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이 말을 ‘목사’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해병이든 목사든 자기 직무에 자긍심을 갖는다는 측면에서는 높이 평가할 만한 문장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목사든 해병이든 항상 '삶의 자리’가 뚜렷할 때에만 그 호칭이 유효하다. 해병의 자리는 ‘군대’고, 목사의 자리는 ‘교회 공동체’다. 가톨릭 신학에서야 ‘주입된 은총’(gratia infusa)라고 하는 교리가 있기 때문에 ‘한 번 사제는 영원한 사제’라는 공식을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개신교회 목사는 다르다.
목사는 언제나 ‘교회 공동체’를 통해 직임을 얻게 된다. (‘목사 안수’라는 것은 신적 능력의 주입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부름이다. 그렇기에 개교회 목사, 교단의 필요에 의해 직임을 부여받은 신학교수와 기관목사는 ‘목사’라는 호칭이 당연하다. 개인적 사견이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목사는 말씀과 성례전의 직무로 부름 받은 것이기 때문에 행정직만을 위한 기관 목사와 은퇴 목사의 경우 ‘목사’의 호칭이 그리 합당한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교회공동체의 부름’이라는 필요충분조건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목사라는 호칭은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했듯이 개신교 목사의 직임은 신적 능력의 주입을 통해 세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목사는 교회 공동체의 합의에 의해 그 직임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타의에 의해 박탈되는 경우이지만, 자의에 의해 교회 공동체를 떠나 전혀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현재 자기 직업이 교회 공동체의 부름과 상관없는데도, 과거에 목사였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자칭 ‘목사’라 소개하고, 이 호칭 듣기를 즐기는 현상들을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 신자들의 경우, ‘목사’라고 하면 무언가 더욱 정직하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고 그가 무슨 일을 하던 지지한다. 그 만큼 목사에 대한 일종의 신뢰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목사는 거룩한 성직자이기에 행여나 빈말이라도 비판하거나 눈을 흘기기라도 하면 천벌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일반 신자들은 순수하다.
그런데 이런 신자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자기 사업을 확장하고 홍보하는 수단으로 ‘목사’호칭을 이용하는 이들이 있다는 게 문제다. 목사는 분명 ‘거룩한 성직’이다. 그렇다면 목사직만 거룩한가? 일반 사회 직업은 조금 덜 거룩하거나 거룩하지 않은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여기서 종교개혁자 루터의 말을 인용해 보자. “구두 수선공이나 푸줏간 주인이나 아이의 기저귀를 빠는 하인이나 모두 사제와 똑같은 성직이다.”(루터) 하나님 앞에서 모든 직업은 평등하다. 또한 자기의 직업을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으로 이해하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이 성직이다. 목사나 사장이나 청소부나 모두 거룩한 성직이다. 이것이 개신교 신학의 핵심인 만인사제직과 소명론의 핵심이다.
만일, 전에 목사였던 것을 무기로 자기 사업을 홍보하거나 확장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잘못 배운 것이거나 아니면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교만 떠는 것, 또는 상술일 뿐이다.
목사라는 호칭을 무기로 목사인 척하지 말라. 전역한 사람들이 군복입고 색안경 쓰고 몰려다니는 것이 꼴사납듯, 목사라는 직함을 엉뚱한 곳에 사용하며 돌아다니는 것도 비정상이다. 비즈니스맨이면 비즈니스에 충실하면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est). 또한 이직한 사람에게 굳이 ‘목사’라는 호칭을 붙여가며 존경을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천벌 받지 않는다. ‘사장’이란 호칭도 충분히 거룩하다. 그것이 개신교인들이 이해하는 성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