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체면 구기지 않게 해주셨군요
선교사 체면 구기지 않게 해주셨군요
  • 유혜연
  • 승인 2018.03.14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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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연의 선교일기 - 비 내리는 밤의 질주
필리핀 마닐라 거리 풍경 ⓒ김동문

단기 팀을 인솔하고 거주하던 도시에서 기차로 14시간 떨어진 소도시로 이동하게 되었다. 백인 흑인 동양계가 골고루 섞인 15명 팀이었다. 9시경 출발하여 그다음 날 오전에 도착하는 침대칸 기차표를 어렵게 예매했다. 지금은 이런 모든 것들이 인터넷 구매가 가능하나 10년 전만 해도 일일이 발로 뛰어다니며 사야 할 때였다.

저녁을 먹고 소형 버스에 짐을 싣고 출발~~’을 외치며 차가 움직였다. 대부분 팀원은 단기가 처음이었기에 기대와 흥분으로 열심히 수다들을 떨고 있지만, 이런 팀을 인솔해야 하는 나는 내심 초조한 마음이 있었다. 보통 때는 남편이 인솔하는데, 다른 사역으로 나의 몫이 되었다. 어떤 팀이 와도 이 초라하고 불안한 마음은 항상 나와 동행한다. 안전이 제일 우선인 이 현지에서, 천방지축 훈련이 잘 안 된 팀이 올 때는 더욱 그렇다.

그날도 그런 맘을 갖고 기차역으로 향하는데 자매 하나가 옆으로 가까이 와서 이런저런 어려운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버스 안에서 그 자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그때,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아니 ~~ 아니 ~~ 가야 하는 기차역 방향이 아니었다. 이 도시에는 그 당시 3개의 큰 기차역이 있었는데, 버스 기사와 우리 간사와 오해가 있었는지 엉뚱한 기차역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했나, 비가 부슬부슬 오며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아버지! 큰일 났습니다.

바로 버스 기사에게 방향을 바꾸라 하고, 시계를 보았다. 아직 한 30분이 남았다. 차가 잘 빠져 준다면 정시에 기차역에 도착 할 수 있는 시간인데.. 그 와중에 빗방울이 굵어진다. 내 마음은 타들어 가는데, 차 밖은 물로 뒤덮였다.

아버지! 이 선교사 체면 좀 살려주세요. 이 기차 놓치면 가야 하는 도시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역은 어찌합니까? 다음 기차표 사는 게 만만치 않은 것 아니잖아요, 단기 팀도 뭔가 뒤숭숭한 기운을 알아차렸는지 버스 안이 조용해졌다. 간단히 설명하고 기도하자고 했다. 젊은이들의 순전한 기도였다. 그래도 차가 잘 빠져서 기차역에 거의 도착했는데, 거의 눈앞에 보이는데, 완전 차가 오도 가도 못하고 정체가 되었다. 사방에서 빵빵거리고,

비는 주룩주룩 쏟아지고, 시간은 흐리고, 결단해야 했다. 팀에게 소리쳤다모두 짐을 단단히 들어라, 이제부터 뛴다.”

15명의 외국인이 후다닥 차에서 내려 빗속에 짐을 이고 지고 기차역을 향해 전력 질주하였다. 육교를 넘고 엄청난 인파를 뚫고 모두 숨이 턱에 닿게 뛰었다. 한 무리의 외국들이 비를 쫄쫄 맞고 역으로 뛰어 들어오니, 역무원들도 적잖이 놀란 눈치다. 짐 검사도 대충 하고 우리를 탑승구로 안내해주었다. 또 뛰었다, 층계를 내려서 아직 서 있는 기차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고 또 뛰어 기차 마지막 칸에 모두 안전하게 올라탔다.

기차가 출발!

숨을 고르고 각자의 침대를 찾아서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양 서로를 쳐다보며 모두 한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로의 꼴이 정말 말이 아니어서였다. 비와 땀이 뒤 섞여 상의는 모두 젖었고, 뛰면서 여기저기서 튄 흙탕물로 바지랑 다리들은 꼬질꼬질 봐줄 수가 없었다. 아무렴 어쩌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

아버지! 감사해요. 그래도 이 선교사 체면 구기지 않게 해주셔서요. 이 예쁜 젊은이들 가슴속에 이런 모든 일들이 선교는 신난다, 멋지다, 재미도 있다.’, 라고 기억되게 해주세요. 그 후로 팀이 올 때 마다, 버스 기사 옆자리는 내 자리. 도착지까지 잡담 금지다.

 

글쓴이 유혜연 선교사는, 현재 LA에 거주하며 Salt & Light Community Church를 남편과 함께 섬기고 있다. 가정 세미나, 상담 사역을 하며, 비거주 선교지 사역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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