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자신을 세우다
벼랑 끝에 자신을 세우다
  • 배일동
  • 승인 2017.11.10 2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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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배일동의 獨功 제1부 스스로 음을 찾다 중에서
배일동, 독공 홀로 닦아 궁극에 이르다, 세종서적, 2016년
배일동, 독공 홀로 닦아 궁극에 이르다, 세종서적, 2016년

독공(獨功)이란, 소리꾼이 선생으로부터 배운 소리를 더욱 정밀하고 자세하게 닦고, 더 나아가 자기만의 독특한 덧음(* 특정 소리꾼이 다른 소리꾼보다 월등히 잘 부르는 대목)을 만들기 위해 깊은 산속에서 홀로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예전 명창들에게 독공은 반드시 거쳐야 할 소리공부의 기본과정이었다. 선생도 제자를 굳이 자기 문하에 오래 잡아두지 않았고, 기본만 갖추면 내보내 독공을 통해 본인의 소리를 찾기를 바랐다. 요즘도 독공을 아주 안 하는 건 아니다. 대개 못해도 석 달 열흘은 기본으로 독공에 들어간다. 내가 아는 소리꾼들도 독공을 많이 했다. 요즘도 짧게는 1, 길게는 3년에서 5년씩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것은 진정 소리를 좋아하고 성음을 얻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독공은 소리꾼이 겪어야 할 필수 과정이라 해서 그냥 가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뭔가를 얻어내고 캐내기 위해서 발심을 내어 적적한 무인처에 초막을 짓고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다.

소리는 먼저 자신이 감동하는 성음이 나와야 듣는 사람도 만족한다. 그 소리를 얻기 위해 궁벽진 산속에 칩거하며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 예술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이다. 즉 남에게 보이기 전에 내 가슴에 먼저 선을 보이고, 스스로의 영감으로부터 인정받아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야 널리 이롭게 된다. 나 자신의 지성과 인격을 위해 학문을 하듯이, 예술도 그 재주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는 오랜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독선기신(獨善其身)이라고 했다. 홀로 수신(修身)하면서 잘 닦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독공은 독선(獨善 홀로 선을 닦음)이다.

섣부른 어릿광대는 서너 푼의 재주로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 설쳐대지만, 먼 앞날을 생각하며 소리를 공부하는 악공은 함부로 나대지 않고 자신의 예술을 더욱 세련되게 연마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그래서 소리꾼들은 산 공부를 즐긴다. 어쩌다 방학 때 선생을 따라 잠깐 산에 다녀온 것은 유람이고 피서이지 진정한 공부가 아니다. 진정한 공부는 백척간두에 서서 절절하게 홀로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누구에게 의지하거나 기대지 않고 스스로 묻고 찾아서 간절한 마음으로 절차탁마하는 게 진정한 공부라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소리꾼들은 홀로 궁벽진 산속을 찾아 들어간다. 나는 독공을 조계산과 지리산에서 7여 년간 했다. 처음에는 3년을 작정했는데 막상 하고보니, 그 세월로는 턱도 없었다.

그래서 였던가, 공자의 애제자인 안회 같은 선지자도 공부의 끝없음에 이렇게 한탄했다.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아지고, 뚫으려 할수록 더욱 단단해지누나. 앞에 있는 줄 알았는데 문득 보니 뒤에 있구나." - <논어>

ⓒ배일동

ⓒ배일동

참으로 멀고 기약 없는 길이다. 재주 없는 필부에게 3년 기한의 산 공부는 새 발의 피였다. 목을 틔우기는커녕 목 푸는 것도 3년으로는 가당치 않았다. 뭔가를 얻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는 묻고 또 캐물으면서 조금씩 환연해지는 법이다. 스승이신 성우향 명창(*1935-2014,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판소리 여성 명창)은 말햇다. 소리 공부는 마치 옥수수 껍질 벗기, 여러 해에 걸쳐 수없이 다듬어내야 비로소 정련된 자신의 소리가 나온다. 그러기 위해선 스승의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피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가능하다. 처음의 엉성하고 조잡한 재주는 익혀가면서 더욱 세련되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그저 세월을 따라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뼈를 깎는 단련의 결과다. ()은 쇠를 담금질할 때 쇠를 천번 두들기는 것이고, ()은 만 번을 두들기는 것이라 했다.

졸렬한 기교와 예술정서는 수없이 깎고 문지르는 가운데 점점 단단해지고 세련된다. 기교란 것은 뭘 모르는 애송이 땐 매우 멋져보여서, 쓸데없는 것도 보태어가면서 화려하게 꾸미려 한다. 그런 번잡하고 번화한 기교는 수양과 성숙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고 담박해지고 간소해진다. 그래서 성숙한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재주와 정신수양이 병행되어야 한다. 재주만 성하고 덕이 초라해져서도 안 되고 덕은 빛나지만 재주가 변변찮고 세련되지 못하면 그 또한 완전무결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다. 재덕(才德)이 함께 빛나야 비로소 충실미(充實美)가 넘쳐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기예의 실천과 체험을 매우 중시하여, "기예에 능하지 않으면 정통학문도 즐길 수 없다"(不興其藝 不能樂學)고 말했다. 기예를 한낱 즐기는 놀이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통철(通徹)한 위인들은 기예를 익힘으로써 학문도 더욱 정교하고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듯 독공은 바로 재덕을 두텁게 쌓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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