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다
남편 없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다
  • 엄경희
  • 승인 2018.03.22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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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 맘 엄경희의 사우디 통신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나와 가족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산 이래, 처음으로 남편 없이 혼자 스타벅스 커피를 사 마신 날이다. 주택만 있는 우리 동네에 근래 상가 건물이 들어서면서 스타벅스가 문을 열었다.

어제 아이들이 인라인을 타러 나갔다가 준하가 혼자 가서 쿠키를 사 왔는데 오가는 길에 동네 아이들이 돌을 던졌단다. 아이들이 걱정되어 오늘 아바야를 입고 아이들을 따라나섰는데, 상가 건물이 생각보다 가까웠다.

남편 없이 걸어서 상가에 가 보기는 처음이다!! 남편 없이 물건 살 일이 거의 없었기에 사우디 살면서 나는 지갑도 안 가지고 다닌다. 언제부터인가 지갑이 아예 없어졌다! 당연히 돈도 없었다. 그래서 준하가 저금통에 꼬불쳐 둔 돈으로 커피를 사 마셨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사는 여성들이 다 나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우디에서 지갑이나 돈을 몸에 지니고 다닐 필요가 없는 삶을 꽤 오래 살아왔다. 그만큼 남편 없이 외출이나 쇼핑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았다는 의미다.

어제 아이들에게 돌 던진 녀석들을 만나면 혼쭐을 내주리라 단단히 벼르고 나갔다. 그런데 해가 지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이 날씨에 동네 거리는 이따금 자전거 타는 꼬마 아이 한두 명 빼고 사람이 하나도 없다. 바깥출입을 안 하는 건 외국인인 나만은 아니구나.

쿠웨이트로 출장 간 남편에게 혼자 스타벅스에 갔다 온 이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드디어 혼자 도망갈 곳이 생겨 좋겠네 한다맞다. 드디어 나도 걸어서 혼자 갈 수 있는 곳이 생겼다. 나 혼자 시간 보낼 곳이 생겼다. 남편 없이 혼자 갈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스트레스 아주 받는 날, 읽을 책 한 권 챙겨 도망갈 곳이 생겼다.

스타벅스에 혼자 갔다고 이렇게 감격하는 내 모습이 지금 내가 사는 이곳만큼이나 낯설다나는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

 

글쓴이 엄경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살며 다섯 손가락 꿈나무 5남매를 기독교 독서 중심의 홈 스쿨하는 엄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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