고통당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은 고난주간을 기억하고, 부활을 말하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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