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닿아있는 신학하기가 필요하다
현실에 닿아있는 신학하기가 필요하다
  • 임주형
  • 승인 2018.03.05 0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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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자칫 영국 성공회에 대한 비판으로 여겨질 여지가 있다. 그러나 글쓴이나 이 글에 등장하는 글쓴이의 후배에게는 그런 의도는 전혀 없다. 단지 뭔가 유럽 교회가 쇠퇴한 느낌이 있고 지금 우리나라 교회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아마 이러이러한 게 원인이 아니었을까? 유추한 것을 올린 것이다. - 글쓴이 주

이곳, 독일에 와 지내면서 종종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독일 뿐 아니라 인근 유럽 여러 나라에 흩어져 공부하는 지인들과 종종 소통을 하면서 그들이 경험하는 다른 유럽 나라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가깝다 보니 더욱 관심이 생기는 것들도 한 가지 이유이다. 얼마 전 영국에서 정치철학을 공부하는 대학교 후배와 긴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반기독교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가 어쩌다 대학 와서 예수를 믿고 함께 공동체에서 교제를 나누며, 원서로 로이드 존스의 설교집 뿐만 아니라, 톰 라이트의 벽돌만한 주저서 시리즈를 독파하기까지 열심이 있는 후배인데, 그동안 자신이 영국서 지내면서 느낀 영국 교회의 분위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지금 이 후배는 영국 성공회 교회를 다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후배가 경험한 영국 교회의 모습은 시대의 도전에 대응하지 못해 이미 쇠락할 대로 쇠락한 모습이다. 교회는 거의 경로당에 가까운 모습으로 노년층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종종 보게 되는 젊은이들은 외국인들이거나 태어난 자녀에게 유아세례를 주기 위해 잠시 찾아온 이들이고 설교는 세련되었지만 종교적인 신비는 배제된 도덕설교에 불과할 뿐이라고 한다.

대학 수업 때 교수들이 기독교 사상에 대해 적대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상다반사이고, 젊은층의 경우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는 것 자체에 일종의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다고까지 하며,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밝힐 경우, 어떻게 이런 이성주의의 시대에 그런 고리타분한 것을 믿을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인다고 하더라. 마치 대부분의 우리나라 청년들이 유교를 대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심지어 얼마 전에 종교관련 공식집계의 결과는 매우 처참한 수준이었다고.

그 후배가 그런 말을 했다. 어쩌면 이런 영국 기독교의 쇠락은 기독교가 국교로 존재하면서 오랜 역사 속에서 시민들이 느낀 수많은 폐해 때문인 듯하다고. 요새 한국 기독교의 움직임을 볼때도 불과 100-150년 사이에 이토록 폐해와 부정적인 인식을 사람들의 생각 속에 가져왔는데 유럽의 경우 그 오랜 역사 동안 기독교가 사회를 통제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존재하면서 또한 생겨난 부작용들로 말미암아 권위에 대한 반발들이 생긴 게 아니겠느냐고. 사실 그 말이 맞다. 한국에 있을 때 많은 목사님들이나 교수님들이 유럽 교회의 쇠락은 자유주의 신학의 결과라고 말했지만, 그건 상황을 지나치게 단면만 본 거다. 수많은 역사적, 사회적 상황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교회의 모습과 폐해들, 그로 말미암은 교회 권위에의 반발 등이 정통주의적 신학에 대한 반발에 하나의 촉매 역할을 했을지 모르지만 진짜 교회 쇠락의 본질은 그것이 아닌 것 같다.

그 후배는 그런 아쉬움을 토로했다. 과연 앞으로 한국교회 내에서 자신과 같은 회심자가 나올 수 있을까? 이제 한국교회의 쇠락도 불 보듯 뻔한 게 아닐까? 실제 독일에서 만나는 믿지 않는 한인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이들에게는 기독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저 좋은 이야기들을 해주는 것은 맞는데 정치적 보수를 참칭하며 불과 며칠 전과 같이 애국집회의 명목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집단들이다

사실 국내에서 교회사나 조직신학 공부를 하면서 맞닥뜨리는 한계는 어쩌면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한다. 유럽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회 역사를 배우면서 현재 유럽의 현실을 모르고, 어떤 역사적인 자취가 현대 유럽의 모습에 족적을 남겼으며 그에 따라 무엇을 반성해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지 까지 진지하게 성찰하지 못한 채, 그저 교회의 쇠락을 신학의 좌경화 탓으로 돌리고, 그저 근대 유럽의 한 시대를 이상화시켜 그 안에서 나타난 한 신학 분파를 절대화시키고 그것을 그저 답습한다는 느낌이다. 전혀 다른 시대와 사회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분석하고 교회사의 교훈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제대로 된 진단조차 내리지 못한 채로.

이 후배는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형님께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고. 형이 공부하는모습을 오랫동안 옆에서 봐오면서 존경심을 가졌는데 더욱이 박근혜 정권 때에 형이 그렇게 세월호 사건이나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실제 몸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존경하게 되었다고. 자기의 전공이 정치학인데도 불구하고 실제 움직이지 않는 정치학도가 그렇게 많은데 형님은 그렇게 그 사안들에 대해 실제로 교회 밖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지 않았느냐고. 아마 확신하건대 형님 주변에 있었던 수많은 지인들이 형의 그러한 모습을 결코 곱게만 보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그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은혜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당시에 계속해서 성경연구를 해가며, 이러한 고민들을 앞서 했을 서구 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페이스북에서 비슷한 사안들에 대해 고민하는 집단 지성들의 도움을 통해, 나도 그 안에서 배움의 시간을 얻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 다행히 그 결과가 옳은 것으로 증명된 것 같다고. 정말 그 시간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현실과 접합된 신학함을 알지 못했을 것 같다.

지난 독일어 수업 때 자유주제 발표에 있어 일신교의 발생과 그 일신교가 고대 세계에 가져온 의의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신화들과 창세기의 노아 홍수 이야기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고대 세계에의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에 대해 발표하며, 고대 일신교가 가져온 사회 변혁적인 사상, 혁명적인 인권 사상을 위주로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학원 선생님이 다소 불편한 표정으로 발표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수업이 다 끝난 후 개인적으로 나에게 와서 왜 당신은 종교인이예요?”라는 의구심 섞인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그래서 20살 때 이래로 성경에 매료된 데에다 여러가지 초자연적인 경험들을 통과하며 지금 나는 목사가 되었다고 설명하긴 했지만사실 시리아나 아시아 계열의 비기독교인들도 있는 자리에서 종교 관련 발표를 하기에 이 정도가 적합한 주제라고 생각했기에 택한 내용이었다.)

어쩌면 내가 발표한 내용이 독일에서도 대중적인 기독교 사상으로서 알려져 있는 주제는 아니기 때문이었을까?(기존에 내가 당연히 독일인들이라면 다들 이 정도 이야기는 알고 있겠지 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어쩌면 유럽의 신학수준이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일반 기독교인 대중들에게는 비교적 안정적인 사회적 분위기로 말미암아 그다지 고민해볼 필요가 없었던 주제였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톰 라이트가 부활에 대한 주제들로 글을 발표하면서 던졌던 문제의식 영국의 많은 기독교인들도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생각한다는 가 단지 영국이나 한국만이 아니라, 아직도 유럽 교회들의 보편적인 믿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시 내 발표도 선생님이 듣기에 지나치게 역사비평적인 내용의 발표로 들렸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면 최근 몇 년의 한국사회의 격변은 의식 있는 기독교인들의 각성을 이끌어냈고, 출판사들로 말미암은 서구의 선진적인 신학서적들의 소개로 인해 우리나라만큼 현장에서의 신학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나라는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유럽에 비하면 정말 우리나라는 일반대중들이 서점에서 쉽게 양질의 신학서적을 접할 수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정말 지금 현재의 한국 교회는 시대의 도전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확실히 이건 신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학이나 설교의 천박함도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신학의 세련됨이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그동안 쌓여왔던 기독교의 상업주의화, 종교적인 감성과 열심만 자극하는 피상성, 불건전한 은사운동, 바른 도덕의식과 역사의식의 부재, 지금 모교 신학교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들 역시도. 피상성을 넘어선 사회적 통찰, 그 가운데 교회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어떻게 고민해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곳 유럽에서 지내면서 많이 고민하고 숙고해 봐야겠다. 참 어려운 시대에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목사로 살아가게 되었다.

글쓴이 임주형 목사는, 20대초부터 성경을 사랑해서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온 젊은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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