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환] '부활', 소문, 체험, 학습을 넘어
[이택환] '부활', 소문, 체험, 학습을 넘어
  • 이택환
  • 승인 2018.03.31 2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택환 목사의 설교 - 요 12:12-19

오늘 요한복음 본문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절 설교로도 적절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네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순서대로 보면 첫 번째 사람들이 12절의 큰 무리입니다. 두 번째가 16절의 제자, 세 번째가 17절의 무리’, 그리고 네 번째가 19절의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스라엘의 해방, 즉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고대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이 시기가 유월절 무렵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래 유월절은 과거 430년간 애굽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조상들이 해방된 날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외세의 압제 가운데 있을 때, 매년 유월절마다 해방의 꿈을 꾸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전 63, 로마의 손에 넘어갔기에, 주후 30년 예수님 시절에도 유월절만 되면, 로마로부터 해방을 얻으려는 혁명의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났습니다. 그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 지도자, 그가 결국 하나님 나라를 가져올 1세기 유대의 메시아였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그 해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 메시아로 기대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당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네 부류 가운데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누구보다 지적이고 학식이 풍부했던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때, 그들에게 약속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것을 믿었습니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 맺은 계약의 규례, 즉 율법에 충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오래전부터 내려온 조상들의 율법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런 바리새인들은 자기 주위에 조금이라도 율법 전통을 전복시키는 자들이 있다면, 무자비하게 제제를 가했지요.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사울입니다(1:14). 그런 바리새인들이 볼 때, 예수님은 율법 전통에 충성하는 자가 아니라, 그 전통을 폐하는 이스라엘의 적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수시로 어기고, 성결규정을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율법에 충성하는 바리새인을 향해 돈을 좋아하는 자’, ‘남들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자’, ‘회칠한 무덤이라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게다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 온갖 이적을 행함으로 백성들을 미혹하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는 거짓 메시아로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도 바리새인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도 율법이 물론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율법을 폐기하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셨고, 또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 즉 새로운 율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율법을 과거 바리새인들처럼 문자대로 지켜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을 띠라 새롭게 지켜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21세기에도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니까 안수 받은 목사, 장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매우 바리새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바리새 사고에 빠진 미국의 한 유명목사가 최근 성폭력의 원인이 남녀평등에 있다고 말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남자에게는 가족을 보호하고 부양하고 지도하는 책임을, 여자에게는 남편을 존중하고 가사를 돌보고 자녀를 양육하는 책임을 주셨는데, 현대인들이 이런 의무를 저버리고 평등주의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남성이 약한 존재를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알지 못해서, 여성을 함부로 대해 성폭력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21세기 바리새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개인적으로는 구원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갈 길이 막힙니다. 그래서 일찍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열렬히 지지하고 환영했던 큰 무리(12), 그리고 다른 무리(17), 또 예수님의 제자(16)들은 어땠을까요? 먼저 큰 무리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오신다는 소식에,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성 밖으로 맞으러 나갔습니다. 그들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시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메시아, 우리의 왕이시여, 지금 우리를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예수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몰려 간, 말 그대로 큰 무리였습니다.

이런 큰 무리에 대한 고전적인 사회심리학적 연구가 구스타브 르봉에 의해 처음 행해졌는데, 1895년에 그가 쓴 <군중심리학>은 아직도 군중에 대한 연구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르봉에 의하면 군중은 이성보다는 집단 무의식에 사로잡혀,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며, 거짓 선동에 쉽게 넘어가고, 자주 난폭해 질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르봉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군중이 우리나라 촛불민중입니다. 촛불민중은 개개인마다 깨어 있고 이성적이며 그러기에 선동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 특별한 군중입니다. 이와 달리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오늘 본문의 큰 무리와 같이 르봉의 군중심리학으로 잘 설명됩니다.

큰 무리가 당장은 뜨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후에도 그들의 기대가 채워지지 않자, 불과 며칠 뒤에는 반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에 선동되고 동원되었습니다. 호산나! 외치던 함성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들은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18:40). 빌라도가 그들에게 유월절 특사로 예수와 바라바와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라고 하자, 그들이 바라바를 택하고 예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거부한 바리새인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8절의 무리는 또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들은 베다니에서 온 순례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경험, 즉 예수께서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신 기적을 체험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들은 큰 무리와 달리, 자신이 체험한 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했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것을 증거하는 체험신앙, 중요합니다. 그러나 체험이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체험에 갇혀 더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체험을 신앙의 절대요소로 여길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방언 좀 한다고 우쭐대거나, 예언 좀 한다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합니다.

사실 체험으로 말하자면 예수님과 24시간 동행했던 제자들보다 더 많은 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체험자가 아닌 체험을 날마다 학습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 역시 예수님을 끝까지 붙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무수히 체험한 예수님의 모습, 즉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의 소유자가, 유대 지도자들과 빌라도 앞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을 부정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결국 제자들도 바리새인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요.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바리새인들의 방대한 전통적 지식, 큰 무리처럼 소문을 듣고 따르는 것, 단지 소문이 아니라 체험, 더 나아가 제자들처럼 그 체험을 날마다 학습하는 것만으로도 안 되는, 기독교 신앙의 요체가 과연 무엇일까요

“16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예수께서 얻으신 영광,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없다면, 전통과 지식, 소문과 체험, 학습만으로는 예수님을 따른다 해도 참된 기독교 신앙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킬 전통은 바리새 율법전통이 아닌, 십자가와 부활신앙 전통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질 소문도 예수 믿으면 병 낫고 부자 된다는 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소문입니다. 우리가 체험하고 학습할 신앙도 방언이나 예언,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것이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