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상품화와 비윤리성
결핍의 상품화와 비윤리성
  • 이진호
  • 승인 2018.02.24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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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대체,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새로움(2)

새로운 커뮤니티와 혐오, 삶의 다층면의 단순화, 결핍의 상품화와 비윤리성. 디지털 기술로 구현되는 공적 커뮤니티는 각 소수의 이야기와 취향의 공유를 가져왔다. 이전에 창피하게만 생각되던 기호들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합을 이루고, 담론의 장을 만들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체면으로 인해 조심스러운 것들이 취향소비라는 내용으로, 한데 묶여 연결되었다. 그로 인해 디지털 기술로 형성된 사회는 다양성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 다양성은 타자성이 배제된 다양성이다. 기호, 소수에 따라 이전에 수치 혹은 금기시 되었던 내용이 공유되면서 존재의 다양성을 인식하는 것은 좋으나 부정성과 타자성을 배제한 파시즘을 만드는 것이 디지털 기술의 알고리즘이다. 쉽게 페이스북에서 좋아요한 글과 공유한 글에 맞추어 디지털 기술은 사용자의 기호를 분석하고, 그에 따른 게시글을 노출한다. 그러다보면 수많은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기에게 맞는 내용으로 연결하며 그들의 자연스런 공유가 공동체를 형성하게끔 이끈다. <타자의 추방>(문학과지성사, 2017)을 쓴 한병철의 말에 의하면 SNS의 긍정성은 다양성이 제거된 긍정성이며, 부정성과 타자성이 없기에 삶과 관계의 다층면을 구현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우리가 사용하는 SN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은, 각 존재가 지닌 생각과 의식의 다양성, 주체성은 온데간데없고, 타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만이 가득한, 변증적인 작용과 해석학적 이해가 없는 경험만을 창출한다.

정체성이 공고해지는 위험성은 합의라는 이름의 비윤리성을 발현하는데, 이 대표적인 내용이 포르노 사이트다. 우리나라에 거대한 포르노 사이트인 소라넷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다양하게 자리 잡은 포르노, 불법 성매매 사이트는 사회의 숨은 단면을 디지털 기술로 엮어 합의라는 이름으로 열려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은밀하게 불법을 저지른다. 포르노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재된 욕망을 합의라는 면죄부로 실천한다. 그들만의 욕망의 왕국을 만들며 비윤리적 정체성을 공고히 만든다. 명백히 범죄이지만 처벌하기 쉽지 않은 것은 디지털 기술로 새로이 형성된 경험 때문이다. 이들의 경험이 새로이 묶여지는 공적 커뮤니티에 구성된다. 거기서 만들어지는 몸이 가상이라는 힘이 지닌 시공간의 초월을 보여주기에 처벌을 강화해도 끊어지지 않는 연결성이 경험을 지속시키는 양상을 낳게 한다.

디지털 기술의 향상은 가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힘을 발휘한다고 이전 글에서 밝혔다. 특히 게임은 가상의 힘이 삶의 다층면을 어떻게 단순하게 만드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런데 게임이 지니고 있는 캐릭터, 노동, 퀘스트, 커뮤니티는 사회와 삶이 갖고 있는 불확실성과 우연성을 제거한다. 계산에 따르지 않는 커뮤니티가 가능하고, 일한만큼 돌아오며, 계산한대로 돌아온다. 명성을 쌓은 만큼 대우를 받으며, 노력한 만큼 받는다. 심지어 다양한 캐릭터를 설정할 수 있지만 그 근간엔 평등과 정당함이 자리 잡고 있다.

삶의 다층면에서 나타나는 삶의 복합성의 경험들이 가상이라는 공간 안에선 단순한 경험으로 치환되니 자연스레 현실도피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복잡한 것을 갈래로 나누고 범주화하여 정리하는 것이 삶의 지혜이다. 불확실성과 우연이 합을 이루어 하모니를 만드는 것이 삶의 경이이다. 그런데, 가상공간의 경험은 혼란 속에 나오는 지혜와 고통 속에 제련되는 경이가 필요없다.

게임에서의 경험처럼 각 사람의 삶이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현대사회 속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바로 소비품이라는 자각이다. 인문학자 김용규가 말한 것처럼 일상 속에선 사회를 구성하는 부품이자 생존하기 위한 소비품으로 살아간다. 주말에는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YOLO(You Only Live Once)의 이면에는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만들어야한다는 이중닦달이 숨어있다. 이중닦달을 확장시키는 플랫폼 중 하나가 바로 SNS(특히 인스타그램)이다.

이러한 플랫폼은 자아실현과 자기의 삶을 개진하기 위한 고민과 책임, 상황과 관계, 불안정함과 열망 등이 뒤섞여  있다. 명확치 않은 부유한 경험만을 확장시키고, 상품으로 소비되는 면을 보인다. 자아실현이 가진 아름다움의 획일화, 행복의 획일화, 자본의 논리 혹은 행복에 대한 담론과 주체적 삶으로 행복을 찾아나서는 여정이 사라졌다. 인간의 삶의 복잡함을 단순하게 만들어 소비하고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자기는 이러한 실현을 경험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디지털 기술이 지닌 경험의 논리 중 하나다.

디지털 기술로 이전의 권위 구조가 바뀌었다. 승리자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권위적 이야기가 해체되고 각 개인의 이야기들이 개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광대한 연결망으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사회상으로 인해, 그리고 많은 정보로 인해 나타난 현상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해체된 권위 속에 사람들의 결핍을 채우는 경험의 양식들은 새로운 권위를 만들었다. 직관적으로 결핍의 요소와 채워지는 경험을 깨달은 사람들은 자기만의 담론을 형성하며 기존의 권위와 맞먹는 디지털 권위를 소유하게 되었다.

각 개인의 이야기들이 개화되는 장점을 디지털 기술이 보여줬다. 그렇지만 여전히 각 주체의 권위는 사라졌다. 결핍과 경험을 이용하는 소수자의 권위 싸움이 디지털과 오프라인 사이의 미묘한 경쟁을 일으키고 있음을 뉴미디어 시장을 통해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즉각성과 일상성과 결부된 디지털 기술은 정합한 내용의 비평을 제공하여 각 개인의 개화보단 게시물에 대한 공유와 동일성의 폭력으로 일어나는 새로운 권력싸움으로 변질된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이 속에서 어떻게 기술에 이끌리지 않고, 주체성 있는 경험과 사회의 흐름을 수용하는 경험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 이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날로그의 어떤 경험을 붙잡아야하고,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이용하여 경험의 정합을 이루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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