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니?"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니?"
  • 강현아
  • 승인 2018.02.2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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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버스를 타는 관계로, 허나 마을버스가 잘 오지 않아 지루할 때는 종종 교보문고에 들른다. (평소에는 대형서점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보통 입구에 있는 신간코너에서 서성이게 되는데, 문제는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민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사고 싶고,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말이다. 동네서점이나 독립책방에 갈 때는 잘 몰랐다. 대부분 아는 저자, 아는 책들이 비치되어 있기 때문에 크게 욕심부릴 일도, 갑작스레 충동을 느낄 일도 별로 없다.

하지만 대형 서점에서는 다르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책들과 모르고 지내도 좋을 신간들이 어쩜 그리 섹션별로 잘 정리되어 있는지. 꼭 물량 문제만이 아니라 디스플레이부터 독자, 혹은 욕망(소비자들)의 배치부터가 탁월하고 압도하기 때문에 갑자기 없던 욕망마저 분출하기 시작한다. 마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듯, 내지는 혹여 나만 뒤쳐지는 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잠깐 머물렀을 뿐인데도 번뇌에 휘말리게 된다. 현재의 생활비를 쪼개어 책을 더 사기엔 생활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그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서점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고, 이후에는 엄청난 욕구 불만에 시달리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책 물신은 없다. 단지 읽고 싶은 책이 많을 뿐.

작년에 고3 수업을 하나 끝내고 새로운 일을 추가로 더 하지 않아, 기존의 다른 수입에만 의존해 생활비를 긴축하고 있었다. 이사하면서 지출이 커져 슬슬 불안하던 차였고 그러다보니 생활용품이 아닌 기호품과 책을 사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도서관을 주로 이용하고 있지만, 대출 기간이 비교적 짧은 데다 신간은 잘 구비되어 있지 않거나 이미 대여가 된 상태일 때가 많다.

​​몇 주 전, 주 이틀 출근하는 일거리를 제안 받고 계속 마음 한켠이 심란했다. 영 성에 차지 않아서였다. 어제 인터뷰를 하고 와서 종일 고민한 끝에 오늘 출근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작년 말에 갑자기 9 to 6 출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 있던 재단에 지원서를 보내면서 구인 사이트에도 이력서를 등록했는데, 대체로 내가 할 수 없는 업무, 주로 마케팅 분야의 제안만 자꾸 들어와 마음을 비우던 차였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곧 매이는 몸이 되었다.

사람들이 종종 내가 뭐하면서 먹고 사는지 걱정 혹은 호기심에 뜬금없이 묻곤 한다. '프리랜서로 윤문, 교정교열 보고 있습니다만, 가끔 과외도 하고.' 아직 갚아야 할 대학원 학자금 대출도 있고, 집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밥도 더 잘 챙겨 먹으려면 더 많이 일해야겠지만 요즘 같아선 체력이 부족해서 너무 무리하지 않는 한에서 큰 욕심 없이 잘 살고 있다. 원하는 만큼 품위 유지는 못하지만, 아쉬울 것 없는 삶이다. 가끔은 살아있는 게 기특할 정도.

이사하는 과정에서 느낀 피로감과 환희를 페북에 상세하게 썼더니, 아직도 저러고 사나 싶은 분들이 좀 계신 듯하다. 글 써서 밥 벌어 먹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윤택하겠냐만은.. 그런대로 빌어 먹지 않고, 한 몸 건사하며 잘 지낸다. 글 나부랭이 소일거리로 집을 샀다는 사람을 아직 못 봤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를 맘껏 누리며 잘 지낸다. 이것도 곧 끝이려나.

출근을 하게 되면 책 읽을 시간이 없고, 출근을 안 하면 책 살 돈이 없는 이중의 딜레마를 겪곤 한다. 3월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출근 자체가 두렵다기보다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시 해야 할 상황을 맞는 건 벌써부터 심적으로 부담이다. 어딘가에 매인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과 시간으로부터도 종속되는 것이니까. 영혼을 팔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는 까닭에.

중학교 때, 실업계 고교에 진학하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던 엄마께 처음으로 대학에 가고 싶다고.. 그러니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걸 허락해 달라고, 겨우 입을 떼어 말했을 때. 한동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후 하셨던 그 말이, 그 때부터 줄곧 내 인생을 따라다니는 그 한마디가 오늘 내 귓전에서 몇 번인가 울렸다 사라졌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니?"

읽고 싶은 책을 더 사려고 더 일하려는 건데, 왜 별로 행복하지가 않지? 가끔 소고기라도 사먹으면 더 행복해지려나. 일찌감치 기형도 선생이 옳았다. 형이상학이란 아편, 그러니 열심히 쓰는행위도, 결국 인간의 굴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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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살아서 걸어 다니는 뭇 인간들을 하나의 외경심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나의 눈의 고요한 침잠을 사랑하며 그 사랑을 혐오할 뿐이다. 나의 문학과 생활과 시간 속을 조용히 관통하는 기류. 계절은 우리에게 변화와 적응과 또한 그 환멸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환멸 또한 소중한 까닭은 우리의 부질없는 희망들 때문이다.

(...)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의 형이상학이나 관념들은 얼마나 사소한 고통이나 굶주림, 불만에서 출생하여 지극히 애매하고 신비한 언어로 치장되는 것이냐. 형이하학적 만족, 그것이 진정한 인간들의 구원이다. 예수가 죽은 까닭은 형이상학을 거부했던 예루살렘의 가난 때문이다. 무릇 형이상학이란 여유계층의 레저이거나 하학적으로 압제자인 사람들의 아편일 뿐이다. 이것은 삶과 문학과의 사이에도 엄연히 공존한다.

그러나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닌 나의 현실, 그렇다, 모든 욕망 때문이다. 나의 욕망은 너무도 화려하다. 거리는 향락과 더러운 슬픔 따위로 어지러워 있다. 우리가 그곳에 섞여 숨 쉬며 믿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모든 형식의 압제에서 풀려날 것. 자네의 진정한 참회와 노력을 청구한다. 자신에게 솔직해질 것. 특히 집착하지 말 것. 초연의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스스로 건강해질 것. 열심히 쓰라. 우리가 문학으로 패배한다면 우리를 치유하는 심리요법으로서의 구원은 문학뿐이다. 모든 통곡들이 거리에서 음산한 하늘로 인다1982.10.25” - 기형도 산문, <이봐, 힘을 아껴 봐 - 편지 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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