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러가 서구 중심적이며 기독교 왕국을 그리워한다고요?
켈러가 서구 중심적이며 기독교 왕국을 그리워한다고요?
  • 김상일
  • 승인 2018.03.18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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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욱 선생의 팀 켈러 읽기 후기에 대한 이견
ⓒTimothy Keller (@timkellernyc) | Twitter

페이스북 친구인 정한욱 선생님이 팀 켈러의 저서 6권을 읽고 느낀 점을 6가지로 정리해서 적어주셨습니다. 나름대로 반박할 부분도 있고, 정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고 해서, 선생님의 6가지 생각에 댓글 형식으로 제 생각을 좀 적어 보았습니다. 번호가 달린 문단들은 선생님의 생각들이고, 화살표가 달린 문단들은 제 답변과 생각들입니다.

 

팀 켈러에 대한 정한욱 선생님의 개인적인 생각에 대한 김상일의 생각

1. 켈러가 기존의 보수 기독교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러 예를 구체적으로 들어주셨습니다. 일단 켈러가 톰 라이트의 새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 라이트를 선택적으로 사용합니다. 그의 <Preaching to the Heart> 강연에서, 켈러는 자신이 갑상샘 암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어야 할 때, 라이트의 부활에 대한 저작인 <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을 읽고 굉장한 감명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고, 실제로 그의 설교에서도 톰 라이트를 꽤 자주 언급합니다. 한편으로 톰 라이트를 비롯한 새 관점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국가적/공동체적 정체성 표지로서의 율법을 강조하는데, 켈러의 복음 설교에서는 서구의 개인주의적인 정체성에 맞서서 공동체적 정체성 표지에 대한 언급이 꽤 자주 나타나며 (물론 켈러는 개인적 정체성과 공동체적 정체성을 모두 선택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선택적으로 배격하며, 복음에서 오는 정체성만이 그 둘 모두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고 주장합니다) 비록 직접 켈러가 새 관점 학파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을지라도, 논지의 흐름으로는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꼭 언급되어야 할 듯싶습니다 교회 운동을 설명하면서도 이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보수주의자들에게 공감한다는 말이 켈러가 선교적 교회 운동을 나름대로 소화해서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한욱 선생님이 이 부분은 너무 편파적으로 켈러의 센터 처치에서 켈러가 분명히 선교적 교회 운동의 필요성을 적시하고, 또 더 나아가서 자기 나름대로 선교적 교회 운동을 활용하고 있음에도 단순히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공감"했다는 이유로 마치 켈러가 선교적 교회 운동을 거부하거나 활용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를 언급하기를 피한다고 하셨는데, 이것도 공정한 판단이 아닙니다. 켈러는 센터 처치에서 게할더스 보스의 <The Teaching of Jesus and the Kingdom of God>이라는 책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소개합니다아래에서도 계속 지적하겠지만, 정한욱 선생님이 센터 처치를 선택적으로 읽으셨다고 했는데, 여기에 지적하신 내용 중 센터 처치를 제대로 읽으셨더라면 언급되지 않았을 내용이 매우 많다는 것을 밝힙니다.

2. 어떤 기준에서 이런 판단을 하시는지에 대한 근거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텍스트를 어떻게 보시고 이런 판단을 하시는 것인지를 밝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냥 인상 비평을 하신 것이라면 받아들이기가 어렵고요. 하나 더, 켈러가 속한 PCA 교단이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것에 저도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그 자체가 마치 구시대적이고 악한 것인 듯이 표현하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모님 되시는 캐시 켈러 사모님은 고든 콘웰 재학 시에 자신 또한 안수를 받아 여성 목회자가 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왜 여성 안수를 반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Jesus, Justice, and Gender Roles라는 책에서 잘 설명해 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성 안수에 관한 문제는 이미 켈러 목사님 부부가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했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면이라는 점에서 정 선생님께서 동의하지 않을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쉽게 "아직도 여성안수를 허용하지 않는"이라는 식으로 구시대적이며 뒤떨어졌다는 뉘앙스를 주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3, 4. 3, 4번은 연결된 내용이기에 함께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두 가지 판단 모두에 동의하지 않고요. 정황적인 이유에서, 그리고 켈러의 책이 보여주는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정황적인 이유를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켈러가 목회하는 맨해튼은 기독교에 적대적인 문화가 훨씬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지역입니다. 적어도 기독교에 무관심하거나,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지역입니다. 이런 지역에서 켈러가 기존의 기독교에 대한 나름의 반성이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글쎄요. 저는 켈러가 이미 어떤 면에서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반성했고, 그런 면을 자신의 사역에 적용할 정도로 자세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정 선생님께서 상대적으로 가장 괜찮았다고 하신 "탕부 하나님"은 그 주된 목적이 켈러 나름대로 상황화시킨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에서 큰아들에 초점을 맞춘 것은 교회 안의 위선적인 문화를 고발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고 켈러 스스로 탕부 하나님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즉 켈러가 탕부 하나님을 쓴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기존의 기독교에 대한 통렬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면을 제대로 보지 않으시고 반성이 없다고 하시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켈러가 어떤 논제에 대해서도 항상 중간 지점에 서서 자기 뜻이 가장 옳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면은 반성이 없어 보인다는 지적을 들을 만한 여지를 만들어 준다는데 저도 동의합니다만, 켈러 신학 안에 기존의 복음주의 기독교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말은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언급하지만, 정 선생님이 센터 처치를 제대로 정독하셨다면 3, 4번의 비판들은 나오지 않았을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센터 처치의 상황화에 관한 장은 그 자체로 이제껏 기독교가 보여준 잘못들에 대한 깊은 반성을 요구합니다. 복음 메시지를 깊이 알고, 어떤 면에서 복음이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왜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하는지에 대한 반성을 선제적으로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센터 처치를 제대로 읽어 보시기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5. 이 부분은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아무리 켈러가 적실한 얘기를 제대로 풀어내고 있다고 해도, 그는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하루에 12시간이 넘게 공부와 연구에만 투자할 수 있었던 사람도 아니고, C.S. Lewis처럼 전문적인 학자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실제 목회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것들, 먹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책을 쓰고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망치로 머리를 내려치는 충격이나 존재의 심연을 건드리는 심오함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상 켈러는 탁월한 소통가이자 목회자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켈러가 보여주는 탁월한 점은 그가 교리의 언어와 인간의 감정을 연결하는 시도를 대담하게 (그런 시도를 했던 대표적 인물이 개신교 자유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슐라이어마허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하고 있다는 점이며, 또 교리 언어가 가진 문턱을 신앙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이해할 정도로 낮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켈러의 소통과 연결의 철학은 심오한 깊이를 가진 신학자들이 쉽게 해낼 수 없는 부분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게 해주었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저 나름대로 더 깊이 풀어낼 계획입니다. 이후에 나오게 될 글이나 강의를 기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6. 센터 처치의 상황화에 관한 장을 읽으셨더라면, 그리고 City to City의 활동을 알고 계신다면 켈러에 대해서 이런 비판은 별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시시라 생각합니다. 켈러는 상황화를 굉장히 강조하는 목회자이고, 자신이 처한 서구적 상황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목회자입니다. 상황화에 대한 강조가 그런 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그가 세우는데 기여한 'City to City'는 세계 곳곳에서 교회를 개척하려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말씀하신 세계 기독교를 펼쳐가려는 사람들에게 각각이 처한 상황에 가장 적절한 복음의 상황화를 이루어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의 비판과 연결되는 지점이긴 하지만, 저는 어떤 면에서 정 선생님께서 켈러가 서구 중심적이며 기독교 왕국을 그리워한다는 인상을 받으신 것인지 여전히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글쓴이 김상일 전도사는, 현재 보스턴대학교(BU)에서 실천신학 박사 과정 재학 중이며, LIKEELLUL 이라는 이름의 서평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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