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통쾌한 변증과 풍자를 맛보이는 책
성경의 통쾌한 변증과 풍자를 맛보이는 책
  • 김동문
  • 승인 2018.03.07 0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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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D. 커리드,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새물결플러스, 2017년
존 D. 커리드,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새물결플러스, 2017년

'성경(책) 속에 모든 것이 다 담겨있다. 그래서 성경을 잘 읽으면 성경을 알 수 있다'는 말, 성경 독자로서 종종 듣는 이야기이다.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 성경 원어를 알면 성경을 더 잘 알 수 있다.', ’성경 본문을 문맥을 귀납적으로 잘 분석하면 성경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이야기도 익숙하다. 그런데 성경 책은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담아두고 있는 것일까? 성경(책)만 읽으면 성경을 알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20여년 전부터 성경 배경 연구의 필요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한국 교회에서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성경 속 역사, 지리, 문화, 풍습 같은 배경에 대한 연구가 성경을 더 풍성하게 해줄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었다. 고대 근동의 문헌 연구의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고대 근동학 전문가들도 한국 교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대근동 문헌을 다루는 강의도 개설되었다. 그러나 그것 뿐이었다.

한국 교회의 다수는 이런 움직임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 고대 근동 문헌들과 성경 본문의 유사성, 병행 구절을 둘러싸고, 성경이 고대 근동 문헌을 표절했다는 주장도 일곤 했다. 성경이 아닌 고대 근동 문헌을 연구하고 그것을 참고하는 것이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행위인 양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사실 성경 밖 고대 근동 문헌을 바탕으로 성경의 절대성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고대근동문헌을 언급하는 것은 보수적인 성경해석을 하는 이들에게는 금기의 영역과도 같았다.

이집트 룩소 카르낙 신전의 시삭왕의 정복 전쟁 부조
이집트 룩소 카르낙 신전의 시삭왕의 정복 전쟁 부조

공교롭게도 이런 흐름 속에서 떨기나무열린다 성경시리즈 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 흐름을 통해 성경 배경을 알면 성경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는 일종의 깨달음 같은 것이 한국 교회 안팎에 서서히 번져갔다. 그러나 스스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생각의 힘이 커가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성경 배경을 토대로 성경을 풀이했다는 정보를 소비하는 수준에 머문 것 같다. 고대 근동 문헌, 고고학, 중동 지역의 문화인류학 같은 영역에서 나온 결과물에 주목하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여전히 다수의 성경 연구가들에게 고대근동(문헌)연구는 멀게만 느껴졌다. 최근에 들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성경 배경 연구의 필요성을 보다 더 자극하는 중동의 눈으로 본시리즈 등을 마주하고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유적

이 책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을 마주하면서 내 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엉켰다. 이집트에 첫발을 내디딘 90년 말 이후 마주하게 된 것은 나의 성경읽기의 태도였다. 성경(책)만 읽어서는 성경을 바로 아는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고대 이집트는 물론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역사 흔적, 가나안 지역에서 출토된 기록물과 유산들 덕분에 글자로만 보이던 성경이 살에 붙는 것,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것을 힘겹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이미 익숙한 장소, 이름, 고대 근동 기록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 주장하던 내용들을 만났다. 나 만의 고민이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필자가 투박하게 표현하던 것을 저자는 세련된 전문 용어로 정돈해주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논쟁 신학이다.

성경 저자들이 고대 근동 문화에서 흔했던 사상 형태와 이야기들을 사용하면서, 그것들을 급진적인 새로운 의미로 채운 것을 말한다. 성경 저자들은 고대 근동에서 잘 알려져 있던 표현과 모티브를 가져다가 고대 세계의 다른 신들이 아니라 야웨의 인격과 행위에 적용한다.” - p.38

저자는 논쟁적 표현 및 논쟁적 모티브 두 가지 범주로 분류하면서 강한 손,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구름을 타는 자, 뱀의 대결, 기근, 천둥이 치게 하는 신 같은 예를 제시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왕관은 물론 신들의 왕관에도 뱀/코브라가 세겨져 있다.

파라오의 왕관 정면에는 우라에우스라고 불리는 분노한 여자 뱀/코브라가 있었다. 이집트인은 이 뱀의 힘이 신의 권능과 주권에서 온다고 믿었다.  p.43.

모세와 이집트의 술객들 사이에서 벌어진 지팡이 대결은 이런 맥락에서 이른바 권위 논쟁인 것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을 공부하면서 자주 접하던 주장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논쟁 신학을 이렇게 정돈한다. 팔자도 창세기는 물론 구약의 다른 본문들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던 것이었다.

논쟁 신학은 다른 고대 근동의 지배적인 배경에 비추어서 히브리 세계관의 독특성과 유일성을 강조하는데 도움을 준다” - p.49

저자는 구체적인 성경 본문 연구의 예를 들면서 고대 근동 연구가 성경 해석에 어떤 의미를 안겨주는 지를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창세기 1, 창세기 6-9, 요셉 이야기, 모세의 탄생, 모세의 도주, 야웨의 이름, 홍해 도하 묘사 등을 고대 근동의 문헌과 문화적 맥락에서 풀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이들에게 낯설 수도 있는 고대 근동의 문헌이 소개되고, 활용된다. 그러나 사전 이해가 많지 않아도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 이럴 수도 있겠다싶은 깨달음이 다가올 것 같다.

사실 성경 본문은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풀이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독자들이 갖고 있을 본문이 설정하고 있는 본문 속 시대적 배경 이해를 바탕으로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집트의 모든 재앙을 수행하기 위해 지팡이를 사용한 것은 심판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물리적인 예”(188)로 소개한다,

(모세와 아론) 두 히브리인들은 지팡이를 손에 쥐고 이집트의 신들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 사이에 있는 신들의 경쟁을 선포하고 있었다. - p.189

'강한 손'은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적 권위와 능력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언어학적 병행을 사용함으로써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이야기 안의 사건들과 사물들을 이집트인의 관습에 대한 비판으로 구성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 얼마나 멋지고 정교하며 심오한 논쟁의 방식인가! - p.191

성경 문헌과 우가리트 문헌 사이에는 수많은 병행이 존재한다. 이를 두고 많은 학자들은 성경 문헌이 가나안 문헌을 자유롭게 발려왔다고, 차용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저자는 시편 29편을 가나안 신화와 연결시켜 정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바알신화가 적힌 비문
바알 신화(바알 서사시)가 적힌 비문

가나안 문헌에서도 비와 천둥으로 의인화된 바알의 능력을 언급하는 데 유사한 표현들이 사용되며, 폭풍은 바알 신현의 한 가지 표지다. 사실 이 시편 전체는 땅 위에 임하는 야웨의 임재를 묘사하기 위해 푹풍의 이미지를 사용한 비유로 정의될 수 있다. ... 성경 저자의 급진적인 유일신 사상은 가나안의 거짓 신들을 조롱하는 이 논쟁을 통해 밝게 빛난다. - pp.218~219.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누리게 될 몇 가지 기대감이 있다. 먼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성경이 갖는 변증의 태도를 배울 수 있을 것에 대한 기대감이다. 변증은 나의 언어와 논리로 내 공간에서 벌어질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자리에서 그의 언어와 논리로, 그 논리를 넘어서도록 상대를 도전하는 것이다. 성경은 본문이 담고 있는 그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그 시대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성경읽기와 변증, 선포는 우리의 말로 우리 공간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성경 독자는 성경이 그 시대의 주류 문화와 세력, 세계관을 반영하거나 마음껏 조롱하고 풍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일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가나안 문명 모두가 그 대상이 되고 있다. 파라오도 고대의 신들도 바알도 모두 야웨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야웨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 저자들이 고대 근동의 우주관 및 우주 작동설과 대비되는 히브리 세계관의 독특성을 강조해주는 도구로 논쟁 신학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상당히 많은 학자가 구약의 독창성과 독특성을 감소시키려고 하는 오늘 이 시대에,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 p.225.

이 책을 통해 '논쟁 신학'이라는 용어와 개념을 새로 익힐 수 있었다. 동일한 고민을 지난 30여년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같은 책이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필자도 중동의 눈으로 창세기 다시 읽기를 통해 존 D. 커리드가 이 책에서 제시했던 것과 이 같은 고민을 독자들과 나누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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