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진보가 아니다
그것은 진보가 아니다
  • 박영호
  • 승인 2018.03.07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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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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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박영호 교수의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것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옮겨 실었습니다. - 편집자 주


"네 의견을 달지말라 네 생각을 달지 말라, 날 비추는 거울이다, 그림자처럼 살아라." 조선시대 사극의 대사 같다. 지체 높은 대감이 몸종에게, 혹은 임금이 궁녀에게.... 말의 내용 뿐 아니라 자신은 듣는 이와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인 것처럼 내던지는 톤도 아주 불편하다.

지난 대선 경선 때 자주 들었던 말들, 어찌 보면 철학적인 것 같기도 하고, 종종 시적으로 들리기까지 하던 그의 말들, 단어와 단어들이 잘 조합이 안 되고 어긋나면서도, "저 사람 뭔가 있는가 보다" 착각하게 만든 그의 스타일이 다시 떠오른다

안희정의 성폭력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그의 태도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그 증거가 그가 늘 입에 달고 살았다는 위의 사극 대사이다.

미투운동이 진보를 공격하는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염려를 표하는 이들이 있다. 진보가 무엇인가? 인류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인간다운 삶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딛자는 것 아닌가? 남성이 휘드르는 권력 아래서 오랫동안 신음하며 침묵을 강요 받다 겨우 몇 마디 내어 놓는 이들의 입을 막는 진보가 어디 있는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찍었으면 진보인가? 태극기 집회를 혐오하고 MB 구속하라 외치면 진보인가? 노조 활동 열심히 하면 다 진보인가? 팟 캐스트 하면서 기득권자들 욕하면 진보인가?

진보는 상대적 개념이다. 사회가 지금 처한 위치에서 규정되는 개념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자 하면 진보이고, 그냥 뭉개자 혹은 뒤로 가자 하면 보수이다.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말이 상당히 진보적인 주장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불과 100년 밖에 되지 않았다.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보수가 될 수 있다. 진보란 어떤 그룹이 항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진보고, 여기부터는 보수이다라고 미리 구획을 획정해 놓고, 이 쪽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사고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태도이다.

지금 미투 운동이 전개되는 방식에 개운치 않는 면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의견도 필요하다. 열린사회를 위해서는. 그러나 2018년 봄 한국,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꿈틀대는 힘이 집약되는 지점, 이른바 진보의 최전선이 미투운동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에 반대하는 당신은 보수다. 이런 흐름을 누르거나 지체시키고 지켜야 할 진보? 그런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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