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대체,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새로움
경험의 대체,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새로움
  • 이진호
  • 승인 2018.02.21 23: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디지털 기술로 쌓여가는 경험들

전철을 타고 퇴근하는 길, 골몰히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핸드폰에 카메라가 달렸다며 신기해하던 그 시절, 32-40비트의 벨소리를 지정할 수 있다는 신기함, 핸드폰으로 게임을 다운받고, 할 수 있다는 신기함이 호기심 많은 아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케이블 TV도 설치되지 않았던, 정규방송 외에 채널이 없던, TV보다 라디오를 더 많이 듣던 집에서 자란 한 소년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주어질 수 없는 핸드폰에 대한 갖가지 로망을 지녔었다. ‘나도 붕어빵 타이쿤 다운받아 해야지‘, ‘하루 종일 문자하며 놀아야지등등의 소박한 로망. 가파른 속도로 발전 중인 기술을 보면서 전화와 문자, 게임을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할 수 있다는 기대를 지녔던 그 아이에겐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디지털 관계망은 꿈꾸지도 못할 미래였고, 공상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생긴 스마트 폰 열풍. 제한이 있던 문자를 넘어선 카카오톡과 mp3, 비디오, 새로운 공간과 관계망인 SNS는 거대한 문화충격이었다. 이전엔 쉽게 배울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은 점차 고도화되고 어려워지기 시작했지만 그 안에서 주는 경험들은 결핍된 무언가를 채워주는 듯 했다. 적응한 만큼 깊이 빠졌고, 빠진 만큼 새로운 삶의 양식이 주어졌다. 이전엔 생각지도 못한 기술의 발전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일상성의 경험을 가져다주었고, 나도 모르게 구성되던 기존의 삶이 일상성을 지닌 디지털 기술에 의한 경험의 축적의 새로운 몸을 구성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발전한 기술과 그로 인해 나타난 삶의 양식 속에서 이상하게도 무엇인가 놓치고 있지 않은가? 라는 직관이 생겼다. 시골에서 자라며 개구리 울음소리, 흙냄새, 별밤을 느끼며 자랐던 감성의 향취가 급속도로 바뀌어버린 인간의 삶과 구성된 몸에게 말을 건네는 듯싶었다. 생각해보니, 시골 길을 걸으며 사색하고, 상상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던 경험들은 이내 사라지고, 아름다움을 픽셀로 표현된 이미지로 봐야하고, 오감으로 느꼈던 감각들은 디지털 기술의 자극을 통한 머나먼 기억 속 재생되는 혼동된 느낌으로 구현하며 상상해야 감각의 그림이 그려졌다. 인간과 인간과의 만남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감정, 마음 등의 인격적 소통은 사라지고, 단순한 글 즉, 정보전달이나 감정의 껍데기 혹은 부유물만이 떠다니는 허울로 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살아가던 삶의 경험들이 디지털로 새롭게 구성되었는데, 내가 디지털로 얻는 경험의 종류와 범주가 무엇인지.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 그로 인해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고찰이 어느 순간 단절되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내가 내 삶을 구성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생겨난 기술의 습격 안에 떠내려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과연 디지털은 어떠한 경험을 우리에게 제공하는가. 그리고 그 경험으로 인해 인간은 어떻게 삶을 새롭게 구성하고, 관계를 만들며 삶을 변혁시키는가? 디지털은 혁신적인 기술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관계 망을 만들었다. 마치 생명체처럼 움직이고 새로워지는 생동력 속에 사람들은 경험을 얻는다. 이전과는 다른 경험. 바로 즉각성이라는 경험을 얻게 된다. 즉각성이라는 것은 디지털이 가진 일상성과 결부하여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디지털 기술은 일상성의 힘을 갖는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것을 핸드폰으로 쉽게 해결한다. 예를 들면 구글이란 검색엔진으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찾아 소비할 수 있고, 유투브를 통해 가공된 정보를 받을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카카오톡을 포함한 다양한 앱 서비스는 이전에 어디를 찾아가야지 해결 가능한 일을 쉽사리 처리하는 힘을 지녔다. 핸드폰 하나만으로 이전에 불편을 감수하며 행했던 많은 것을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지금 당장 처리할 수 있다. 삶을 이루는 경험의 공간은 더더욱 넓어지지만 그것을 행하는 범위는 좁아졌다. ‘개인을 중심으로, 손바닥 안에서 쌓여지는 경험은 이전의 일상성을 대체한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불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마 일상성의 핵심으로 작용하는 핸드폰의 부재가 자신의 일상성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반증하는 말로 보여진다.

새롭게 만들어진 일상성은 디지털 기술로 더 넓어지고 간략해지며 운동성을 지닌 거대한 담론장을 만들었는데, 이 장의 특징이 바로 즉각성이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이, 많은 사람과 함께 있지만 동시에 누구와 어떠한 경험이 축척되는지 알 수 없는, 하지만 끊임없이 경험이 축척되는, 개인과 개인이 아닌 개인과 수많은 대중과의 연결 속 경험으로 정합한 목적이 없이 바로 되돌아오는 즉각성의 면, 아니 디지털 기술의 알고리즘을 통해 다름을 없앤 긍정성으로 작용하여 즉각적으로 확인 가능한 것이 일상성과 결합한 즉각성이다.

일상성과 즉각성이 결합된 경험은 인간의 시간을 빼앗는다. 내면의 고요를 듣길 허락지 않는 디지털 기술의 알고리즘은 고립이 필요한 인간의 삶을 방해한 채, 즉각적으로 대답하고 나누는 것이 미덕이라는 예의를 만들었다.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잘못한 것같은 이상한 윤리의식이 디지털 기술로 발생한 경험으로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발신자나 수신자 상관없이 느껴지는 무언의 감각으로 자리 잡았다.(예를 들면 카카오톡을 볼 수 있는데, 수신과 발신에 있어 1이라는 숫자는 즉각성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수많은 상상을 발생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온다) , 밤이 없는 디지털 기술의 경험과 이로 인해 구성된 연결망과 윤리의식은 인간이 지녀야 할 개인의 고립을 누리지 못하도록 만든다.

일상성과 즉각성, 더불어 너무나도 많은 정보가 쉽사리 떠다니는 디지털 기술에선 지식과 정보의 통찰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 비평이 불가하게끔 만든다. 이는 일상성과 즉각성과도 연결되는 멀티테스킹의 덫으로 만들어지는 자유로운 상념의 부재인데, 디지털 기술로 구성된 삶은 핸드폰으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을 하나의 매개체로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니게 만들었다. 하지만 연구결과에서 나왔듯, 인간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 힘들고, 이로 인해 집중력과 주의력 분산과 담론장과 관계망, 이야기와 담론 속에 있는 핵심을 꿰뚫지 못하는, 정보와 지식에 휩쓸려가는 비평과 해석이 부재한 혼돈과 무지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심각한 것은 디지털 기술의 함정 즉, 수많은 정보가 있고 검색엔진으로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무지를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부유한 정보는 접하니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휩쓸리는 주체의 상실은 디지털 시대에서 만들어지는 모습 중 하나다.

디지털 기술로 쌓이는 경험과 구성되는 몸은 이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적 커뮤니티, 공동체를 만든다. 대표적으로 페이스 북, 인스타그램 등으로 교류하고 연결된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전에 쉽게 낼 수 없던 이야기들과 담론들이 한데 엮여 다양한 담론이 뒤섞이는 공적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여기서는 이전에 쉽게 들을 수 없는 내용과 볼 수 없는 것을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가진 알고리즘은 쉽게 혐오와 배제라는 특성을 가져오는데, 자기를 이해해주고, 저 사람들은 나쁘다는 즉, 삶의 다채로운 측면은 무시되고, 오로지 자기 이해관계에 맞춘, 타자가 부재한 관계망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적 관계와 커뮤니티는 쉽게 공고해지는 면을 보여주는데, 이 역시 디지털 기술의 일상성과 즉각성이 비평과 해석이 부재한 감정과 내용의 부유물로 뭉쳐진 혐오로 승화되는 양식을 가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