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길은 여기에 있습니다
[김영준] 길은 여기에 있습니다
  • 김영준
  • 승인 2018.03.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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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의 설교 노트 _ 행 21:17~22:11
Caravaggio, Conversion of Saint Paul, 1601
Caravaggio, Conversion of Saint Paul, 1601

어둠 속에서는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빛이 없고는 한 걸음도 디딜 수 없습니다. 빛을 경험하지 않고, 달려온 길은 길이 아닙니다바울은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열심히 특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빛을 보진 못했습니다. 빛을 향하지 않은 열정으로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는데 찬성했고, 기독교 이단들을 체포하고 죽이는 길을 걸었습니다. 바울에겐 일이 없는 게 아니라, 빛이 없었습니다.

일은 필요합니다.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에덴의 동쪽에서 일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노동을 하는 건 저주였지만, 노동은 생명이기도 했습니다. 일을 해야 삽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습니다빛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죽습니다. 빛이 없는 열정은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일도 해야 하고, 빛도 봐야 합니다.

일을 하되 빛을 보고 가야합니다.

바울이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러 길 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바울을 체포하십니다. 바울이 일하러 가는 길 위에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바울에게 첫 날이 열렸습니다. 기독교 이단을 체포하기 위해 길을 나선 바울을 사로잡기 위해 하나님은 빛을 바울에게 내리심으로 눈을 멀게 하셨습니다. 사실, 눈이 먼 게 아니라 새로 보기 위해 꺼풀을 씌우셨습니다. 이전에 바울이 보던 것은 본 게 아니었고, 바울이 보고 확실하다 여겼던 것들은 진리가 아님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본 줄 알았던 진리가 사람을 죽이는 것일 수 있습니다. 확신했던 신앙이 편협한 관습일 수 있습니다. 편협한 열정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열심히 하며 살 수 있습니다. 눈 뜨고 일하고 있거든, 빛에 내 눈이 멀어야 합니다. 눈이 멀어 하던 일을 멈춰야 할 때, 해왔던 일이 무의미한 것이었음을 깨달을 때, 그 날이 창조의 첫 날입니다. 다른 사람을 잡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잡혀 하는 일이 나를 살립니다.

바울은 어떻게 빛을 보았고, 어떻게 하나님에게 잡혔는지 법정에서 설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히브리말로 설교합니다. 로마에서는 그리스어로 변증할 것입니다.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방언으로 말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는 히브리말로,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말로 소통합니다. 방언은 타문화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방언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아니라, 이해하기 쉬운 말입니다. 방언은 신비한 언어라기보다, 실용 언어입니다.

소통하기 위해 말을 합니다. 말을 통하지 않고 소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을 주신 것은 소통을 위함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방언을 주셨고, 방언을 익히는 것은 하나님의 중요한 뜻입니다. 이성과 소통하는 것, 장애인과 소통하는 것, 외국인과 소통하는 것이 방언입니다. 성령을 경험한 사람은 방언을 합니다. 반드시 방언을 합니다. 외국인과 통하거나, 이성과 통하거나, 장애인과 통하거나, 다른 세대와 통합니다.

성령은 경계를 넘도록 추동하십니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경계가 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경계가 있습니다.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에 경계가 있습니다. 경계를 넘어 소통하도록 돕는 것이 방언입니다. 남자가 여자의 언어를 이해하고, 여자가 남자의 언어를 아는 것이 방언의 역사입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이상행동마저 언어로 이해하고, 장애인은 당당하게 비장애인과 대화하는 것이 방언의 역사입니다. 이주민이 주류 사회의 흐름 속에 참여하고, 원주민은 기꺼이 자리를 내주는 것이 방언의 역사입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이해하지 않고, 풍성함으로 누리는 것이 방언의 역사입니다.

Caravaggio, Conversion of Saint Paul, 1601

길은 여기에있습니다. 여기에서 만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겸손하게 내 말을 들려주는 데에 길이 있습니다.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이해하도록 돕는 데에 길이 있습니다.

일을 하되, 길을 가야합니다.

일만 하던 바울은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데에 참여했지만, 길을 가는 바울은 오히려 맞기도 하고 죽음 직전에 이르기도 합니다.(21:31) 눈앞에 일이 있습니다. 길이 아닐 수 있습니다보지 못했던 길이 있습니다. 위험한 일일 수 있습니다보지 못했던 길에서 사람을 만납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이주민을 만나고, 장애인을 만나고, 여자를 만나고,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을 만나고,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도 만납니다. 우리에게 방언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방언을 하며, 이해하기 쉬운 실용적인 말로 사람들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몰랐던 사람들과 만남, 혹 위험하더라도 가야할 길입니다.

길은 여기에 있습니다.

 

글쓴이 김영준 목사는, 소설을 좋아하고 그림도 즐겨 찾는 목사다. 《그림 속 성경이야기》라는 책을 썼고, 한 달에 한 번 ‘문학 속 성경이야기’라는 모임을 진행한다. 주1회 발달장애인자조모임에 조력자로 참여하면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 및 직업훈련센터를 운영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에서 이사 노릇을 한다. 토요일에는 이주민들의 검정고시 준비를 돕는 ‘달팽이학교’를 연다. ‘민들레와달팽이’라는 카페 공간에서 예배드리는 민들레교회 목사다. 김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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