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상영 중 - 지적장애인 청년 성연식 이야기
영화는 상영 중 - 지적장애인 청년 성연식 이야기
  • 김영준
  • 승인 2018.03.03 2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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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 '복음과상황' 2018년 3월호(328호)에 실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 - 편집자 주

#01

▲ 성연식 씨 (사진: 김영준 제공)
▲ 성연식 씨 (사진: 김영준 제공)

연식이가 처음 배운 말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다. 아이 연식이가 걷기 전에 엄마가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홉 살이 되어서야 아빠라고 부를 수 있었고, 다섯 살 때 걷기 시작했다. 성연식 씨는 지적장애인이다.

연식 씨 아버지는 택시 운전을 하신다. 김 목사 전화를 받고, 일하시는 중에 짬을 내어 카페에 들르셨다. 청년이 된 아들 연식이가 김 목사에게 카톡으로 욕을 했기 때문이다. 연식 씨는 화가 나면, 김 목사에게 욕을 하며 화를 푼다. 자조모임에서 친구들과 갈등이 있을 때, 김 목사가 편들어주지 않으면, 다음 날 다이너마이트나 뱀, 망치, 총 등의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 화났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요즈음, 연식 씨는 아주 적극적으로 쌍욕을 적어 김 목사에게 카톡을 보내는 중이다. 그러고는 김 목사에게 오는 전화를 수신 차단했다. 욕으로 선빵을 날리고, 수신 차단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화한다. 할 거 다 한다. 아주 열 받는다.

오해 마시라, 연식 씨 아버지를 뵙자고 한 건, 연식 씨 대신 아버님에게 사과를 받자는 게 아니다. 김 목사에게 화난 연식 씨가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에 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연식 씨 엄마는 중국 조선족 출신이라고 했다. 연식이를 임신했을 때, 엄마는 강제 낙태를 시도했다. 연식이가 태중에 있을 때, 보건소에서 장애가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아빠는 중절 수술을 하지 않고 연식이를 낳았다. 어머니는 출산 직후에도 연식이를 돌보지 않고 외출이 잦았다. 갓난아이를 때려서 억지로 재워놓고 외출하기도 해서, 아버지는 연식이를 조수석에 앉혀놓고 택시 운전을 하셨다고 한다. 결혼 후 4년이 지났을 때, 한국 국적을 취득한 어머니는 장애가 있는 아들을 두고 집을 나갔다. 아홉 살에 아빠를 불렀던 연식 씨는 이제 엄마라는 단어를 알지만, 아직 엄마를 불러보진 못했다.

다행히 평택에 있는 장애아동위탁시설에 연식이를 맡길 수 있었고, 거기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지내며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집에서 있을 때보다 훨씬 안정돼 보였다고 했다. 연식이가 열두 살 되던 해, 연식이 할아버지에겐 뇌출혈이, 할머니에겐 치매가 왔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를 너무 보고 싶어 하셔서 집으로 데려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때문에 연식이를 데려왔지만, 연식 씨 아버지는 노인 환자들과 장애인을 도저히 돌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연식이를 집 가까이에 있는 중증장애인 시설에 맡겼다. 주중에는 시설에 연식이를 맡길 수 있었고, 주말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실책이었다.

김포 월곶에 소재한 중증장애인시설에서 연식이는 적응하지 못하고 저항하다가 의자에 손목이 묶이기도 했다. 메르스가 유행이던 때에 시설이 폐쇄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손목에서 줄에 묶여 생긴 흉터를 발견했다. 그때 어린 연식이에게 적절한 돌봄이 제공되지 않는 줄 눈치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하셨다. 거동마저 어려운 부모님과 연식이를 함께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연식이가 탈출을 했고 시설에서는 다시 받아주지 않았다.

무척 힘들었다고 또 미안했었다는 얘기를 하시며, 아버님은 웃으셨다. 그래도 지금이 낫다고 하신다. 지금은 연식 씨가 말을 할 줄 알고, 혼자서 마트에도 가고, 버스를 탈 줄도 알고, 심지어 김 목사에게 욕하면서 화도 낼 줄 아는 게 너무 신기하신 거다. 아들에게 욕먹는 김 목사한테는 미안하지만, 욕으로나마 먼저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아들이 대견하신 거다.

아홉 살 때 처음 아빠를 불렀던 연식 씨의 느린 행보를, 태어났을 때부터 청년이 되기까지 지켜본 아버지다. 유창하게 욕을 구사하는 아들이 기특하다. 연식 씨가 김 목사에게 카톡으로 욕을 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셨다. 김 목사 전화기에 찍힌 카톡을 보고 깜짝 놀라시는데, 미안해서 깜짝 놀라시는 게 아니라 아들에게 이런 능력과 적극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시고는 깜짝 놀라셨다. “연식이가 목사님에게 이런 나쁜 말을 했네요하시면서 미안해하시는데, 얼굴 가득 환하게 웃으시며 아들 연식이를 향한 기특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미안해하시는데, 이빨을 보이시며 웃으시는 아버지와 기쁨을 함께하며, 김 목사도 큰소리로 웃었다. 목사에게 쌍욕을 하는 지적장애인 아들을 기특해하시는 아버지의 기쁨에 전염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아홉 살에 처음 아빠를 부른 아들을 이만큼 키워내셨다. 돌이켜보면 아이 연식이에게 못할 결정도 하셔서, 후회도 많다. 장애아동 시설에서 잘 지내는 아이 연식이를 빼올 때, 그리고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묶여 지내는 줄 알면서도 다시 시설에 맡겨야 했던 이야기를 하실 땐 혼나는 아이처럼 고개를 숙이시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시며 말씀하셨다.

연식이 아버님은 손가락 세 개로 운전을 하신다. 왼손 엄지와 검지,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날마다 택시 운전을 하신다. 결혼하시기 전에 공장에서 일하시다가 프레스에 눌렸다고 한다. 손가락이 세 개인 장애인 아버지가, 발달장애인 연식 씨를 지금만큼 키워내셨다. 아홉 살에 처음 아빠를 불렀던 연식 씨가, 목사에게 현란한 욕을 구사하는 스물다섯 살 청년이 되었다.

 

#02

청년이 된 연식 씨는 취직을 하고 싶다. 지적장애인 친구가 대형마트에서 카트 캐리어로 일하는 걸 보면서, 일하고 싶어졌다.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아버지는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가 손가락 장애가 있고 어눌하게 말하는 당신 때문이 아닌지 자책하셨다. 비장애인 중에 말을 또렷하게 하는 어른이 연식 씨와 동행해주길 바라셨다.

경기도 찾아가는 일자리 버스에서 면접을 보기 위해 2시간여를 기다렸다. 연식 씨는 면접관 앞에 앉았고, 김 목사는 연식 씨 옆에 앉았다. 기본적인 인적 사항과 건강 상태에 관해 연식 씨에게 물었고, 연식 씨는 수줍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사람 좋아 보이는 눈웃음을 섞어 무난하게 대답을 했다.

면접관도 미간에 주름 잡히도록 웃으며 대답 내용을 빠르게 적었다. 면접관의 볼펜이 움직이는 동안 김 목사는 연식 씨가 얼마나 일하고 싶어 하는지에 관해 추가 설명을 했다. 면접관은 모나미153 볼펜으로 김 목사가 전하는 연식 씨의 절실함을 서류에 적어주었다. 분위기가 좋았다. 이만하면 됐다. 면접이 끝나면, 연식 씨 아버지에게 아드님이 면접을 아주 완벽히 잘했노라고 할 말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면접관은 일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지 물었다. 면접관의 의도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배려해야 할 것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던진 질문이었다. 연식 씨는 솔,,,게 대답했다. “,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요. 10시쯤 일어나야 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어렵겠어요.” ,,한 연식 씨의 대답을 빠르게 받아 적는 면접관의 볼펜 끝을 보며, 볼펜이 멈추기 전에 김 목사는 연식 씨가 가끔 늦잠을 잘 때가 있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고 늦잠 자는 습관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내가 연식 씨를 잘 아는데 사실은 새벽형 인간이라고 추가 설명을 하려 했지만, 면접관의 볼펜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친절하게 웃으며 적절한 일자리가 나오면 전화를 주겠단다. 연식 씨를 찾는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03

실제로 연식 씨가 항상 늦잠을 자는 건 아니다. 주말이면, 새벽에 집을 나선다. 인천역에 가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다. 버스를 타고 인천역으로 가서 인천역에서 출발하는 첫 번째 전철을 타고 지하철 여행을 한다. 인천역에서 출발한 전철을 타고 점심에는 역사 자판기에서 컵라면을 사 먹고 다시 인천역으로 되돌아온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빨간 날새벽마다 지하철 1호선 인천역에서 인천역으로 여행을 한다.

연식 씨가 한 번도 엄마라고 불러보지 못한 엄마가 인천 어딘가에 살고 있다.

 

#04

▲ 성연식 씨 (사진: 김영준 제공)
▲ 성연식 씨 (사진: 김영준 제공)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당사자들과 영화를 보기로 했다. 4천 원으로 영화표를 구입했다. 장애인복지카드를 소지한 장애인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 50% 할인된다. 저녁 725분 영화였고, 팝콘과 콜라를 손에 들고, 상영 5분 전 자리에 앉았다.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을 함께하는 당사자들 5명이 둘씩 셋씩 앞뒤로 나란히 앉은 걸 확인한 뒤,

매표소로 나왔다. 연식 씨가 아직 안 왔기 때문이다. 연식 씨는 며칠 전 단톡방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목사님이 제꺼 겟앰프드 아이디랑 비밀번호를 해킹시켰네요 불법 개인정보 수집했거든요 제꺼 겟앰프도 아이디랑 비밀번호를 노출시켰네요 목사님이 아주 대형사고까지 치니깐 조심하세요!’

지적 장애인 연식 씨에게 약간의 분열 증상도 함께 있지 싶다.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엉뚱한 사람에게 돌리곤 한다. 이유는 아마, 어렸을 때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성인 장애인들 속에서 괴로워 저항하다가 의자에 묶이기도 했던 폭력과 억압의 경험 때문으로 짐작된다. 연식 씨에게 김 목사는 이전에 묶여 있기도 했던 중증장애인시설의 관장 쯤으로 생각될 때가 있는 걸까. 게임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해킹당하자, 그 분노를 과거 시설의 관장에게 풀려고 했는데, 김 목사에게 그 분노를 돌린 게 아닌가 짐작한다.

장애 유형인 줄 알지만, 알아도 화가 난다. 오랜 상처 때문에 당사자가 여전히 괴로운 것이리라 짐작하지만, 그래도 괘씸하다. 불법 해커로 몰아가는 문자가 유쾌하진 않다. 너털웃음으로 털어지지 않고, 감정의 한 귀퉁이에 손가락 거스러미만큼 상처로 남는다. 별거 아니지만, 거스러미 일어난 자리도 아프다. 마음에 인 거스러미는 제법 오래 거슬린다. 연식 씨도 자신이 보낸 메시지 때문에 김 목사가 화가 나 있다는 걸 알지 싶다. 오겠다고 하고 오지 않는 게, 김 목사와의 대면이 껄끄러운 게다.

전화해 보았다. 신호음이 두 번도 울리기 전에 사이의 모음으로 보세요 한다. 전화를 기다렸나 보다. 영화를 보겠느냐 물으니, 망설이지 않고 극장으로 출발하겠단다. 바로 나오겠단다. 늦어도 가겠단다. 다급한 목소리로 기다려 달란다. 연식 씨는 상영 시간이 다 되도록 집에서 전화를 기다렸던 거다. 영화는 시작되었고, 반으로 접은 표를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기다렸다.

연식 씨에게 세상은 지금 영화관 같은 곳일까. 표를 아직 가지고 있진 않고, 늦게 나서는 바람에 극장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그래도 들어가고 싶은 영화관 같을까. 이미 영화가 시작돼서 깜깜하고 자리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는 극장 같을까. 내 마음에 인 거스러미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기다려 달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고맙다. 나도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달려가고 싶다고 소리치는 거 같아, 다행스럽고 뭉클하다.

기다린다. 기다렸다가 깜깜한 극장 속으로 같이 가야겠다. 거기에 연식 씨의 자리도 있을 거다. 이미 상영이 시작된 깜깜한 극장에도 연식 씨의 자리가 있을 거다. 그래서 반으로 접어 뒷주머니에 찔러 넣은 입장권이, 어째 신성하게 느껴지는데,

746, 영화가 시작된 지 20분이 지나서, 연식 씨가 매표소 입구로 달려왔다. 깜깜한 극장 속, 조심조심 더듬어 가니 자리가 남아 있다. 연식 씨에게 세상이, 오늘 극장 같기를 기도한다. 조금 늦어도 표가 있고, 표를 들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아직 자리가 남아 있는 세상이길.

늦어도 달려가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는 상영 중이다.

 

글쓴이 김영준 목사는, 소설을 좋아하고 그림도 즐겨 찾는 목사다. 그림 속 성경이야기라는 책을 썼고, 한 달에 한 번 문학 속 성경이야기라는 모임을 진행한다. 1회 발달장애인자조모임에 조력자로 참여하면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 및 직업훈련센터를 운영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에서 이사 노릇을 한다. 토요일에는 이주민들의 검정고시 준비를 돕는 달팽이학교를 연다. ‘민들레와달팽이라는 카페 공간에서 예배드리는 민들레교회 목사다. 김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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