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언급하신 ‘이 산’은 헤로디움?
예수가 언급하신 ‘이 산’은 헤로디움?
  • 민현필
  • 승인 2018.03.11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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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헤로디움을 하늘에서 본 모습. 헤롯 왕이 쌓아 만든 요새이자 왕궁이다.ⓒ이강근
헤로디움을 하늘에서 본 모습. 헤롯 왕이 쌓아 만든 요새이자 왕궁이다.ⓒ이강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고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마 21:19)

성경에 보면 여러 난해 구절들(Hard sayings)이 등장합니다. 어쩌면 이 본문도 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태는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 다음 날 이른 아침,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 안으로 다시 들어가시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그때 주님은 몹시 시장하셨습니다. 마침 길가에 서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셨습니다. 하지만 무성한 잎사귀 외에는 열매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주님은 뜻밖에도 그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하셨고, 무화과나무는 곧 말라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주님께 물었습니다.'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그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 21:21~22)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도 당황스럽지만, 그것이 기도에 관한 교훈으로 연결되다는 것도 어쩐지 어색해 보입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주님의 성품과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왠지 엇박자를 내고 있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투루 이 말씀을 계시해 주시지는 않으셨을 것이고, 우리에게 뭔가 말씀하시기 원하시는 뜻이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이 특별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열쇠가 21절에서 말씀하신 ‘이 산’(this mountain)이 과연 어떤 산인지를 먼저 파악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 산이 구체적으로 어떤 산인지 특정하긴 어렵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마가복음 주석으로도 유명한 R. T. France는 특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지만, Craig L. Blomberg(NAC 주석)의 경우는 '성전 산'으로, John Nolland(NIGTC 주석), 톰 라이트의 경우는 성전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견해를 따라 '성전 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렇게 보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당시 예루살렘 성전이 대비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 맥락 속에서 보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주님의 행동은 이제 곧 성전이 겪게 될 일, 즉 반역한 그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전조라는 것입니다(*  Tom Wright, Matthew for Everyone, Part 2: Chapters 16-28 (London: 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 2004), 7273.)Leon Morris(PNTC 주석)는 스가랴서 14장의 예언을 따라 는 감람 산으로 보고 있음.).

하지만, 이러한 라이트의 해석은 자신의 성전에 대한 이해를 관철시키는 데는 성공한 듯 보이지만, 정작 21~22절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기도에 관한 메시지를 퇴색시키는 단점이 있습니다. 라이트의 해석처럼 이 구절이 일반적인 기도에 관한 약속으로 볼 수 없다면 왜 구지 주님은 이런 말씀을 덧붙이셔야만 했을까 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또 하나의 가능한 해석은 이 산을 대 헤롯이 건축했던 헤로디움이 서 있던 산으로 보는 견해입니다(아래 이미지). 그 산 밑자락에는 그의 요새가 있었고, 이 산 꼭대기까지 이르는 계단은 대리석으로 장식됐고, 정상에 있는 헤로디움에는 로마식 목욕탕과 전망 좋은 테라스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헤로디움은 대 헤롯이 임시 도피처로 활용하기 위해 건축했는데, 원래 평지였던 곳에 해발 758나 되는 높은 언덕 위의 요새를 건축하기 위해 옆에 있던 다른 산을 깎아서 건축한 것이었다고 합니다('당시 대 헤롯의 위세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수도'). 진시황릉 저리가라인데('실제로 진시황릉은 높이 70여 미터였으니 헤로디움이 10배나 더 큰 산이었음), 실제로 그는 죽어서 이곳에 묻혔다고 합니다.

John Beck이라는 학자는 Lexham Geographic Commentary(* Lexham Geographic Commentary: The Gospels에서 재인용)에서 주님이 이 21~22절에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은 실제로 산을 움직일 수 있다는 다소 탈문맥적인 약속을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이 헤로디움이 상징하는바 로마 제국의 위세와 권력이라는 것도 한낱 무화과나무처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저 바다(사해)에 쳐 박힐 수 있는 허무한 것임을 알리시고, 제자들이 드리는 믿음의 기도가 바로 그와 같은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John Beck의 해석은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나 독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기도에 관한 주님의 약속을 좀 더 '현실감'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장점이 있습니다('실제로 산이 들리워진 역사적 사례를 근거로 한 해석이므로'). 하지만 성전 정화 사건과의 해석적인 연결고리가 약해지는 면이 있고, 스가랴 14장과 관련하여 감람산으로 보는 해석들에 비해 성경 본문의 지지가 다소 약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저는 John Beck의 해석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심판과 기도에 관한 두 메시지를 동시에 적절히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해석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산'을 감람산이나 성전 산으로 보든 인위적으로 조성된 헤로디움으로 보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주님의 행동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기도에 관한 약속 또한 단순한 개인적인 소원 성취의 맥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큰 틀에서 이해해야만 하는 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가 드리는 개인적인 기도의 소원을 듣기 원하시고, 그것을 기뻐하신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마태복음 21장을 잘 이해한 성도들이라면 우리의 기도는 더 이상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무를 수 없을 것입니다. 시대의 아픔을 품고,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온전하신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글쓴이 민현필 목사는, 경기도 군포시에 자리한 산울교회 부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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