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건용] 강간당했다고 몰살해? (1)
[곽건용] 강간당했다고 몰살해? (1)
  • 곽건용
  • 승인 2018.03.15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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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나 강간과 세겜 몰살 사건(창세기 33:18-34:31)
이 글은 꽃자리(2015227)에 실렸던 글로, 글쓴이 곽건용 목사의 동의를 얻어 두 번에 나눠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Bugiardini Raub der Dina KHM" by Giuliano Bugiardini (c. 1475–1554) Wikimedia Commons
"Bugiardini Raub der Dina KHM" by Giuliano Bugiardini (c. 1475–1554)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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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에 난처하고 곤혹스런 얘기가 많다는 얘긴 여러 번 했지만 이 얘기만큼 곤혹스런 것은 흔치 않다. 얘기는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이란 가나안 사람에게 강간당했다는 걸로 시작된다. 여기서 세겜은 한 개인의 이름이자 그가 사는 성읍의 이름이기도 하다. 요즘 흔한 강간범죄가 옛날이라고 없었을 리 없다. 그런데 강간범 세겜이 디나를 죽고 못 살게 사랑하면서 얘기가 의외의 방향으로 꼬인다. 그는 아버지 하몰과 함께 야곱을 찾아가 디나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통사정했다. 둘이 천생연분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은 흔치 않다. 다윗의 아들 암논은 남이 아닌 이복누이 다말을 강간한 다음 곧바로 마음이 변해서 꼴 보기 싫다며 그녀를 쫓아내지 않았나(사무엘하 13). 암논과 비교하면 세겜은 의리사랑을 갖춘 괜찮은 친구가 아닌가 말이다.

야곱이 세겜의 청혼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그의 아들들은 몰래 누이의 복수를 꾀했단다. 그들은 세겜의 청혼을 받아들이겠다며 조건 하나를 걸었다.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디나를 그 집에 시집보내겠다는 거다. 세겜이 이 조건을 지체 없이 받아들인 걸 보면 디나를 진정 사랑했나 보다. 하몰과 세겜은 성읍 남자들을 설득해서 할례를 받게 했다. 그들이 할례를 받아 거동이 불편할 때 디나의 친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그들 모두를 칼로 쳐 죽였다. 야곱은 이 소식을 듣고 여타 가나안 주민들로부터 보복 당할 게 두려워 두 아들을 나무랐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럼 누이를 창녀 취급하는데 가만히 두고 봐야 하냐?”고 화를 냈다.

 

이 얘긴 여러 가지 점에서 곤혹스럽다. 우선 강간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부터 그렇다. 이건 분명 나쁜 짓이고 범죄다. 하지만 자기가 저지른 악행을 결혼함으로써 합리적이고 우호적으로 해결하려던 세겜에 대해 야곱의 아들들이 속임수로 대응한 것도 잘했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하몰 집안사람뿐 아니라 세겜의 모든 남자들을 몰살했다는 게 어떻게 도덕적으로 용납되겠나. 그 속임수가 하느님과 맺은 언약을 상징하는 할례였다니 무슨 말을 더하겠나. 강간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지만 그렇다고 강간범을 죽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강간범만이 아니라 세겜의 모든 남자들을 몰살했다니 이게 빵 한 조각 훔친 사람을 수년간 감옥에 집어넣는 것과 뭐가 다른가. 장발장도 이보다는 덜 억울하겠다 싶다.

곤혹스러운 게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이 얘기가 앞뒤의 얘기들과 별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창세기 33장은 야곱이 오랜 타향살이를 끝내고 고향에 돌아와 형과 감격적으로 재회하는 얘기이고, 35장은 그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베델로 올라가 거기서 살았다는 얘기다. 34장 얘기는 앞뒤 얘기들과 장소가 다를 뿐 아니라(33장은 숙곳, 35장은 베델인데 34장은 세겜이다) 내용도 무관하다. 이런 경우 학자들이 34장을 편집자의 삽입으로 치부한다는 얘기는 지난번 유다와 다말 얘기할 때 했다.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사실은 얘기가 처음에는 결혼하느냐 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나중에는 재산문제가 슬며시 끼어들어와 관심을 끈다는 점이다. 처음엔 하몰과 세겜은 야곱에게 세겜에 같이 살면서 땅도 차지하고 통혼도 하면서 재산을 늘리라고 권한다. 참으로 너그러운 처사가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동족 세겜 사람들에게 할례 받으라고 권하면서 그래야 그들(이스라엘)의 재산을 자기들이 차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너그러운 하몰과 세겜이란 인상이 이 대목에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정작 나중에 재산은 세겜 사람들을 이스라엘의 차지가 되지만 말이다. 그들은 무슨 권한으로 그렇게 했을까? 텍스트는 하느님이 이런 행위를 인정하거나 허락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는다. 이 행위가 법적, 도덕적으로 합당했는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세겜은 베델과 실로의 북쪽,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가는 도상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구약성서에선 창세기 126-7절에 처음 등장한다. 거기서 야훼는 과거 아브람에게 했던 약속을 확인해준다(“아브람은 그 땅을 지나서 세겜 땅 곧 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 때에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아브람은 거기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야훼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 세겜은 그밖에도 야곱(창세기 33, 34), 요셉(여호수아 24:32)을 통해 이스라엘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야곱은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에 하몰에게 은 백 냥을 주고 밭을 샀다(33:19). 그는 거기서 살 작정이었던 거다. 세겜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 디나 사건만 빼면 이스라엘 사람들과 세겜 사람들은 대체로 우호적 관계를 맺고 살았다.

그렇다면 디나 강간사건을 계기로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살육당한 얘긴 대체 뭘 말하려는 걸까? 그게 왜 여기에 있는가? 강간하고 강간당하고, 죽고 죽이는 사건에 어떤 신앙적 교훈이 있을까? 이제부터 찬찬이 따져보자.

Figures Simeon, Levi Slay Sichemites, illustrators of the 1728 Figures de la Bible Wikimedia Commons
Figures Simeon, Levi Slay Sichemites, illustrators of the 1728 Figures de la Bible Wikimedia Commons

2.

다시 말하지만 세겜이 디나를 강간한 건 비난받아 마땅하다. 옛날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살인이 동서고금 문화권의 다름과 상관없이 벌 받아야 하는 범죄인 것처럼 강간도 가증스런 범죄다. 하지만 강간범 처벌방식은 시대와 지역과 문화권에 따라 다 다르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는 강간죄를 그리 엄하게 처벌하지 않았다. 신명기 2228-29절은 강간범은 이렇게 처벌하라고 규정한다. “어떤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에게 욕을 보이다가 두 사람이 다 붙잡혔을 때에는 그 남자는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욕을 보인 대가로 그 여자는 그의 아내가 되고 그는 평생 동안 그 여자와 이혼할 수 없다.” 이건 내가 아는 한 강간범에 대한 가장 관대한 처벌이다. 신명기는 마치 딸이 아버지 재산이나 된다는 듯 강간범이 여자의 아버지에게 돈을 주고 그녀를 아내 삼으면 된다고 한다. 21세기 여자가 이걸 읽으면 분노하지 않을까?

세겜이 디나를 강간한 후에 한 행동을 보면 혹시 그들이 신명기를 알지 않았나 싶다. 하몰과 세겜은 신명기 규정을 뛰어넘어 아무리 많은 지참금을 요구해도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두 텍스트가 사용한 붙잡다’ ‘눕다’ ‘욕보이다등의 동사도 같다. 그들은 야곱 집안과 사돈이 되면 자기들 땅에 살면서 장사도 하고 소유도 늘리라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신명기 규정보다 더 많은 걸 약속한 셈인데 왜 야곱의 아들들은 그걸 거부했을까? 그들은 세겜 남자들을 다 죽이는 복수를 할 만큼 디나를 사랑했나? 그들 속마음을 읽을 길 없으니 그걸 알 도리는 없다. 텍스트는 강간에 대해 말한 다음 지나가는 말처럼 그 행위의 성격을 이스라엘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 곧 해서는 안 될 일로 규정한다. 짧지만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다.

문제는 이 강간을 어떻게 성격 규정하는가에 있다. 디나 오라비들은 누이가 당한 일을 단순히 몸을 더럽힌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에게 이 일은 개인적 수치에 그치지 않고 민족적 수치, 또는 종교적 수치였다. 여기선 강간을 타메라는 말로 표현하는데(5, 13, 17) 이 말엔 그냥 더럽다는 뜻 이외에 종교적 의미도 들어있다. 단순히 몸만 더럽힌 게 아니란 거다. 우리말 성서가 부끄러운 일로 번역한 7절의 느발라역시 여기선 성적(性的)으로 부끄러운 일 또는 종교적 더럽혀짐과 거기서 비롯된 수치를 가리킨다.

만일 디나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강간당했다면 이런 말로 표현하진 않았을 거다. 세겜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이방인이었다는 게 문제였던 거다. 디나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강간당했다면 은 오십 세겔을 주고 아내 삼으면 됐다. 그런데 세겜은 이방인이라서 그의 범죄에 종교적 의미가 덧붙여졌고 오라비들이 분노했던 거다. 많은 고대 해석자들이 그렇게 해석했다. <유딧 Judith>내 조상 시므온의 야훼 하느님, 야훼께서는 시므온에게 칼을 쥐어 주셔서 이방인을 처벌하게 하셨다.”(9:2)고 적었고, <희년서 Jubilee>너 모세는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명하여 그들의 딸을 이방인들에게 주지 말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지 못하도록 금하라. 그래서 나는 세겜 사람들이 디나에게 행한 모든 것을 너를 위해 율법 속에 기록하였다.”(30:11-14)라고 전한다. 그렇다면 왜 창세기 38장에서 이스라엘 남자 유다가 이방인 여자 수아와 결혼한 데 대해선 부정적인 말 한 마디 안 하는데, 이방인 남자 세겜이 이스라엘 여자 디나와 결혼하려니까 오라비들이 왜 이렇게 길길이 날뛰는 걸까? 이것 말고도 이스라엘에 이방여인과 결혼하거나 그녀를 첩으로 맞아들인 경우가 많았는데 왜 이 경우에만 유독 대량살육을 벌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신명기 73-4절에는 이방인과 통혼이 엄격이 금지되어 있지만(“그들[이방인들]과 혼인관계를 맺어서도 안 됩니다. 당신들 딸을 그들의 아들과 결혼시키지 말고 당신들 아들을 그들의 딸과 결혼시키지도 마십시오. 그렇게 했다가는 그들의 꾐에 빠져서 당신들의 아들이 야훼를 떠나 그들의 신들을 섬기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야훼께서 진노하셔서 곧바로 당신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실제로 이방인과의 통혼은 드물지 않게 이뤄졌다. 그런데 왜 세겜과 디나 경우만 이리 심각한가 말이다. 수십 년 전 미국에서 흑인들이 심하게 차별받았을 때도 백인과 흑인은 통혼했다. 그 중 백인남자와 흑인여자의 결혼은 상대적으로 용납됐던 데 반해서 흑인남자와 백인여자의 결혼은 용납되지 않았다는데 그게 이것과 비슷했을까?

 

그 다음으로 문제 되는 대목은 디나의 오라비들이 세겜 사람들을 속였다는 점이다. 목적이 아무리 옳아도 그걸 이루는 방법이 정당하지 않으면 비난을 면키 어렵다. 하물며 세겜 남자들 살육이라는 목적의 정당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 경우는 더 말할 게 없다. 디나 오라비들은 누이를 하몰 집안에 시집보낼 것처럼 거짓말했다. 은 오십 세겔 받고 디나를 시집보내지 않은 건 그가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자. 그러나 그게 그들을 속여서 살육할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안 그런가? 게다가 그들은 할례를 속임수의 방편으로 썼다. 할례가 뭔가? 야훼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언약의 표가 아닌가. 그걸 이방인 살육의 방편으로 삼았으니 과연 그들은 이걸 정당하다고 여겼을까?

많은 학자들이 할례라는 종교의식이 이스라엘에 자리 잡은 때는 훨씬 후대로 본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로 보는 의견이 강세다. 하지만 그것은 학자들이 재구성한이스라엘 역사 얘기일 뿐, 구약성서에선 얘기가 다르다. 할례제도는 창세기 17장에서 제정됐으니 대량학살이 벌어졌을 땐 이미 종교의식으로서 행해지고 있었다. 성서를 읽을 때 얘기가 전개되는 순서로 읽지, 학자들이 재구성한 역사를 따라서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러니 성서 독자들이 이 얘기를 읽을 땐 이 자들은 무슨 맘을 먹고 하느님이 직접 제정한 할례 제도를 이 따위 일에 악용했을까.’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나.

고대 해석자들은 이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느님이 세겜 남자들 도륙을 명령했다고 해석했다. 그러니까 이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서 그렇게 행했다는 거다. 앞에서 인용한 <레위의 유언>나는 세겜에 대한 하느님의 판결이 유죄였음을 봤다. 그래서 나(레위)는 아버지(야곱)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훼여, 노하지 마옵소서. 야훼께서 아버지를 통해서 가나안 사람들을 멸망시키실 것이고 그들의 땅을 당신과 당신 후손들에게 주실 것입니다.”(6:8-7:1)라고 전한다. 세겜 사람들은 하느님에게 유죄 판결을 받았고 자기들은 단순히 그걸 집행했을 뿐이란 거다. <희년서>도 비슷한 취지에서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이스라엘에게 수치스러운 일을 범했기 때문에 그들을 칼로 멸절시키라는 판결이 하늘로부터 그들에게 내려졌다.”(30:5)고 적고 있다. 참으로 쉬운 논리 아닌가. 이치를 따질 것도 없고 논리를 논할 것도 없다. 그냥 하느님 명령이라고만 하면 모든 게 용서되니 말이다.

고대 해석자들이라고 무턱대고 하느님의 명령을 여기 끌어댈 수는 없었을 거다. 그들이 그렇게 막 나가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세겜 남자들 도륙이 하느님 명령임을 강변하기 위해선 미미하더라도 텍스트 상의 근거가 있어야 했다. 그들은 레위와 시므온 겨우 두 명이 그 많은 세겜 남자들을 도륙했다는 데서 그 근거를 찾아냈다. 얼마나 다행인가! 세겜 남자들 숫자가 얼만지 몰라도 겨우 두 명이 능히 도륙할 만한 숫자는 아니었을 거다. 아무리 할례 받아 움직이기 불편했다 해도 말이다. 하느님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시므온과 레위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말이다. 그래서 <유딧>오 나의 조상 시므온의 주 하느님, 당신은 그의 손에 칼을 쥐어주어 처녀 디나를 겁탈한 이방인들에게 복수하게 하셨습니다.”(9:2)라고 적었고 <요셉과 아세넷 Joseph and Aseneth>시므온과 레위는 칼집에서 칼을 빼고 이렇게 말했다. ‘보라, 이 칼들을 본 적이 있는가? 이 칼로 주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모욕한 세겜 사람들을 심판했는데 이는 하물의 아들 세겜이 우리의 누이 디나를 더럽혔기 때문이다.”(23:14)라고 적는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도륙을 허락/명령했을 뿐 아니라 손수 칼까지 그들 손에 쥐어줬던 거다. 그들이 수많은 세겜 남자들을 순식간에 도륙할 수 있었던 건 하느님이 준 칼을 썼기 때문이란다. 여러분 생각엔 이 말이 그럴듯한가? 난 아닌데.

대체 왜 세겜 남자들이 모두 죽어야 했을까? 세겜은 강간범이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나머지 세겜 남자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한 시민이 잘못했다고 도시의 모든 사람을 죽였다면 그건 집단학살(genocide)이다. 구약성서에 집단학살 얘기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동조자도 아닌 사람들을 다 죽이는 건 누가 봐도 지나치지 않나.

고대 해석자들에게도 이건 곤란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들이 누군가, 없는 이유도 만들어내는 사람들 아니던가. 그들은 세겜 남자들이 모두 벌 받은 걸 보면 그들이 세겜이 저지른 범죄에 동조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는 욥의 친구들의 그것과 기본적으로 같은 논리다. 욥이 고통 겪는 걸 보면 필경 그럴만한 죄를 저질렀을 거란 논리 말이다. 그들이 근거 없이 그런 추측을 했겠는가. 우리말 새번역 창세기 3427절을 보면 야곱의 다른 아들들은 죽은 시체에 달려들어서 털고 그들의 누이가 욕을 본 그 성읍을 약탈하였다.”라고 해서 강간 행위의 주어가 분명치 않은데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야곱의 아들들은 살해된 자들에게 가서 그 도시를 노략했는데 이는 그들이 자기들 누이를 더럽혔기 때문이다.”가 된다. 디나를 더럽힌 자들이 복수인 그들이었다는 거다.

여기서 그들이 누굴까? 세겜 남자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유딧><희년서>그들이 세겜 남자들이고 따라서 그들도 하느님의 징벌을 받아야 했다고 전했다. 특히 <희년서>는 대놓고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세겜 사람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혔기 때문에 그들에게 분노했다.”(30:3)고 적는다. 그래도 이 정도는 봐줄 만하다. 아람어 성서 <타르굼 네오피티>는 세겜 남자들을 우상숭배자로 규정했고 <레위의 유언>은 밑도 끝도 없이 세겜 사람들이 나그네를 환대하지 않아서 벌을 받았다고 적는다. 이에 따르면 세겜 사람들은 파라오와 아비멜렉이 사라와 리브가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짓을 디나에게 하려 했지만 하느님이 막았단다.

뭘 근거로 이런 얘기를 늘어놓은 걸까? 하몰과 세겜이 성읍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한 그렇게 하면(할례를 받고 야곱 집안과 같이 살게 되면) 그들의 양 떼와 재산과 집짐승이 모두 우리의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23)가 그 근거였다고 추측된다. 고대 해석자들은 텍스트가 모호하게 남겨둔 빈 공간을 세겜 남자들을 나쁜 놈으로 만드는 걸로 메운 셈이다. 과연 이게 옳은 해석일까?

(2번째 글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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