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유일한 잔치, 가족의 생일 파티
우리 집의 유일한 잔치, 가족의 생일 파티
  • 엄경희
  • 승인 2018.02.15 2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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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 맘 엄경희의 사우디 통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설이나 추석 명절, 크리스마스나 연말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다. 우리 집에는 변변한 달력도 없어 구정이나 추석 같은 날은 페이스북이 아니면 그냥 모르고 지나가기 쉬울 정도다.

우리 집의 유일한 잔치는 가족의 생일 파티다. 여행 외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단조로운 삶을 사는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첫 단추를 잘못(?) 낀 바람에 일 년에 8번이나 되는 생일날이 끝나면 또 오고 끝나면 또 온다.

일단 선물을 가족 수 별로 준비해야 한다. 7개나 되는 선물을 고르고 사는 일은 큰 쇼핑이다. 슬하 나이까지는 생일 선물을 고르기가 어렵지 않은데 큰 아이들일 수록 원하는 게 없거나 까다롭다. 일 년 내내 비어디드래곤이라는 애완동물을 키우고 싫어했던 준하에게는 결국 원하는 선물을 못 사주었다. 사우디에서 비어디드래곤을 찾을 수가 없어서다.

그 다음으로 파티 준비다. 생일이라고 아침부터 할머니 미역국으로 시작해 주문받은 요리로 매끼를 해 먹인다. 파티 전 저녁이 절정이다. 이번에 준하는 아빠에게 스테이크 볶음밥을 주문했다. 처음에 그게 뭐지? 할 만큼 한참 전에 한번인가 먹어 본 음식인데 맛있었는지 기억하고는 우리 집 요리사 아빠에게 당당히 주문을 했다.

생크림 케잌을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지만 두어 달에 한 번씩 계속 먹으니 좀 식상해졌는지 이번에는 애플파이를 구워달란다. 애플파이는 나보다 성하가 한 수 위다. 성하도 흔쾌히 그래, 형이 구워줄게.”한다.

엄마로서 아무 것도 안 해줘도 되나 싶어 살짝 더 먹고 싶은 게 없는지 물어보니 롤케잌이 먹고 싶단다. 생크림 케잌에 비해 간단한 롤케잌 쯤이야. 그래. 구워줄게.

이렇게 해서 생일날은 하루 종일 음식준비로 잔치 분위기다. 거하게 장을 봐온 아빠부터 하루 종일 요리 준비로 부엌이 법석이다. 꼭 명절 전 음식 준비로 왁자지껄한 그런 분위기가 아주 쪼끔 재현된다고나 할까?

우리는 대가족이다 보니 뭐든 보통 음식양의 두 배를 한다. 그래서 애플파이도 두 개, 롤케잌도 두 개, 남은 반죽으로 만든 꼬마 케잌까지, 케잌이 다섯 개나 되었다. 준하랑 아이들 입이 쩍~ 벌어진다. 마침, 한국은 구정 명절인데 우리는 이렇게 우리만의 잔치를 했구나, 감사하면서 그래도 왠지 쓸쓸한 여운이 남는다.

명절마다 어린 아이들 데리고 시댁에 내려가는 자체가 새댁인 나에게 늘 도전이었지만 나는 언제나 시부모님을 비롯해 시댁 어른들을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에 내려가곤 했다. 며느리라고 부려 먹으시기는커녕, 우리 늙으면 다 너희들이 해라 하시면서 세 시어머님들은 여간해서 부엌에 자리를 내주지 않으셨다. 밥상 차리고 설거지 정도 거들면서 새로 얻은 며느리라는 자리를 만끽한 것이 전부였다고나 할까? 아들보다 며느리를 더 챙기고 걱정해 주시던 시부모님이 언제나 그립다.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명절 분위기도 훨씬 생기가 있을텐데, 그리움과 아쉬움과 쓸쓸함이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타국에서의 명절을 채우는 분위기다.

그래도 올해 구정은 준하 생일에 맞춰 나름 잔치를 했으니 그나마 낫다한국에 계신 친지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새해 인사를 전한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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