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관계를 놀랍게 표현한 책
사람 사이의 관계를 놀랍게 표현한 책
  • 권일한
  • 승인 2018.02.2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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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한길사, 2017년
엘레나 페란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한길사, 2017년
엘레나 페란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한길사, 2017년

이탈리아 나폴리 출생. 작품만이 작가를 보여준다고 주장하며 어떤 미디어에도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다. 이름도 본명이 아니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포함한 나폴리 4부작은 43개국에서 번역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언젠가 노벨문학상 받을 것 같다.

매일 아버지 노릇을 할 필요가 없어지니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되었네. 임마(딸 이름)도 피에트로(전남편)를 정말 좋아하고. 남자들은 다 똑같은가봐. 잠깐 같이 살다 아이를 낳으면 떠나보내야 하나봐. 니노(임마의 아빠)처럼 경솔한 사람이면 아무런 책임감 없이 떠나는 거고 피에트로처럼 진지한 사람이면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필요할 때 최선을 다하는 거야. (550)

아빠들은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보다 직장에서 일하며 인정받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직장 자리에 취미생활, 친구가 대신하기도 하지만 가정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책임을 다하는 건 힘들어한다. 그래서 날마다 아버지 노릇을 할 필요가 없어질 때 좋은 아버지가 된다. 가끔 선물 사주고 놀이공원 데려가는 역할을 좋아한다. 날마다 곁에서 함께 지내는 건 힘들어한다. 나는 이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아이들 곁에 있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날마다 아빠 노릇을 하는 건 정말 힘들다. 아빠의 역할은 뭘까?

엘사(둘째 딸)는 즐겁다는 듯이 내게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남겼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맹신하는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면서 책이 선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이 좋은 책을 쓰는 거라고 했다. 엘사는 리노가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선한 사람이라고 했다. 자기 아빠는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훌륭한 책을 썼다고 했다. (570)

책이 좋은 사람을 만들까, 좋은 사람이 좋은 책을 만들까? 둘 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하나만 고르라 하면 뭐가 옳을까?

아버지는 계획적으로 이것저것 조금씩 바꾸면 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어중간하게 바꾸다보면 거짓으로 만들어진 체제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돼.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처럼 거짓말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체제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거지. (609)

정부, 공공기관, 학교, 사회단체에 문제가 있을 때 괜찮은 사람이 들어가도 변하지 않는 까닭은 어중간하게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강력하게 개혁하려 하면 반발이 심하고 조금씩 바꾸려 하면 물들게 된다. 조직을 변화시키는 건 어렵다.

참 괜찮은 책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찌나 잘 표현하는지 놀랍다. 677쪽으로 많이 길지만 계속 생각을 일으키는 책이다. 이탈리아의 근현대사 안에 가족, 친구, 이웃, 상처, 인간의 마음을 다채롭게 담았다. 강추한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지 않은 분은 읽기 어렵다. 내용이 길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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