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을 보면서 드는 생각
미투 운동을 보면서 드는 생각
  • 최주훈
  • 승인 2018.03.08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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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문화 예술 정치계 할 것 없이 매일 터져 나오는 미투(#MeToo)소식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지만 동시에 희망을 본다.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안전한 세상이 되겠구나. 젠더의 불평등이 무너지고 부당함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세상, 사람이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는구나. 악의 평범성이 정의의 예민함에 무너져가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구나라는 일종의 확신 같은 것 말이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언론 방향의 위험성이다. 미투 운동을 보면 언제든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너무 부각된다는 점이다. 젠더폭력사건을 다룰 땐 언제나 가해자에 대한 분명한 징계와 동시에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언론이 부각시키는 건 가해자보다 피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가십거리나 유행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엿보인다. 미투운동에 참여하는 피해자가 자기 인생을 걸만큼 엄청난 아픔으로 호소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언론이 신경 썼으면 좋겠다.

그럼 교회는? 난 개인적으로 미투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 내에 잠재적으로든 아니면 목회적 차원에서든 비밀스레 알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가 있다면, 개교회 내부의 공식적 운동은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젠더 폭행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스스로 공개하거나 극복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여전히 공포 상황에 놓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인데, 이런 경우 무척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미숙한 접근을 하다간 오히려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안길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가 교회 공동체나 공적 사회에 알린 경우라면 교회는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남의 이야기 또는 과거의 이야기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내 이야기, 내 가족 이야기, 내 딸의 이야기로 들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 내 딸이 이런 경우라면 아이의 아빠로, 엄마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언제든 피해자의 익명성이나 보호를 위한 교회 공동체의 배려가 최우선 과제이고, 남성본위의 교회구조와 신학은 지양해야하며 이에 대한 내용들이 설교나 예배, 목회 방향에 스며들어야 한다. 어찌되었건, 지금 미투운동은 인권과 젠더에 대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는 점과 교회는 성경의 말씀대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평등하게 존중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다. 서로의 가치와 인간의 가치에 대해, 젠더의식에 대해 좀 더 예민해져야한다.

제발, ‘옛날엔 다 그랬어!’라는 말로 퉁치고 가볍게 넘기지 말자. 그것이야말로 이 땅에 서려 있는 가장 무서운 '악의 평범성'이다. 거기서 화들짝 놀라고 새 시대 새 공간으로 뛰쳐나와야 한다. 당신 딸의 이야기라면 다르게 들릴 것이다.

글쓴이 최주훈 목사는 중앙루터교회 담임 목사이다. 최근에 '루터의 재발견'(복있는사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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